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의 복귀작 싸인은 성공도 거뒀거니와 재벌과 신데렐라, 삼각관계 등 천편일률적인 한국 드라마의 소재를 넓힌 성과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싸인에 관련된 것 중에서 적어도 하나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싸인이 방영 전부터 한국 최초의 메디컬 수사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내세웠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싸인 이전에 이미 신의 퀴즈(OCN)라는 드라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범위를 공중파로 좁힌다면 싸인이 최초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케이블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한국에서 메디컬 수사 드라마를 처음 시도한 것은 류덕환, 윤주희가 열연했던 신의 퀴즈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공중파 드라마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까닭에 싸인이 한참 주가를 올릴 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신의 퀴즈는 남녀 주인공 캐릭터 만들기에 성공하고, 드라마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갖춰서 마니아들의 뜨거운 반향을 이끌었다.

공중파 드라마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케이블 드라마로서 3%의 시청률이라면 대박이라고 한다. 굳이 공중파로 추정 환산한다면 최소한 10% 이상으로 볼 수 있다. 그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는 않을 것이다. 케이블도 알게 모르게 많은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토록 집중된 관심을 받게 된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CSI와 닥터 하우스의 완벽한 결합

신의 퀴즈는 드라마 구조적으로는 미드 닥터 하우스와 CSI를 아주 적절하게 결합시켰다. 사실은 닥터 하우스쪽 구조가 더 많다. 두 드라마 모두 희귀병을 추적하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닥터 하우스는 그 병을 찾아 극적으로 치료했지만, 신의 퀴즈의 한진우는 희귀병을 알아냄으로써 살인자를 찾게 한다는 점에서 같으면서도 다르다.

또한 신의 퀴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한진우의 캐릭터가 기존 한국 드라마에 없는 것이어서 흥미롭게 드라마에 딸려 들어갈 수 있다. 한진우라는 캐릭터는 근경으로는 닥터 하우스가 보이고 원경으로 일드 히어로의 기무라 타쿠야가 보인다. 얼핏 엽기발랄한 닥터 하우스로 봐도 무방하다. 잘난 척하고, 깝죽대지만 묘하게 밉지 않고 정이 가는 캐릭터를 류덕환이라는 배우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런 류덕환이 천재 의사로서 현미경 같은 직감과 통찰로 피살자의 사인을 밝혀낸다면, 그 사실을 근거로 범인을 잡는 것은 놀랍게도 추노의 작은 주모 윤주희다. 추노에서는 비록 아주 작은 역할에 불과했지만 엉뚱하고 은근한 관능미로 남성팬을 설레게 했던 윤주희는 신의 퀴즈에서는 차갑고 무뚝뚝한 수사관 정경희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천방지축으로 까불어대는 한진우과 조화가 잘 이룬다. 한진우의 말에 의하면 강경희 경사는 심장이 두뇌 옆에 있어서 감정조절이 정확하고, 빠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이런 식의 드라마는 사실 한국에서는 신의 퀴즈가 처음이지만 일본 드라마에서는 인기가 높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갈릴레오을 먼저 떠올릴 수 있고, 최근 작품으로는 마츠시타 나오와 수지키 나오히토 주연의 컨트롤 범죄심리수사를 들 수 있다. 일드의 천재들은 여자 형사들을 다소 무시하는 캐릭터지만 신의 퀴즈 한진우는 강경희를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다르고 또 바람직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주 귀엽다.

어쨌든 무의식적으로 공중파 채널만 뒤적이던 습관을 버리고 케이블로 눈을 돌리면 의외로 좋은 드라마들을 찾을 수 있다. 신의 퀴즈는 그것 중 하나로 분명 실망시키지 않을 작품이다. 물론 공중파 드라마처럼 대단한 스타들이 나오진 않는다. 오로지 드라마의 완성도의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스타도 없는데 재미까지 없으면 단 일 분을 기다려주지 않는 시청자들을 고정시킨 시즌1의 성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10일 자정에 시작된 신의 퀴즈 시즌2의 시작은 자해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려고 하는 리스트컷 증후군이라는 아주 생소한 사회 심리적 문제와 더불어 증상은 혈우병과 비슷하지만 원인은 전혀 다른 혈소판 무력증의 두 의학적 요소가 등장했다. 6일 간격으로 하나씩 등장하는 토막난 사체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모두 다섯 조각. 그런데 그것은 동일인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사체로부터 나온 조작들이다. 이제 다음 6일 후에 발견될 부분은 사람의 얼굴이다.

그러나 마지막 여섯 번째 사체는 기존 발견된 것과 달리 아직 살인이 이뤄지지 않았다. 살인자는 한진우에게 희생자의 목숨을 건 게임을 걸어왔다. 시즌2 첫 번째 에피소드는 2부작으로 구성됐다. 다음 주에 한진우와 엽기적 사이코패스와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된다. 한진우가 이기겠지만 생소하지만 몰입하게 되는 의학적 전문지식과 천재의 기발한 역발상으로 반전을 이끄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신의 퀴즈를 즐기는 시청 포인트다. 또한, 신의 퀴즈에는 신랄할 비판 의식과 메시지가 자주 발견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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