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은둔형 외톨이, 이는 바다 건너 일본의 사회적 현상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접촉이 어려워서 그렇지, 학교를 가지 않고 구직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 인구가 19% 정도에 달할 것이라 전문가들을 추정한다. OECD 평균의 몇 배에 달하는 숫자다.

일명 ‘은둔형 외톨이’라 칭해지는 사회적 고립 청년. 3개월 이상 집안에 머물며 가족 등과의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로 있는 청년들을 뜻하는 말이다. 3월 29일 <SBS 스페셜>은 이 청년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다.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 개인적인 일탈로 여겨지고 있는 이들 청년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회적 고립 청년'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세대가 낳은 그늘이며, 사회적 현상으로 적극 대처해나가야 한다 주장한다.

스스로 택한 고립

SBS 스페셜 ‘2020 은둔형 외톨이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편

18살 상민이, 아빠의 생신에 온 가족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도 상민이는 방문을 닫고 만다. 가족과 얼굴을 마주한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 중2 때부터 학교 가기를 싫어하더니 고등학교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아예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2개월째, 방안에만 머무르고 있다.

방에서 상민이는 무얼 할까? 하루 종일 침대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부모의 바람은 온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이지만, 차라리 안 먹을지언정 식탁에 나서지 않는다. 결국 엄마가 상민이 먹을 밥을 들고 방으로 가져다준다.

23살 민준 씨도 마찬가지다. 1년 넘게 방에서 산다. 학교 다닐 때는 지각, 결석도 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군대도 다녀왔고 제대 후 친구들 만나러 나가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 그는 '칩거'한다.

하소연도 해보고 다그치기도 해봤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민준 씨의 답은 냉정하다. '바라지마, 도와주지마, 내 스스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굶어 죽었구나 해'.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포기한 아들이 나가서 어떻게 될까봐, 차라리 답답한 게 낫다며 눈물을 흘린다.

SBS 스페셜 ‘2020 은둔형 외톨이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편

도대체 이들 사회적 고립 청년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 내린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 청년들은 그 '정의'를 배반한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의로부터 '고립'이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가 찾은 상민이. 어렵사리 말문을 튼 상민이는 힘들어서 그랬단다. 학교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그러면서 이게 편하니 그냥 이렇게 살겠단다. 정말 편할까?

26살 민성 씨는 반복적인 고립 생활을 한 지가 벌써 4년째다. SNS를 보면 친구들은 잘살고 있는데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패배감'이 자꾸 그를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자신에 대해 가족조차 불편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그를 더 세상 밖으로 나갈 자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편했을까? 천국과 지옥을 반복했다고 한다. 5년 동안 고립 생활을 했던 28살 유승규 씨 역시 마찬가지다. 엉망진창이었던 시간, 순간순간 제정신이 될 때 그런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단다. 자신이 싫었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거기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단다.

밀레니엄 세대의 그늘

SBS 스페셜 ‘2020 은둔형 외톨이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편

흔히 90년대 생, 밀레니엄 세대를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세대라고 한다. 거기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똑부러진 세대. 평균적인 모습으로 비춰진 이 세대의 모습은 동세대 청년들에게는 '1등만 기억하는', 과잉 스펙과 외향적인 태도가 강요되는 시대로 짐 지워진다. 캐치프레이즈처럼 강요된 시대 정신에 '쟤네들처럼 살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청년들은 ‘늦었다, 실패자다’라며 스스로 낙인찍게 되고, 그중 더 예민한 친구들은 숨어 들어가 고립을 강제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과 경쟁에서 최고의 성취가 약화되지 않는 한, 사회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청년들의 대열은 줄어들 수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리고 그 실례를 민성 씨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한 '가정 폭력'을 잊을 수 없다고 하는 민성 씨. ‘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라며 변명하는 부모님. 하지만 그런 가정 폭력을 둘러싼 민성 씨네 가족불화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니 그곳에 민성 씨의 자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자퇴를 하게 된 민성 씨. 하지만 부모님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아들이 자퇴를 결심했는지 살펴보기에 앞서, 자퇴만은 막아야 한다며 동분서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던 어머니. 그런 아들을 용납할 수 없어 손찌검을 한 아버지. 그 시절의 앙금은 고스란히 민성 씨에게 남아 '고립'의 계기로 작용했다.

물론 처음부터 고립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두 발로 세상을 디딜 자신이 없어 조금만 쉬겠다고 생각했던 생활이, 게임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내다 보니 어느덧 2~3년이 훌쩍 지나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정말 세상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리며 '고립'이 강제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초기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대응하여 사회적 고립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가족을 비롯한 외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고립 청년이 어느덧 고립 ‘장년’이 되어버리는, 30년이 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고립 청년 100만의 사회적 현상은 이제 80대의 부모가 50대의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노화로 비롯된 또 다른 양상의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SBS 스페셜 ‘2020 은둔형 외톨이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편

이에 일본 히키코모리 문제의 권위자, 사이토 타마키 교수는 고립 기간이 짧은 사람일수록 생활패턴을 바꾸기 쉽고 사람을 다시 사귀기가 쉽다며 빠른 대처를 요구한다.

이런 전문가의 권유에 따라 고보리 모토무 대표는 K 고립 청년들을 위한 공동체를 마련했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집을 떠난 민성 씨가 찾아간 곳도 이곳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 외에 특별한 요구 조건이 없는 이곳의 모토는 단순하다. ‘느려도 괜찮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자. 서로 도와주자’ 사회로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선 청년들에게 공동체는 편견 없이 바라봐주며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준다.

이렇게 살겠다고 놔두라던 상민이 역시 가족,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한 저녁 밥상에 앉았고, 아버지와 산책도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버지가 날마다 '사랑하는 상민아'라며 편지를 썼다.

최근 코로나19 감염 사례에서 등장한 대구 모처를 비롯한 여러 곳의 청년 집단 거주처. 사회는 그저 사이비에 '감염'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창창한 나이'의 청년들이 가족들과도 인연을 끊은 채 종교를 택한 '현상'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 역시 종교로의 고립을 택한, 또 다른 사회적 고립 청년 집단일 수도 있으니까.

사회적 성취, 특히 최고의 성취가 청년들의 목표로 일괄적으로 강요되는 세상에서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느새 OECD 기준의 몇 배를 넘었다는 사회적 고립 청년들, 그건 우리 사회 성취 지상주의가 낳은 상흔이다. 그리고 그 상흔에 대해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SBS 스페셜>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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