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TV 조선의 트로트 가수 오디션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기록적 수치를 쏟아내며 끝났다. 최종회 문자 투표 773만 건, 최종 시청률 35.7%다. 문자 투표 과부하로 전산 집계가 중단되는 사고까지 일어나 <미스터트롯>이 남긴 수치들은 무슨 기네스 신기록처럼 뉴스가 됐다. 트로트는 노숙한 장르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TV 같은 미디어에서도 트로트 가수는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미스터트롯>이 메가 히트를 한 건 이미 발행된 기사로 지적됐듯 역설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특화된 기획이 주효했기 때문이다(미디어오늘, ‘TV조선 ‘미스터트롯’ 종편 시청률 신기록, 의미는‘). <미스터트롯> 1~5회 시청자 연령대 구성비는 50대 이상이 70.8%라고 한다. 다만 이건 <미스터트롯>이나 전작 <미스트롯>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인구 구조는 오래전부터 재편되고 있었다. 이 지면에서 여러 번 설명한 것처럼, 문화 산업의 구조와 소비자 취향과 성향 역시 재편되고 있다. <미스터트롯>의 흥행은 그 과정이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알리는 알람이다.

2000년대까지 대중문화는 젊은이들의 유원지였다. 2000년 세대 별 인구는 20대 820만, 30대 850만, 40대 690만, 50대 435만이었다. 20대와 30대가 가장 많고 사오십대로 가면서 큰 낙차로 떨어진다. 새로운 것에 기민함과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소비 수준이 높은 이들. 대중문화 산업은 일이십 대와 동행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웠고 그것만으로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문화적 아이콘, 국민 여동생·국민 MC처럼 이 땅에 사는 사람 전부를 호명하는 이름이 붙는 스타 역시 젊은 세대가 즐기는 문화에서 배출됐다. 서태지나 원더걸스의 ‘텔미’, 아이유, 무한도전의 유재석처럼, 젊은 세대가 현상을 선도하고 나이 든 세대가 기웃거리며 합류했다.

그러나 2018년 세대 별 인구는 뒤집혔다. 국가 통계 포털 KOSIS에서 확인하면, 20대 700만, 30대 740만, 40대 840만, 50대 850만이다. 20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며 사오십대 인구가 이삼십 대 인구를 압도하게 됐다. 나머지 인구를 살펴보면 고령화는 현격하다. 10대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데 60대가 590만 명으로 더 많다. 0~9세 인구가 430만 명이고, 70대 이상은 510만 명이다. 대중문화 소비의 주인공이던 10~30대 인구는 1940만 명이고, 40~60대 인구는 2280만 명, 50대 이상으로 선을 그어도 1950만 명으로 10~30대 인구보다 많다. 최신 대중문화가 젊은이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더이상 내수 수요를 확보할 수 없다.

대중문화의 저출산 고령화는 십 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방점은 영화 관람 산업의 변화였다. 영화 산업은 2012년 사상 최초로 한국 영화 1억 관객 시대를 열었다. 이 사건 아래에서 일어난 게 관객 연령대 변화다. '맥스무비' 통계에 따르면, 2003년 20대 관객은 전체 관객의 70%였다. 하지만 20대 관객은 10년 간 급속히 줄었고 2013년엔 30% 아래로 떨어졌다. 2010년부터 30대 관객이 티켓 예매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처음으로 40대 관객이 20대 관객을 밀어내고 2위에 올랐다. 50대 관람객은 2013년 5.8%에서 2017년 10%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메인 관객층이 바뀐 만큼 영화 내용물도 더 많은 세대, 더 나이 든 세대를 포섭하도록 변했다. 가족 코미디 최초로 천만 관객을 이룬 <7번방의 선물>은 어떤 조짐이었다. <명량>, <국제시장>은 중년·노년 세대 취향의 영화로 1700만, 1400만 관객의 거대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 10년 동안의 관람 시장 팽창은 관객 고령화 현상과 함께 일어났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난 십 년은 대중문화 전반의 메인 소비자 연령대가 구조 조정되는 과정이었다. 90년대 복고 열풍, 영 포티 담론은 대중문화의 주인공이 일이십 대에서 삼사십 대로 교체되는 양위식이었고 그 삼사십 대는 사오십 대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 연령 상향 과정이 이제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 이상까지 올라간 것이다.

