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자사 뉴스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5월 27일 이른바 ‘아덴만 영웅들’이 귀국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작전 끝에 훌륭한 전과를 세운 군인들이 귀국하는 장면을 KBS는 유별나게 혹은 ‘공영방송 답게’ 생중계했다.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을 KBS 화면으로 보면서 국민들은 애국심을 다시 한 번 환기했을 터다. 또 TV뉴스에서도 이 모습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아래는 KBS, MBC, SBS, 이렇게 3사의 메인뉴스 제목이다. 차이가 없다.

KBS ‘아덴만의 영웅 귀환’
MBC ‘아덴만의 영웅 귀환’
SBS ‘아덴만의 영웅들 귀환’

▲ 5월 27일 저녁, 방송3사 메인뉴스의 ‘최영함 귀환’ 관련 보도 캡처.
‘최영함 귀환’, 이런 드라이한 제목을 뽑을 수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분위기 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분명 중요한 뉴스이고 당시 상황을 그림(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트레이트 뉴스 아니라 드라마타이즈의 리포트를 선택한 것도 당연하다. 건조한 스트레이트 보다 ‘영웅들’의 생생한 육성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방송3사의 차이는 사흘 뒤 발현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30일 청해부대 장병들을 청와대에 불러 사열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널따란 청와대 앞마당에 부대원들을 사열하고 대통령이 이들에게 애국심을 역설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KBS는 이 장면을 활용해 청와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3일 전에 이미 귀환한 ‘아덴만의 영웅들’을 다시 한 번 우려먹는 청와대의 각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준 셈이다.

이 날 KBS 9시 뉴스는 10번 째 꼭지에 이 소식을 리포트로 배치했다. (MBC와 SBS는 단신으로 드라이하게 다뤘다.) 제목은 무려 ‘아덴만 영웅 귀국 신고’. 국민들에게 이미 ‘귀국 신고’를 했지만 대통령에게 따로 ‘귀국 신고’를 했다는 뜻인가. 리포트의 내용도 당일 행사를 스케치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포트 워딩도 대통령 관련 리포트의 클리셰들로 가득 차있다. 눈에 심히 거슬리는 두 부분만 지적하고 넘어가자.

1. 외국 원수들의 국빈 방문 때 공식 환영식이 거행되는 청와대 대정원에 청해부대 장병들이 도열했습니다.
→ 이 내용은 청와대에서 밝힌 것이다. 국빈 방문 이외에 국내 행사에 처음으로 대정원을 개방했다고. 참 이상하다. 작년 한글날 어린이 기자들을 초청해 행사를 가진 것은 국빈 방문 행사였던가. (사진) 기사를 검색해보니 청와대 대정원에서는 참 많은 행사가 열렸다. 검색 한 번 하면 아는 거짓 내용을 이렇게 떡하니 도입으로 밀어 넣은 기자는 청와대와 신뢰관계가 참 돈독하다고밖에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첫 번 째 문장은 그냥 ‘청와대 대정원에 청해부대 장병들이 도열했습니다.’ 이 정도로 가는 게 맞다.

▲ (서울=연합뉴스) 2010년 10월 9일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한글날 행사 모습.

2. 이명박 대통령은 조영주 함장을 비롯한 장병들에게 무공훈장을 직접 달아주며 노고를 격려했습니다.
→ ‘직접’이라는 워딩은 기자가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해준다. 기자 처음 할 때 배운 것처럼 수식어를 가급적 배제하자. 그냥 “무공훈장을 달아주며”로 가는게 맞다. 담백한 게 좋은 기사다. KBS가 조선중앙방송은 아니지 않는가.

KBS의 대통령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80년 대 땡전뉴스 시절에는 폭우로 수십 명이 죽어 나가도 전두환이 동사무소 순시한 소식이 톱이었고, (한편) 이순자가 고아원 방문한 소식이 세컨 톱이었다. 땡전뉴스가 끝나고 시절이 흘렀지만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취재원, 혹은 뉴스 소스라는 명분 아래서다. 그 애정을 지나치게 과시한 덕에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정치부장이 청와대 수석으로 입성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비교적 정상적(?)이었을 때는 노무현 정부 때 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상대적인 평가지만 말이다.

지난 5월 정부 부처 장관 개각이 있을 때 청와대 출입기자가 작성한 KBS 리포트를 보자.

5월6일 9시뉴스: 결국 박 장관의 중용은 핵심 국정과제들을 임기말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환경부 장관에 여성인 유영숙 전 키스트 부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장애인인 이채필 차관을 발탁한 것은 소수 소외 계층을 배려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국토해양부 장관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기술고시출신 이공계 인사를 내정한 것도 이공계를 우대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남 3명에 충청과 강원 각각 한 명씩으로 지역 안배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정치인 출신을 배제한 것도 특징입니다.

개각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했다. 5개 평가 항목 가운데 청와대의 시각이 아닌 것이 어떤 것일까. KBS의 청와대 출입 기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신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KBS의 청와대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때는 청와대 고위 인사의 비리가 KBS 기자들의 특종으로 밝혀질 때다. 박재완 장관이 청와대 비서관 시절 논문 이중게재 문제를 파헤친 리포트는 KBS 간부의 저지로 무산이 된 적이 있다. 6월 14일 김해수 전 청와대 비서관의 비리 의혹 리포트도 우여곡절 끝에 방송은 됐지만 결국 특종을 SBS에 빼앗기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KBS 간부들의 청와대 사랑은 정말 끝이 없다. KBS에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을 앉힌 것은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인가. 청와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청와대가 무서운 것인지도 가끔 혼란스럽다. 제발 시청자를, 국민을 무서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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