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무한상사 아유회’에는 얄미운 상사 한 명이 나온다. 유재석이 역할을 맡은 유부장은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살갑게 사원들을 챙기는 듯하지만, 그 누구보다 살뜰히 사원들을 챙기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부장에게 맞춰야 하는 사원들의 솔직한 심경은 곤혹스러움 그 자체다. 높은 사람 앞에서 끊임없이 굽실거리고, 맞춰야 하는 사원들의 눈 속에 유부장은 그저 보기 싫고 얄미운 상사일뿐이다.

‘무한상사 야유회’는 실제 직장인들이 회사 야유회에서 느낄 법한 소소한 감정들을 깨알같이 쏟아냈다. ‘유부장님의 기분이 곧 야유회 분위기다’는 목표가 말해주 듯, 6명의 사원들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부를 한다. 물론, 부장은 사원들의 진심은 전혀 괘념치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주로 야유회를 이끌어 나간다.

무한도전 방송 화면 캡처 ⓒMBC
싫어하는 부장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원들, 부장의 한 마디에 싫은 내색 없이 굽실거리며 행동하는 사원들… <무한도전> 구성원들이 실감나게 연기한 이 같은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이 사회생활 속에서 숱하게 마주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 속 유부장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공영방송 MBC의 최고 상사 김재철 사장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무한도전> 속 유부장이 사원들을 데리고 봄맞이 야유회를 갔다면, MBC의 최고 상사 김재철 사장은 오는 26일과 27일, 1박2일에 걸쳐 MBC 사원들을 데리고 무주로 봄맞이 야유회를 간다. 일명 ‘무주페스티벌’로 불리는 이 행사는 MBC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구성원들의 화합의 장을 갖겠다’는 목표로 추진했다.

당초 MBC는 23일부터 4차례에 걸쳐 MBC본사와 관계회사의 모든 부서에 총 인원의 62%를 기준으로 참석자 수를 할당해 모두 3천2백명이 참석하는 축제를 기획했다. 또, 김재철 사장 취향에 따라 윷놀이를 기획했으며, 명랑운동회,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의 사원 장기자랑도 야심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MBC노조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우리는 김재철 사장의 아바타가 아니다”라며 무주페스티벌 전면 불참을 선언했고, 결국 행사는 대폭 축소됐다. 이후, MBC는 4차례에 걸쳐 진행하려던 야유회를 1박2일로 변경했으며, 간부와 비정규직 사원, 계약직 사원 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친 MBC는 부서 별 강제 인원 할당에 대해 “강제 사항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한 발 물러났고, 이로써 무주페스티벌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이 여전히 해고 상태이고, MBC 보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MBC 시사 보도프로그램의 제작자율성이 위축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축제의 장을 기획했다는 그 발상만으로도 김재철 사장을 향한 비난은 거셌다.

무한도전 방송 화면 캡처 ⓒMBC
무한도전 방송 화면 캡처 ⓒMBC
이날 방송에서 드러난 무한상사 유부장과 사원들의 표정은 극히 상반됐다. “한편으로는 너무 즐겁습니다”라는 유부장의 발언이 나오던 그 때, 카메라에 잡힌 하하 사원의 표정은 전혀 즐겁지 않은 표정이었다. 야유회 중간 중간 잡힌 카메라를 향해 털어놓는 사원들의 속내에서도 ‘전혀 즐겁지 않다’는 사실이 여럿 차례 강조됐다. “억지로 끌려 왔어요, 억지로. 재미도 없고”라는 박명수 차장의 발언과 “우리가 너 좋아하는 거 같냐”라는 하하 사원의 발언이 야유회에 대한 이들의 진심이었다.

사원들의 진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축제의 장’에만 관심이 있는 상사, 사원들의 친목을 다진답시고 오글거리는 코너들을 잔뜩 마련한 상사,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상사… 만약 MBC가 예정대로 무주페스티벌을 진행했다면 이날 무한상사 사원들이 느끼던 그 감정을 MBC 구성원들은 고스란히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김태호PD를 비롯한 <무한도전> 제작진이 어떠한 취지로 이번 ‘무한상사 야유회’를 기획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 김재철 사장을 겨냥해 ‘무주 페스티벌’을 향한 MBC 구성원들의 솔직한 속내를 말해주려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되레 이 글 자체가 웃자고 만든 예능프로그램에 과도한 해석을 붙여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을 보고, 무한상사의 유부장을 보고, 김재철 사장을 떠올린 것은 비난 나 뿐 만이 아니다. 이 방송을 보고 ‘무주 페스티벌이 떠올랐다’는 한 MBC 구성원의 말처럼, 어쩌면 이날 방송은 김재철 사장을 향한 <무한도전> 특유의 ‘일침’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무한도전> 김태호PD는 2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여름에는 ‘무한상사’의 다른 버전을 준비 중이니 기대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짓궂은 몸 개그들에 눈물 흘리며 데굴데굴 굴렀는데 못 보여드려서 아쉽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올 여름, <무한도전>이 새롭게 준비하는 ‘무한상사’를 기대한다. 깨방정 떠는 사장님을 향한 ‘무한상사’ 사원들 특유의 깨방정 또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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