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가 청와대 국민 청원을 넘어 정치계·언론계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언론사에 기사화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고 'n번방 방지법' 졸속 처리 논란이 불거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항의전화를 걸고 있다.

경찰은 24일 심의위원회를 열어 ‘텔레그램 n번방’ ‘박사’ 조 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지만 조 씨를 포함한 대화방 참여자 전부에 대한 신상공개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총 4개의 ‘n번방’ 관련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 답변 대기 중에 있다. 18일 올라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달라’는 청원은 나흘 만에 200만 명을 훌쩍 넘겨 2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20일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한다’는 청원은 150만 명을, 같은 날 올라온 ‘가해자 n번방 박사, n번방 회원 모두 처벌해달라’는 청원은 35만 명을, ‘n번방 대화 참여자들도 명단 공개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원은 30만 명을 넘겼다.

(사진=국민청원 게시판)

가해자들에 대한 신상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를 요청하고 있다. SNS상에는 KBS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 번호를 공유하며 'n번방' 관련 기사화를 촉구하는 형태의 매뉴얼까지 등장했다. 19일 KBS시청자청원게시판에 올라온 ‘n번방 사건 저녁 9시 뉴스 메인으로 보도 바랍니다’는 글은 23일 기준 8만5천 명의 동의를 얻었다. 21일에 올라온 유사한 청원 역시 966명의 동의를 얻었으며, ‘심층취재 해달라’는 청원 역시 834명의 동의를 얻었다.

앞서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로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졸속 입법 논란에 휩싸이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의 문제 발언이 도마위에 올랐다. SNS에서는 위원들의 발언과 번호를 공유하며 항의전화·문자 폭탄을 보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3일 법사위는 계류 중이던 딥페이크 처벌 관련 성폭력특례법 개정안 4건과 해당 청원을 병합해 심사했다. 청원의 주된 요구 사항이었던 ‘텔레그램 해외서버 수사를 위한 경찰 국제 공조수사’,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자 강한 처벌을 위한 양형기준 재조정’ 등은 법안에서 빠졌다.

또한 논의 중에 드러난 위원들의 안일한 인식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딥페이크 등 성범죄 처벌 범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N번방 사건은 저도 모른다”며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갈 거냐”고 발언했고, 같은 당 김도읍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라고 했다. 소위원장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3일 “국민청원의 일부인 ‘딥페이크’에 대한 논의를 법사위 소위에서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발언들이 나오기도 했다”며 “정치권과 정부의 이런 무지와 무책임이 오늘날의 디지털 성범죄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심 대표는 “이번 사건은 범죄 가담자가 26만 명이나 되는 전대미문의 디지털 성착취범죄이며, 이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400만 명에 이르는 등 국민적 분노가 크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청원에 직접 응답해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과 법무부에는 단호한 수사와 특단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으며, 신상정보공개를 책임 있게 추진해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법사위에서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장을 경질할 것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향해 ‘텔레그램 n번방’ 국민청원 입법심사 소홀과 소속의원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러한 분노가 피의자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해외 사례는 수십 년 넘어 종신형까지도 가능할 텐데 우리나라는 사실 성범죄에 대한 처벌 형량이 그렇게 높지 않다”며 “더군다나 직접 육체적인 성폭력을 저지른 게 아니기 때문에 교사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에 따라 징역 10년 상한 아래 위로 예상하지만, 어떻게 될지 재판을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에 가담한 유료 회원들에 대한 처벌수위를 두고는 “시청만 가지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우리나라에는 없기에 증거 확보가 관권이 될 것 같고 그마저도 미성년자 피해자에 대한 것일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라는 상당히 약한 처벌”이라며 “국민들께서 분노하시는 만큼의 법감정이 처벌에 연동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서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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