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조선·동아가 변하려면 시민이 함께 변해야 한다”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조선일보·동아일보 변화의 선제조건으로 ‘시민 의식의 변화’를 꼽았다. 언론개혁을 향한 거대한 물결이 있어야 조선·동아일보가 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한표 위원장은 언론자유 투쟁의 산증인이다. 성한표 위원장은 1975년 3월 조선일보에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됐다. 성한표 위원장과 함께 해직된 언론인 33명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민주화운동 대열에 참여했다. 성한표 위원장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실행위원을 맡고 <말> 창간에 참여했다. 성한표 위원장은 1987년 한겨레 설립 작업을 맡아 부사장직에 올랐다. 이후 SBS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미디어스는 성한표 위원장을 만나 조선·동아 100년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성한표 위원장은 조선·동아가 이미 권력화됐다며 그들 스스로의 변화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한표 위원장은 ‘시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촛불집회 같은 시민의 요구가 있으면 언론이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래는 성한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 조선일보·동아일보가 100년이 됐다.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봄이 되면 조선·동아 100주년이라고 요란할 거다. 아마 자신들이 굉장한 신문이라고 선전을 할 것이다. 그런 계기에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조선·동아 100년이 갖는 의미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조선·동아는 자신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일제에 저항한 건 아주 짧은 시기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그렇지 않다. 이런 걸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서울신문의 역사를 대한매일신보까지 파고들면 100년이 넘었지만, 신문 대부분은 해방 이후 생겼다. 현재는 신문의 영향력이 축소됐지만, 과거에는 신문이 전부였다. 조선·동아의 오래된 역사만큼 신문이 잘한 일이 있을 것이다. 왜 없겠나. 다만 조선·동아는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더 많이 했다.

- 1970년대 조선일보 분위기는 어땠나

당시 조선·동아는 권력에 많이 밀접하지 않았다. 재벌은 지금과 같이 형성되지 않은 때였고, 정치 권력의 눈치를 봤지만 틈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문사 내부 분위기가 지금과 달랐다. ‘신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다. 정권이 강하게 나온다고 해서 무작정 굴복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조선투위가 촉발될 수 있었다. 사내에서 숨 쉴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기자들은 용기가 있었다. 사실 무엇보다 조선일보에서 해직된다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에 큰 위기를 느끼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때가 아니었고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조선일보에서 해직된다고 해서 못 먹고 살겠냐’는 생각이 강했다.

- 조선일보 내부 기자들에게 투쟁을 기대하긴 어려운 건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스템 밖으로 내쳐지면 당장 생계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선일보 기자들을 두고 ‘저들은 왜 우리처럼 해직을 각오하고 투쟁에 나서지 않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과 그때는 다르다. 후배들이 못났거나 욕심이 많아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시스템 자체가 이런 거다. 현재 조선일보 상황을 두고 후배들을 탓하기에는 어렵다.

또 신문사 자체가 권력이 됐다. 과거 신문사는 ‘권력의 하수인’ 정도였지만, 지금은 권력 그 자체가 됐다. 법적으로 주어진 권력은 아무것도 없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후배들이 청와대에 들어간다는 기분으로 입사한 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권력에 예속돼 나오기 힘들어질 것이다.

- 조선투위 사건 이후 사주나 경영직과 대화를 한 적은 없나

공식적인 만남은 없다. 회사 측에서 조선투위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너는 복직시켜 주겠다’는 회유는 종종 있었다. 우리 중에 응한 사람은 거의 없다.

- 조선일보는 조선투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사과도 않는다

‘조선일보는 조선투위에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린 권력에 의해 해직당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우리에게 사과할 게 아니라 국가권력이 나서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 만약 조선일보가 사과한다면 조선투위에 한정된 사과가 아니라 권력에 굴종해 저지른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을 내놔야 한다.

조선일보의 반성을 끌어내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해야 한다. 시민행동의 목표는 사실 시민 성숙이다.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이 집회 현장에서 ‘조선·동아는 폐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폐간’이 뜻하는 바는 ‘조선·동아 같은 신문이 발 못 붙이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극우 신문의 영역을 좁히고, 좋은 언론을 전파하자는 뜻이다.

1975년 3월 6일간의 농성투쟁을 끝낸 조선일보 기자 30여명이 회사에서 쫓겨나자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신문은 경영주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사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현재의 조선일보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선일보가 펴고 있는 극우적 이념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다. 다만 비율이 문제다. 조선·동아 같은 극우적 이념이 사회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큰 문제다. 현재는 조선·동아가 사회 여론 전반을 이끌어가는데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극우적 이념은 하나의 입장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던 때 조선일보는 극우적이지 않았다. 아마 조선투위가 극우화의 시작점이 되지 않았을까. 내부 양심의 소리가 없어졌으니 그런 것 같다.

- 조선·동아투위 멤버들이 모여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다. 한겨레에서 부사장을 맡았다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지기 2~3년 전 ‘조선·동아로의 복귀는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새 언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신문 창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모두가 허탈감을 느끼던 때였다. 이에 한겨레 창간이 가속화됐다.

당시 한겨레는 신생 매체였다. 지금 한겨레는 주요 일간지 중 하나다.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다만 한겨레가 기성 언론과 같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 과거 한겨레가 창간될 당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언론을 만들자’는 뜻이 있었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모든 관행을 뒤집었다. 기자가 알게 된 정보는 모두 기사화하고, 촌지를 거부했다. 북한을 ‘북괴’로 표현하지 않았다. 지금의 한겨레는 한겨레만의 차별화가 없다. 다른 신문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의 폭이 좁아졌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아쉬운 건 분명하다.

- 언론 신뢰도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각성한 기자 몇 사람이 언론 전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언론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물결이 필요하다.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언론이 변할 수 있다. 기자들은 그 물결이 오기 전까지 자신의 신념을 유지해야 한다. 현실의 유혹과 고통이 있겠지만 양심을 버려선 안 된다. 촛불집회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올 때 깨어있는 기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조선·동아, 나아가 언론 전체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현재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언론인은 모두 7080세대다. 1인 시위, 기자회견을 하면 많은 시민이 우리를 보고 지나친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저들이 왜 저렇게까지 문제를 제기하는가’라고 한 번만 생각해줬으면 한다. 그냥 ‘집에서 꼰대 노릇이나 할 사람들’, ‘죽을 때가 다 된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말고 고민을 같이 해줬으면 한다. 신문이 변하려면 시민이 함께 변해야 한다. 함께 좋은 언론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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