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이하 5.18)이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노인들은 당시 시위대가 MBC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불손 세력이었단 확실한 근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맞다. 시위대는 MBC에 불을 질렀다. 7공수여단을 중심으로 한 계엄군이 사전에 치밀하게 짜여 진 각본에 따라, 광주에 도착한 것이 17일 밤이었다. 17일 24시를 기점으로 대학을 접수했고, 18일에는 대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했다. 빌미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의도된 도발이었다.

그리곤 19일 오후 4시 30분에 시위대를 향해 첫 실탄 발포를 시작했다. 시민들이 시위대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계엄군의 실탄 발포 사실이 알려진 이후였다. 5.18은 시위가 있어 계엄군이 오고, 시위가 격화돼 총을 쐈다는 최소한의 상식적 인과관계를 거스르는 국가 폭력이다. 계엄군이 도착해 시위가 조장되고, 계엄군이 총을 쏘면서 시위가 격화된 것이다. 시간으로 보면, 19일 밤이 되어서야 시민들이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주 MBC에 대한 방화가 벌어진 것은 20일 밤 10시다. 19일 밤부터 20일 사이에 광주 MBC는 광주의 상황을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하며 신군부의 거짓주장에 영합하는 보도 프레임에 충실했다. 언론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광주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 것이다.

만약, 그 때 언론이 광주의 사태를 정확하게 보도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은 소용없는 노릇이다.

▲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김황식 총리를 통해 기념사를 대신했다ⓒ연합뉴스
5.18은 오늘로 31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지 못했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역시 미뤄지고 있다. 전 재산이 29만 원 뿐이라는 전두환은 수천억 원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채, 연간 수 억 원에 나랏돈으로 호위호식하고 있다. 그래서 5.18은 기념해야 할 역사라기 보단 여전히 기록이 더 필요한 진행형의 문제다.

그나마 지난 정부들이 민주화의 기록에 열의를 보였다면, 이명박 정부는 5.18을 그저 성가신 날의 하루쯤으로 여기며 무성의한 기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해도 5.18 기념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산업화 세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단 명분으로 5.16 군사 쿠데타를 떠들썩하게 재조명한 조중동 역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선 평가할 생각이 없는지 5.18에 대해선 심드렁한 외면을 택했다.

경쟁적으로 5.16 재조명에 나선 조중동은 며칠에 걸쳐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5.16을 기획했다는 JP는 "혁명은 숫자가 아니라 의지와 민심으로 하는 것"이라며 한껏 뽐을 냈다. 그 기사에는 신문을 읽고 이렇게 역겹기는 처음이란 댓글이 달렸다.

▲ 5.16 쿠데타 세력이 KBS 방송국을 접수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한 14일자 중앙일보
5.16 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KBS를 '접수'하는 것이었다. 중앙일보가 그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16일 새벽 5시, KBS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자마 5.16 쿠데타에 대한 찬가가 흘러나왔다. 그 내용은 "군부가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서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였다. 중앙일보는 이를 '대한민국 전체를 격렬하게 엄습한, 역사 궤도의 전환을 알리는 굉음'이라고 평가했다.

5.16에서 5.18까지의 20년 세월은 한국 언론사에 가장 잔인한 암흑기였다. 군부에 장악당한 언론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불순분자와 폭도'라고 매도하는 언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보도로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30년이 흘렀다.

5.16 당시엔 권력의 찬탈을 위해 방송국을 접수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30년 전의 시민은 권력의 광폭함을 폭로하지 못하는 방송국을 불태우는 것을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고 행동했다. 그 이어져있는 역사의 시간을 통과해 지금 우리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의 눈부신 매체 환경을 맞이했다. 언론과 관계하는 권력의 양상 역시 진화했다.

5.16에 대한 떠들썩한 재조명과 5.18에 대한 철저한 침묵이 이어진 며칠 동안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2MB18nomA'라는 계정을 사용하는 트위터 아이디를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 시킨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어디에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차단한다는 규정은 없다. ‘@2MB18nomA' 계정 차단은 그야말로 심의위의 자의적인 인터넷 '접수'이다.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는 신문들이 사회적, 역사적 상식에 반하는 5.16에 대한 정치적 기억을 부각하며, 이를 재조명이라는 궤변으로 기사화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조중동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왜냐면 그 마저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그 표현의 자유마저도 존중해야 한단 정도로 여론의 인식은 성숙해졌다. 조중동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에 관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얘기가 유통되는 또 다른 채널 역시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혹은 그래서 ‘@2MB18nomA' 계정 차단은 심각한 문제이다. 불의한 권력이 또 다시 시민의 채널을 '접수'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은 무조건 '불법'이란 논리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불순분자'로 칭한 80년대의 논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심의위는 ‘@2MB18nomA'가 유해하다고 했다. 80년 5월의 불손세력과 오늘의 유해함은 다른 것일까? 왠지, '민주주의 전체를 격렬하게 엄습하는 표현의 궤도 전환을 알리는 굉음'이 들리는 듯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