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한 뉴스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그 배경에는 한국이 프리덤 하우스가 정하는 언론자유 순위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가로 강등한 사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뉴스의 예능화라는 이슈를 낳은 뉴스데스크는 선정적 보도자세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번에도 살인사건 현장 CCTV 영상을 과도하게 내보냈다. 이는 생생한 보도라는 영상뉴스의 본연이 아닌 쇼킹한 장면을 통해서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얄팍한 속셈으로 뉴스데스크는 쏟아지는 비난에 황급히 사과 멘트를 했지만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뉴스데스크는 PC방 전원내리기, 눈길 즉사 장면 등의 비난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도 재범의 처벌을 더욱 엄히 내리듯이 뉴스데스크의 잇따른 선정적 보도태도에 대해서 시청자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점을 넘은 것이다. 설혹 그런 전과가 없더라도 이번 보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남이 매형을 각목으로 때려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사건 종료 후의 스케치가 아닌 살인 과정을 고스란히 내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이 보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처남이 매형을 죽였다는 것이어야 하는데 결과는 사람을 때려죽이는 과정전달이 되고 말았다. 이 날 뉴스데스크를 본 한 네티즌의 지적이 신랄하다. ‘뉴스데스크가 19금 뉴스가 됐다‘라며 비꼬는 말을 남긴 것. 사실 이 사건의 내용 자체가 19금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충격을 담기에는 앵커나 현장 취재기자의 멘트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다가 굳이 CCTV 영상을 보탠 것은 뉴스데스크가 선정성을 넘어 잔혹성까지 드러낸 것이다. 도대체 왜 뉴스데스크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의 폭력성을 고발하기 위해서 PC방 전원을 내리는 무리수를 범한 뉴스데스크였지만 기실 폭력에 대한 유혹을 참아온 것은 뉴스데스크 자신이었다는 실토를 하고 말았다. 영화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더 리얼하고 잔혹한 살인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은 가상이라는 전제가 붙기 때문에 관객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살인현장을 그대로 목격하는 것은 살면서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끔찍한 일이다.

그런 끔찍한 장면을 국민들에게 보도록 강요한 MBC 뉴스데스크의 잘못은 사과로서 끝날 일이 아니다. 문제는 특히 주말판에 있고 떨어진 시청률에 있다. 주말이니 뉴스도 가볍게 해보자는 발상의 전환까지는 나무날 일이 없다. 그러나 분위기는 가볍게 갈지라도 뉴스를 전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신중해야만 한다. 사람이 죽는 장면까지도 뉴스거리로 생각하는 인명경시의 태도를 보인 뉴스데스크는 이슈를 얻고, 시청률을 조금 더 얻었을지는 몰라도 기자의 영혼을 팔아넘긴 것에 불과하다.

언론매체가 정치와 경제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의식을 잃다보면 자꾸만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도피일 뿐이다. 정치판에 비판할 것이 태산처럼 쌓여도 눈 감고, 입을 다문 채 정해진 시간을 채우려는 졸속의 편성인 것이다. 어쩌다 뉴스데스크가 이토록 타락하게 됐을까. 다시 묻게 된다. MBC니까, MBC라서 가능했던 차가운 기자정신은 모두 자살이라도 한 것인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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