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으러 교문을 지나 대학본부로 오르는 길에 한 남자가 다가와 신입생이냐고 물으며 다정하게 말 붙였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출 만큼 기분 좋은 날이라 그를 내치지 않고 어쩌나 살폈다.

학교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던 그는 다음에 볼 때는 대학생활 팁도 알려주고 수강신청을 도와주리라 약속했다. 이어 한 동아리를 소개했다. 명칭은 새벽별의 영문 이니셜을 딴 MS며 성경 읽기 모임이라고 했다. 마침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 잔뜩 일어나서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을 냈다.

30개론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의 시작은 이단의 기준이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느냐.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 이 세 가지를 인정하면 사이비가 아니라고 알려줬다. 또 성경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 찼기에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문란한 성생활로 몰락한 사회를 말하고 처녀의 몸으로 잉태했다 함은 남녀관계 없이 임신했다는 게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신앙으로 일관해온, 즉 영적으로 순결한 여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밖에도 재림 예수가 타고 오실 구름은 따르는 무리로, 모세의 기적은 홍해의 조수간만 차가 만들어낸 자연현상으로, 노아시대의 대홍수는 자기가 사는 지역이 전 세계라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 눈에만 뭍 위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고 보였을 뿐 실지로는 국지적인 물난리라고 풀어줬다.

공부모임은 빈 강의실이나 하숙집에서 이뤄졌다. 동아리 방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장 일찍 오는 이가 도서관에서 큰 탁자 하나를 맡아두면 거기서 모두 만났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장학생이었으며 술·담배 하는 이가 없을뿐더러 계문에 어긋나는 이성 관계를 금기시했다. 건실한 형제자매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성경공부는 지적 호기심에서 그쳐 신앙심 깊은 그들과 끝내 섞이지 못했다. 마지막 교리수업을 마치자 그들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졌다. 자존감 높은 그들은 떠나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해 말에 입대하면서 아주 연락이 끊겼다.

상병이던 1999년 1월에 놀라운 뉴스가 터졌다. MS 선배들이 추앙하던 정명석 목사가 여자신도들을 성폭행했다는 소식이었다. 타락한 목회자에 대한 분노보다 잠시나마 함께했던 형과 누나들을 향한 걱정이 더 컸다.

이듬해 전역하고 교정을 거닐다 나를 처음 MS로 이끌었던 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조심스레 근황을 물었다. 그 사건에 충격 받은 분들 대다수가 뿔뿔이 흩어져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한참이 지나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단지 우려스러운 것은 당시 제가 감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현학적으로 성서를 이야기하고 인생을 논하려했던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오히려 후배님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죄스럽기도 합니다...”

그는 드러난 진실을 부정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진솔한 참회였다. 누구보다 반듯한 그이기에 믿고 따랐던 교주 정명석의 범죄가 드러나면서 입은 상처와 환멸이 얼마나 컸겠으며 청춘이 깃든 길에서 벗어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나.

오늘의 내가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그를 만난다면 얘기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그땐 어렸으니까. 미처 몰랐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아니니까.

… 청년들이 그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던 모 신흥 종교에 대한 신문의 비평을 소개하면서, 말하기를 “이 교(敎)가 좋지 못한 행동이 많으므로 우리 청년 단체가 그 비행을 성토하며 현지에 내려가서 그 존재를 박멸하려 하나이다.”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뜻은 짐작이 되나 무슨 일이든지 제 생각에 한 번 하고 싶어서 죽기로써 하는 때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려도 되지 않을 것이니, 무슨 능력으로 그 교의 하고 싶은 일을 막을 수 있으리요. …… 사람마다 이로움은 좋아하고 해로움은 싫어하는데, 서로 관계하는 사이에 항상 이로움이 돌아오면 길이 친근할 것이요, 해로움이 돌아오면 길이 친근하지 못할 것이라, 정도(正道)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이로움이 되고, 사도(邪道)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해독이 돌아오므로, 그 교가 정도이면 아무리 그대들이 박멸하려 하여도 되지 않을 것이요, 사도라면 박멸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서지 못하게 되리라” 원불교 대종경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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