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온 국민이 축제로 맞이해야 할 대통령 취임식 날 이런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성 검증이 능력 검증보다 더 중요할 수도

이명박 정부의 장관 내정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본인과 배후자를 비롯한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나 이중국적 등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도 유감스럽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당선자)과 인수위원회가 진짜 검증하려는 의지 자체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는데 있다.

▲ 한겨레 2월25일자 3면.

장관직은 국민의 직접 선출을 통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목민관 자리다. 그래서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능력은 장관직을 일정한 기간 동안 수행한 뒤에라야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능력 자체를 사전에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도덕성 검증이 중요한 것이다. 능력을 평가해 계량화하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도덕성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 수단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전산망 통한 부동산 실태 파악은 식은 죽먹기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강국이다. 유무선 통신망을 비롯한 각종 통신 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가지 행정전산망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대해서는, 국가 기관의 협조만 얻으면 어렵지 않게 검증이 가능하다. 부동산에 관한 정보망이나 기초적인 검증 방법을 보자.

전국의 부동산(건물과 토지)이 전산화되어 있다. 그래서 정부당국이 합법적인 목적으로 국세청과 건설교통부 등에서 관리하는 부동산전산망을 통해 사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보유 부동산 목록을 파악할 수 있다.

각 시군구에서는 관할 지역에 소재하는 부동산전산망을 통해 그 지역에 있는 부동산 소유자들의 실태를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부동산취득 ‘적법성’에 초점 맞췄다는 대변인 발표도 이해 안돼

일부 보도에 따르면(미디어스 민임동기 기자의 ‘과거엔 다 물러났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시라’ 참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모든 사정기관을 동원해 철저히 검증했다”고 하는데, 사정이 이러하므로 ‘어떻게 검증했길래?’ 하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게 되어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22일 논평을 통해 "최근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능력과 국가관이며, 정당한 부를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 논평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 대변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부동산의 경우 취득과정의 '적법성'에 초점을 맞췄으며, 이에 따라 불법적인 요소가 드러난 상당수 후보자들이 탈락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자는 여기에 이번 파문과 논란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본다.

▲ 경향신문 2월25일자 사설.

장관 후보자들 본인과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여러 곳에 토지 등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 현재 혹은 그동안 거주하고 있던 주소지 등과 비교하면 부동산 취득의 적법성 여부는 물론, 투기의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미심쩍은 구석을 찾아낼 수 있다.

"검증 전문가, 실무자 십여명이 한 달 동안 철야 작업을 하면서 1천명이 넘는 후보군을 철저히 검증해 불법성, 파렴치한 행위, 치명적 부도덕성 등을 걸러 냈지만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 대변인의 발언은 솔직한 문제점 시인이라기보다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발언처럼 들린다.

이 대변인은 "미국의 경우 당선자 측에서 수천명의 장관후보군 명단을 FBI에 제출하면, FBI가 몇 달 간에 거쳐 정밀 조사한 뒤 당선자에게 결과를 전달하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 시스템에 관한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에 대한 이 대변인의 이같은 발언도 다른 의혹의 검증에는 통할 수 있는 비교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부동산 보유 등에 관한 검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전국부동산전산망을 비롯한 행정전산망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검증은 검증 축에도 못 들어가

게다가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할 때 땅 덩어리도 좁고, 총기 보유 및 사용도 금지하고 있고, 주민등록신고와 주민등록증 등에 의해 주소지 변경 등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각종 세무행정 업무와 관련한 전산망도 잘 갖춰져 있다.

따라서 주민등록증 혹은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 부동산 등기부 등본, 법인 등기부 등본, 토지 및 건축물 대장, 도시계획안 등 공증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각종 증빙서류 등을 통해서도 검증하기 어려운 사안이면 몰라도, ‘모든 사정기관을 동원해 철저히 검증했다’는 장관 후보자들의 가장 기초적인 부동산 관련 정보 파악조차 허점이 드러났다면 문제는 둘 중 하나다.

애초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이나 인수위원회가 부동산 취득에 관해서는 본질적으로 문제삼지 않기로 했거나, 아니면 이미 갖춰져 있는 부동산전산망을 이용한 기초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 ‘운용’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항용유회,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할 일만 남아

대통령이 성공해야 백성과 나라도 편한데, 정말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

‘항용유회(亢龍有悔).’ 주역 64괘 중 맨 처음 나오는 건위천(乾爲天) 괘의 맨 위 효사(爻辭)다. “(능력 이상으로) 너무 높이 올라간 용(사람, 지도자)은 후회할 일만 남는다.”

5년 뒤 오늘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이명박 대통령은 더욱 낮은 자세로 서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심기일전하기 바란다. 5년은 금세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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