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의 영향이 참 크다. 오디션 트렌드 속에서 태어난 나가수는 서바이벌이라는 긴장감과 혼신을 다하는 가수들의 모습으로 가요계를 뒤흔들며 십수 년 지배했던 아이돌 독점구도를 깨고 있다. 이런 나가수의 역습에 아이돌을 중점적으로 키워온 대형기획사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아이돌 그룹도 외양에 치우친 퍼포먼스만이 아닌 가수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중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시봉에 이은 나가수 열풍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가수로 인해 대중가요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에 편승하는 곁가지도 없지 않다. 이번에 국회에 발의된 립싱크 금지법안이 그런 것 중 가장 희화된 기록이 될 것 같다. 아마도 각종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과 나가수의 열풍이 없었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법안일 것이다. 물론 취지는 나쁘지 않다. 노래나 연주는 하지 않으면서 입만 뻥긋거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 정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말에 집중된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밴드는 거의 핸드싱크를 할 수밖에 없다. 생방송의 특성상 무대 세팅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밴드는 어쩔 수 없이 연주가 아닌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분명 가수 스스로에게도 자괴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이고, 라이브 연주를 기대했던 관객이나 시청자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수가 거짓이 아닌 진성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립싱크에 대한 것은 가수의 의지와 대중의 선택으로 조율될 부분이지 법으로 강제할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가수가 노래하고,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직업 본연이기에 이것을 강제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의한 의원은 중국의 예를 들었는데, 이것은 법안의 타당성에 수긍하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수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꿰맞추기라는 인상을 줄 뿐이다.

문화라는 것이 각 나라마다의 특성이 있어 우월을 논하는 것이 옳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대중문화수준은 적어도 중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법안을 들여올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현재 립싱크가 가요계의 중요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립싱크로 대중의 눈을 속이려 했다가는 단박에 비난의 소나기를 받는 것이 요즘 상황이다. 방송에서 MR을 제거해 아이돌 가수들의 가창력을 검증할 정도로 요즘 네티즌은 집요하고 또 능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립싱크 금지 법안은 포퓰리즘에 불과한 해프닝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 통과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발의만으로도 한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이 이 법안에 대해서 듣게 된다면 한국 대중가수들은 모두 립싱크를 하는 것이라는 오해할 것이다. 괜한 해프닝으로 가수들에게 모욕감만 주고, 대외적으로는 망신당할 일 외에는 없는 것이 이 법안일 것이다.

내친 김에 립싱크 법안에 이어 외모로 인지도를 올린 배우들의 발연기 금지법도 나오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그뿐 아니다. 배우들의 눈물연기에 안약사용을 금지하고, 예능에서 웃기지 않는데도 과하게 웃는 리액션 금지법안도 나올 법하다. 왜들 이러시나. 웃기는 일은 개그맨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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