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세간에 씁쓸한 우스개가 있다. '앞으로 2주가 분수령'이라는 말을 지난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한 달 전에도 들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적극 협조했던 사람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 심장병, 치매, 우울증 등의 발병이 늘어나는 등 개개인의 정신 및 신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학적 보고마저 등장하고 있지만 '답'이 없다. 이런 때일수록 결국 챙길 건 '멘탈'이다. 바로 그 '멘탈'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 '특효약'인 영화가 있다면? 바로 <모리의 정원>이다.

은둔? 아니 정원이 너무 넓을 뿐

일본의 정원하면 곱게 다듬은 나무, 정갈한 바위, 수풀과 붉은 잉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는 연못을 떠올릴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하지만, 알고 보면 자연을 뺨칠 만큼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인간의 지대한 노력이 경주된 곳. 그래서 곳곳의 정원들은 그 자체로 유명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이미지

하지만 <모리의 정원>에 등장하는 정원은 그렇게 인간의 손길이 더해진, 풍광 좋은 정원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조감'으로 비춰지는 모리의 정원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의, 조금 넓은 수풀 우거진 '마당'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곳이다.

물론 모리의 정원에도 연못이 있다. 심지어 모리가 30년이나 가꾼. 하지만 그곳도 특별하게 다듬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94살이 되어버린 모리 옹이 홀로 구덩이를 파서 연못을 만드느라 오래 걸린 연못이다. 구덩이를 파서 빗물이 고여 저절로 연못이 된 곳, 그곳에 강가에서 옮겨온 송사리가 산다. 좋게 말해 연못이지, 물구덩이에 가까운 그곳이 날마다 모리가 시간을 보내는 연못이다.

딱히 '인공적'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그 무성한 마당에 오늘도 94살 모리 옹은 '출근'을 하신다. 집 앞에서 빨래를 널던 아내는 머리 숙여 다녀오시라 한다. 옷을 여미고 허리춤에 주머니를 찬 채 나막신을 신고, 지팡이 두 개를 짚으며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호기롭게 길을 떠난 모리 옹. 그 기세에 길 가던 도마뱀이 혼비백산 수풀로 몸을 피한다.

그런데 길을 따라 방향을 튼 모리 옹이 자신의 길을 막은 여리여리한 나뭇가지 하나에 그만 시선을 빼앗긴다. 눈이 휘둥그레진 모리옹,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겨우 나뭇가지와 헤어지니 이번에는 흰 고양이 한 마리, '이보게' 하고 인사를 청한다. 나풀나풀 나비에게 '어디에서 날아 오셨나?'며 매료된다. 마치 나비에 시선을 빼앗겨 무릉도원으로 찾아간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모리 옹이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아내가 배웅하던 그 집 앞이다. 여전히 빨래를 널고 있던 아내와 눈이 마주친 모리 옹은 한탄하듯 말한다. '연못이 멀구만'.

이런 식이니 연못까지 가는 데만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겨우 연못에 도달하면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송사리 몇 마리에 시선을 빼앗겨 한나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개미는 어떨까? 바닥에 머리를 대고 개미를 바라보기만 하는 게 얼마 동안이었는지. 모리 옹을 기록으로 남기려 찾아온 포토그래퍼에게 모리 옹은 자신의 발견을 전한다. '요즘 알게 된 건데 개미는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인다네', 그 모리 옹의 발견을 공감하기 위해 그날 하루종일 개미와 눈높이를 맞추던 포토그래퍼와 그 제자. 하지만 결국 눈을 비비며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0년이라지만, 그 30년의 세월 동안 헤맨 정원이 결코 '좁지 않다'. 그를 찾아온 외계인이 자신과 함께 우주로 가자 하지만(?), 모리는 자신에게 우주보다는 정원이 넓다며 거절할 이유가 된다. 나무통, 휘어진 나무, 뒤집힌 화분, 그루터기 14군데 자신만의 쉼터를 전전하며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히 넓은 정원에서 매일매일이 새로우니, 그런 자신을 두고 '신선'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평가를 모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내와 조카와 함께한 밥상머리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괴팍하게 펜치까지 동원해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뿌려대며 반찬들을 절단내는 괴팍한 노인네라 치면, 하루 종일 개미를 보느라 바닥에 누워있는 모리 옹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라지만 밖은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계절, 우리 역시 해마다 피는 꽃이건만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렇게 보면, 새로 뻗어난 가지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리 옹과 우리가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도대체 어느 만큼 '마이크로'한 시선을 견지하면 개미가 움직일 때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이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좁은 마당도 우주보다 넓게 볼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바로 그런 모리 옹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30년 만에 개미의 왼쪽 두 번째 다리의 움직임을 깨달은 모리 옹다운, 아이처럼 순수한 그의 그림이 영화 속 당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우리 역시 마음속에 그런 모리 옹과 같은 지향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일 것이다.

