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는 분명 정점을 찍었다. 임재범의 등장으로 나가수는 비로소 완성되었고, 논란 없는 감동 예능으로 자리를 굳혔다. 시청률이야 1박2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 이슈만은 이제 대한민국 예능 1위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는 유재석, 강호동 없이 대박을 친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김영희 PD의 숙청에 가까운 경질로 인해 바통을 이어받은 신정수 PD의 나가수 청사진에 문제가 발견됐다. 차기 시즌은 아이돌 위주가 될 수도 있다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을 내비친 것.

분명 프로그램을 만드는 권한은 PD에게 있다. 그러니 나는 가수다를 어떻게 만들건, 또 어떻게 망치건 모두 PD 마음이다. 또한 비난여론이 거센 옥주현을 섭외하거나 다른 누굴 섭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리적으로 PD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정수 PD가 다음 시즌을 아이돌 위주로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하고야 말 것이다. 엿장수 마음인데 어쩌겠는가.

그 엿장수 마음에 시청자가 발끈하고 나섰다. 아이돌 출신 중 한두 명을 섭외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 위주로 방송하겠다는 것은 작정하고 프로그램을 망치겠다는 것과 다름없이 들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뻔히 KBS에서 아이돌 판 나가수인 불후의 명곡2가 시작되는 마당에 신PD의 발언은 선의의 해석이 불가능해 보인다. 한마디로 “미친 거 아냐”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임승차자 신정수 PD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PD는 프로그램에 형식적인 이름 석 자를 새기는 것이 아닌 진정한 자기 색깔을 갖고 싶어 한다. 임재범의 활약으로 나가수가 논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호응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잘돼도 나가수는 김영희 것이지 신정수 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불만일 수 있다. PD 역시 쟁이인 까닭에 어쩔 수 없는 불만이자 고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가수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욕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그의 욕망과 고민을 너무 빨리 그리고 경솔하게 내비친 것은 잘못이다. 나가수는 이미 피디만의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신정수 PD만의 것은 아니다. 아직은 김영희 PD의 이름이 더 짙을 수밖에 없고, 일밤을 절망에서 건져낸 시청자의 호응이 더 크다. 잘 흐르고 있는 강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물길을 바꾸려는 것은 환경만 파괴할 뿐이다.

나가수의 성공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지만 아이돌 위주로 가는 것은 그 해결방법이 아니다. 나가수가 반 아이돌 정서의 표상이 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더욱 반대할 수밖에 없다. 나가수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아이돌에 독점된 천편일률적 방송에 대한 반발심리가 존재한다. 그것은 신정수 PD 자신이 만든 놀러와 세시봉 특집을 계기로 전면에 나서게 됐으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신정수 PD의 임무는 나가수에서 김영희란 이름을 지우는 일보다 나가수를 좀 더 완성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가수가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현재 방식은 가수들을 지나치게 긴장과 강박에 가두고 있다. 그로 인해 가수들이 정신적으로 혹사당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지금 당장은 환호에 가려질 작은 목소리들이지만 나가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이돌 위주로 갈 수 있다는 신정수 PD 말은 나가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읽을 수 없다. 심지어는 아이돌 공장인 대형기획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들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정수 PD의 발언이 망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돌 위주로 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태연, 아이유 정도의 아이돌 보컬리스트가 얼마나 되냐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결국 명분도 대안도 없는 신정수 PD의 아이돌 위주 발언은 고민보다 욕망이 앞선 잠꼬대에 불과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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