<미스터트롯>은 장르는 노숙하지만 포맷과 내용은 늙지 않았다. 오디션 참가자 다수가 이삼십 대 청장년이고, 심사자 중엔 아이돌 출신 연예인 시아준수가 있었다. 시청자 참여 서바이벌 오디션 역시 엠넷에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제작해 온 방송이다. <미스터트롯>이 엠넷의 오디션 방송보다 낫거나 세련된 점은 없다. 오히려 한 발 뒤늦게 시도된 기획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인생이 진행형이라 느끼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는 ‘백세 인생’ 세대에게 익숙하지만 싱싱한 오락거리로 제공되며 증폭 효과를 일으켰다. 스마트폰 보급도 십 년이 지났고 나이 든 세대는 이 신매체에 거의 적응한 상태로 미디어 리터러시가 향상돼 있다. 참여형 오디션 방송의 백미는 방송에서 파생돼 뉴미디어에 맞춤형으로 올라오는 온라인 콘텐츠인데 이것을 받아들이고 소비할 준비가 되어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유튜브 이용 시간이 가장 많은 세대가 50대 이상이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최신 대중문화의 ‘실버 산업화’ 가능성을 보여 준 모델이다.

이만큼 성공한 기획이 <쇼미 더 머니>와 <프로듀스>처럼 시즌제로 이어질 거라 예상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동일한 소비자를 겨냥한 유사한 기획의 방송이나 오락거리가 제작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세대가 즐기던 타입의 엔터테인먼트에 점점 더 익숙해질 것이고 또 다른 트렌드를 기다리게 될지 모른다. <미스트롯>의 송가인은 스타가 됐고, 출신 가수들은 행사장을 돌며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 뉴스가 쇄도했다. 이 시장의 기대 규모가, 예를 들어 <쇼미 더 머니>가 키운 힙합 시장의 파이보다 작을까? 힙합을 즐기는 일이십 대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세대가 소비자다. <쇼미 더 머니>는 마니아 시장에 본진을 두고 있던 장르 음악을 대중문화에 부속된 하프 메인스트림-하프 서브컬처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은 그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노인들을 위한 일부 채널, 방송, 행사장에 주변화돼 있던 트로트 음악이 트렌디한 포장으로 대중문화 중심부에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깔았다고 할까. 이걸 기존 성인 가요 시장이 재구조화되는 '실버 엔터산업'이라 부르면 어떨까?

글을 쓰며 ‘대중문화’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대중문화의 시대가 아니다. 대중은 커다란 무리, 단일한 계통의 매스 미디어에 의해 의식화되는 군중이다. 미디어가 만화경처럼 분화된 시대에 대중이란 존재는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고 따라서 대중문화도 없다. 그럼에도 <미스터트롯> 시청률 35.7%는 대중문화 시대의 그것에 버금가는 수치다. 지상파가 아니라 종편 방송이란 걸 감안하면 실제 수치는 그 이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은 방송이 진행되며 계단형으로 상승했다. 시청률이 화제성을 일으키며 유입한 시청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중 다수는 50대 이상이겠지만, 젊은 세대의 관심도 컸다고 한다(미디어리퍼블릭, ‘트로트 장르, 전 연령층에 파고 들고 있어...20~30대 '미스터트롯' 포스팅 70% 육박’). 나이 든 세대가 시청률로 집계되는 화제성을 닦고, 오디션 장르에 취향을 가진 젊은 세대가 트로트를 마니아틱한 서브컬처처럼 소비하며 온라인 화제성을 증폭했다는 뜻 아닐까. 오래된 대상이 새로운 맥락과 만나 중년 세대에 무게 중심을 둔 채 세대의 경계를 넘는 화제성을 일으키는 건 처음도 아니다. ‘50대 아이돌’ 양준일 신드롬이 보여준 현상다.

나이 든 이들은 오프라인 인맥이 온라인 인맥을 압도하고 매스 미디어의 유산, 고정형 TV 시청 비중이 가장 큰 집단이다. 이들은 덩어리 큰 화제를 일상 밑바닥에서부터 공유하기 쉽다. 그리고 세상에는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많고 더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도 문화 산업의 트렌드에는 새로운 것에 기민한 청년들이 가장 가까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TV와 온라인, 오프라인을 포괄하는 규모의 문화적 '신드롬'은 이제부턴 노인들이 선도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이 대중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대중성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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