[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조직 생활도, 단체 생활도 영 별로이며, 사람 많은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상, 어제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는데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서먹하고, 쌀쌀맞을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면 성격이 좀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하나 잘하는 게 있다. 인사다. 누구든 상관없이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사를 했다. 항상 밝게 웃으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사를 하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안녕하세요, 라고 시작한 말은 고맙습니다, 라는 말로 끝나는 일이 많다.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빵이 덤으로 오기도 하고, 글을 쓰고 있는데 따뜻한 코코아가 전달되기도 한다. 날씨가 좋으니 오늘은 커피가 무료입니다, 라는 말과 갓 구운 쿠키가 함께 오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인사에서 시작된다. 참 쉬운 일인데 막상 하려고 하면 어려운 것이 인사다. 타이밍을 놓치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참 많은 망설임과 생각이 교차한다. 망설이는 사이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입에서만 돌고 끝끝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건네면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말인데 내가 먼저 상대에게 하기는 영 쉽지 않다. 상대가 잘 모르는 남이라면 인사는 더욱 어렵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사를 할지 말지는 아주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승강기의 경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길에서 만나는 경우 1.5m 거리에서 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된다. 물론 나는 인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상대가 고개를 숙인 채 혹은 고개를 돌린 채 모른 척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럼 그만 ‘, 녕, , , ’는 입안에서 꼬르륵 가라앉는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14층에 사는 A와 같이 승강기를 탄 적이 있다. 승강기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친분은 없는 사이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도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승강기 층수 숫자만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인사는 하고 삽시다.
승강기 안에 A와 나, 둘 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사 오셨나 본데.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데 서로 인사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다. A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A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불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공격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A의 느닷없는 공격에 화가 나 귀밑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불쾌한 것은 A가 아니라 나였다. 그런데 A는 술을 한 잔 걸친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A는 원래 붉은 기가 도는 피부였다. 그날도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식사하며 A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결론은 인사하면 되겠네. 인사 하자였다. 며칠 뒤였다. 귀가가 늦어져 자정 무렵 승강기 앞에 서 있었다. 무심히 승강기 출입문만 쳐다보고 있는데 A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승강기 앞에서도, 안에서도 서먹하고, 복잡한 기운이 떠돌았다. 1분, 2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엉켜 버렸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몇 번 심호흡하고서야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럼, 올라가세요, 라는 말을 하고 승강기에서 내렸다. 승강기 문이 닫히기 전에 A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세요.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길에서 만나도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승강기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인사하게 되었다. 인사에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단,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지치고 힘든 날이었더라도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당신에게 인사를 한다면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인사를 할 때 필요한 조건이 있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어야 한다. 상업적이고, 기계적인 인사는 상황에 따라 인사를 나누는 상대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아주 맛있는 맛집이라고 하여도 인사하는 모습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 싶으면 가지 않는다. 인사를 할 때는 밝은 미소를 장착해야 한다. 그 미소에는 반드시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며 하루를 연다면 인사를 받는 쪽보다 행복감이 더 커질 것이다. 오늘, 승강기에서 이웃을 만난다면 먼저 인사를 하는 것도 좋겠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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