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에 신동엽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동엽의 재치 순발력과 구성력으로 승승장구 MC들을 게스트로 만들 정도의 독무대로 이끌어갔다. 지금이야 유재석, 강호동이 양분한 예능계지만 그들이 대기만성형이라면 신동엽은 떡잎부터 꽃을 피운 천재 개그맨이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폈기 때문인지 신동엽은 빨리 졌다. 그렇지만 1998년 이후로 토크쇼 단독 게스트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게스트가 아니라 MC 자리에 있어야 어울리는 사람이다.

동시간대에 방영된 강심잠에서 갈갈이 패밀리로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준형이 자신의 7전8기 데뷔 비화를 털어놓으면서 한 말이 있다. 개그맨에게는 두 부류가 있다는 것. 하나는 개그를 하고 싶은 사람과 개그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박준형 같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스타일을 뜻하고 후자는 옥동자나 박정태처럼 생긴 것 자체가 웃긴 사람을 의미한다. 신동엽은 결코 후자에는 낄 수 없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전자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신동엽은 개그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개그 그 자체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승승장구에서 다루겠지만 그런 신동엽의 현재는 개그맨으로도, MC로도 연전연패하는 중이다. 심지어 MBC 일밤 오빠밴드를 할 때 신동엽의 캐릭터가 ‘웃음기 잃은 동엽이’였다. 사업을 벌인 것이 웃음을 잃게 된 큰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무한도전, 1박2일로 대표되는 근래의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에 적응하지 못한 그 스스로의 준비부족이 가장 클 것이다. 물론 그의 타고난 감각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두 가지를 다 욕심낸 것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오빠밴드도 그렇고, 야행성도 그렇고 신동엽은 과거와 같은 집중력을 보이지 못했다.

한국을 뒤흔들었던 신동엽의 개그코드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짙다. 그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 또한 많다. 또한 신동엽 스스로도 자신이 이뤄왔던 것들에 빠져서 사업과 예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섭게 변하는 예능 트렌드에 치고나가는 유재석과 강호동을 물리치는 데는 천재성만으로는 안 됐다. 결과가 그러니 달리 변명할 수도 없다.

그런 신동엽이 단독 게스트로 승승장구에 출연한 이유를 담당 PD에게 지은 잘못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짜 이유는 신동엽 스스로 이제 사업이 아닌 예전의 원조 국민MC의 자리를 찾기 위한 각오를 밝히기 위함일 것이다. 지난 5년간 사업을 통해 롤러코스터를 타고 이제 그의 두 손에 사업과 예능 두 가지 모두가 없음을 확인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신동엽은 타고난 대화 장악력이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전력한다면 반드시 그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승승장구 1부를 통해 신동엽은 그의 부활이 다만 바람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동엽의 개그 순발력은 여전했고, 상대가 누구건 쥐락펴락하는 토크 장악력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그러면서 신동엽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야한 개그의 단면도 보였는데, 그 부분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요즘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다른 말로 하자면 가족 버라이어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방영 시간대가 이른 저녁이니 자연스럽게 온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신동엽의 야한 개그는 맞지 않다. 물론 심야 토크쇼를 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무한도전, 1박2일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에 적합한 인상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런 신동엽의 변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승승장구를 통해서 전해졌다. 개그맨으로서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의 신동엽이 사실은 결코 밝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오랜 지병과 청각장애를 가진 큰형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신동엽은 감동적인 가족애를 가지고 있었다. 큰형을 배려해 음악프로나 개그 프로를 보지 않는 철든 형제들하며, 아들을 위해 특수학교로 전근을 갈 정도로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의 모습은 남의 이야기라지만 참 부러운 것이다. 이제사 알았지만 신동엽은 웃음으로 눈물을 승화시킨 슬픈 개그맨이기도 했다.

그런 따뜻한 가족애가 신동엽의 기억과 심성을 지탱하는 한 그의 리얼 버라이어티 적응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요즘 예능은 다큐적 감동을 추구한다. 과거 러브하우스 때 수화 통역자를 두고 굳이 자신이 직접 수화로 대화하겠다고 나섰던 신동엽의 그 모습이면 주말 가족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진 예능을 하나 만들어낼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폐지병에 걸린 시청률 팔랑개비로 전락한 방송사가 문제다. 몇 년 동안 부진을 겪은 신동엽이 자신을 추스르고 예전 같은 페이스를 회복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무한도전이 그러했듯이 그에게 넉넉히 시간을 줄 뚝심 있는 PD와의 만남도 필요하다. 신동엽의 부활은 비단 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유재석, 강호동으로 양분된 단조로운 구도에 변화와 탄력을 기대하는 시청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승승장구의 출연한 신동엽은 다시 초심을 다지는 모습이었다. 개그천재 신동엽의 귀환을 알리는 서막이 될지 궁금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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