모리 옹의 정원은 그저 모리 옹의 '출근'처만이 아니다. 94세 당대 최고의 화가조차도 학교라 하며 가기 싫어하지만 매일 밤 '등교'해서 그린 그림의 대상일 뿐도 아니다. 주변에 아파트가 생겨 마당에 그늘이 드리워지게 생긴 상황, 찾아온 아파트 건축 업자에게 모리 옹의 아내는 말한다. 이곳은 남편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벌레와 나무와 고양이와 새가 함께 사는 공간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이미지

그렇게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당대 최고 화가가 30년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정원'이 아파트로 인해 위기에 빠지자 젊은 예술가들은 모리 옹의 집 앞에 벽보를 붙이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문패만 붙이면 제아무리 못질을 철저하게 해도 도난 당하고야 말 정도로 유명한 모리 옹의 글씨체. 모리 옹이 쓴 글씨로 자신의 간판을 내세우면 장사가 잘될 것이라 찾아온 여관업자에게 모리 옹은 그가 원하던 여관 이름 대신,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구를 써주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렇게 남의 집 간판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린 모리 옹답게, 지난 30년을 당신 손으로 흙을 퍼서 만든 연못을 다시 메꿔달라며 다른 사람도 아닌 아파트 인부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30년을 들여 만든 연못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도록 '선택'한 모리 옹 덕분에 정원에 사는 생물들은 다시 햇빛이 비치는 땅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버리는 것 같지만 모두가 같이 살아가는 길.

영화 속에서 모리 옹은 자신의 조용한 삶을 흐트러뜨리는 사람들의 방문을 마땅찮아 한다. 하지만 웬걸. 모리 옹의 집에는 하루종일 드나드는 사람들로 매양 분주하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볼일을 보겠다고 찾아온 인부부터 그의 그림을 얻겠다 찾아온 사람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를 사람들까지.

그의 집에 그림자를 드리울 아파트를 짓던 인부들은 반딧불이처럼 헬맷에 불을 밝히고 찾아와 하루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마시다 간다. 정원에 드리운 풀과 나무와 벌레처럼, 그렇게 사람들도 모리 옹의 집에 머물다 간다. 우리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절, 본의 아니게 버려진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는 대신, 모리 옹처럼 혹시나 '버려진 시간 속에서 새로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지.

<모리의 정원> 주인공인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는 실제로 1932년에 집을 지어 1977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분한 야마자키 츠토무의 권유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며 돌아가실 때까지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의 세계를 '자연을 향해 열린 세계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물질문명'에 젖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을 반추할 기회를 전한다.

2018년 상하이, 밴쿠버, 샌디에이고 등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 후보로 지정되기도 한 <모리의 정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키키 키린의 유작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그 어떤 작품보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 하지만 퐁당퐁당 좌석 배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시대, 극장에 가 햇빛이 가득 찬 푸르른 정원과 그곳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리 옹 부부를 꼭 보라 권유하기가 무색한 이 시절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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