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2월 1일부터 방영된 OCN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에는 장혁이 출연한다. 그런데, 그 장혁이 '액션'을 하지 않는다. 일찍이 <추노> 이래 그 스스로 절권도를 오래도록 연마해왔음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듯 몸을 써서 하는 연기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배우 장혁이다. 당연히 <본 대로 말하라>에 장혁이 나온다면, <본 대로 말하라>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김홍선 피디와 함께한 전작 <보이스1>에서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내세워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웬걸. 1회 본방이 시작되고 한참 후에 등장한 장혁은 휠체어에 검은 안경을 썼다. 드라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이란 휠체어를 움직이고 하얀 실리콘 장갑을 낀 손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하는 정도. 이전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역동적인 장혁은 언감생심이다. 과연, 움직이지 않는 장혁이 재밌을까? 드라마는 바로 이 '반전'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움직일 수 없는 장혁

OCN 토일 오리지널 <본 대로 말하라>

<본 대로 말하라>에서 장혁이 분한 오현재는 사고 이전에 천재적 능력으로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했던 프로파일러였다. 그런 그가 '그놈'이라 칭해지던 연쇄살인범에게 승부를 걸고자 했던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그의 야심 찬 시도는 5년 전 사고와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찰청의 공식적 발표로 오현재가 쫓던 '그놈'은 폭발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오현재는 애인을 잃고 그 자신 역시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2017년 방영되었던 <보이스1>에서 형사 무진혁으로 등장했던 장혁은 과거 사고로 절대 청감 능력을 지닌 강권주의 수족이 되어 사건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본 대로 말하라>에서는 그 반대의 처지가 되었다.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여 경찰청 연락망을 들으며 와신상담 하고 있는 오현재에게는 <보이스1>의 그 자신처럼 수족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처지가 된 것이다.

오현재 대신, 아니 그 이상인 두 여자

바로 그런 오현재 앞에, <보이스1>의 절대 청감을 지닌 강권주처럼 어머니 사고로 인해 한번 본 것은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픽처링 능력'을 지닌 차수영(최수영 분)이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날 자신을 마중 나온 농아 엄마가 싫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그 외면은 엄마와의 영영 이별이 되었다. 차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수영에게 우산을 전해줘야겠다는 맘으로 도로를 건너던 엄마는 뺑소니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수영은 그때 그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했다. 차량 번호도 차에 탄 사람도,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우산을 쓰라던 엄마의 손짓도.

OCN 토일 오리지널 <본 대로 말하라>

그러나 안일한 경찰은 수영의 기억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겼다. 결국 기억하고 있는 수영이 직접 나서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의욕만 앞서는 시골 순경이다. 어떻게든 광역 수사대에 가야 하는데...

시말서 감인 줄 알았던 토막시신 사건은 그 사건을 본 대로 기억해내는 수영의 능력으로 인해 기회가 되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오현재와 그의 손발이 되어줄 차수영, 낯익은 구도다. 1997년 제프리 디바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던젤 워싱턴,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본 콜렉터>가 떠오른다. 전신마비의 천재적 범죄학자 링컨과 의욕적인 형사 아멜리아 콤비가 손 하나만 남겨진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움직이는 못 하는 두뇌와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의욕적인 여형사의 클라셰를 <본 대로 말하라>는 오현재와 차수영의 캐릭터로 돌파하고자 한다. 사고 때문인지 원래 그랬는지 괴팍한 프로파일러라는 점에선 오현재와 영화 속 링컨은 유사하지만, 거기에 드라마는 간발의 차로 애인을 잃은 오현재만이 가지는 통한의 복수심을 얹는다. 그리고 그런 오현재처럼 역시나 오래전이지만 오늘처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차수영의 원한을 결합한다.

그 결합은 처음엔 삐걱거린다. 오현재는 차수영의 기억이 본질을 놓친 주변부만 기억하는 쓸데없는 것이라 하며 내쳤고, 감정적이라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런 차수영이 막상 공장 안 그 누구도 모르는 장소에 갇혔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에게 자신의 두뇌를 빌어 사건현장으로 인도하고, 처음 시체들을 보고 경악하는 그녀로 하여금 현장에서 예의 픽처링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파트너십은 오현재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차수영의 '감정적 헌신'으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다. '딱해서, 나도 딱하고 너도 딱해서'라며, 딱한 파트너십의 연대 기조가 마련된 것이다.

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십을 완성시킨 황하영

OCN 토일 오리지널 <본 대로 말하라>

그런데 <본 대로 말하라>에서 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십만을 말하면 아쉽다. 파트너십이라기보다는 '어벤져스'라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황하영의 존재감이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눈 밝게 수영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 그런 그녀를 오현재에게 인도한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한 오현재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 조직을 앞세운 상부의 지시 앞에서도, 어쩌면 물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그래서 궁시렁거리다가도 그녀의 지시 한 마디면 기꺼이 팀원들이 그녀를 따르게 만드는 팀장 황하영. 어쩌면 <본 대로 말하라>의 모든 것은 갚을 것이 있다는 그녀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본 대로 말하라>는 기존 드라마에서 '소모'된 장혁이란 배우의 캐릭터를 역으로 활용한다. 움직이지 않는 장혁, 두뇌만 쓰는 캐릭터, 그런 반전적 재미를 완성하는 건 이른바 '걸크러쉬'한 두 여성 황하영과 차수영이다. 걸크러쉬라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은 정반대다. 황하영이 진서연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독전>의 그 독한 캐릭터 못지않게 육두문자를 마다하지 않고 범인에 대척하며,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운 상사 앞에 꿈쩍도 하지 않는 걸크러쉬한 캐릭터라면, 차수영은 오현재의 분석처럼 아직은 자신감이 없어 말끝조차 흐리는 풋내기이지만 엄마의 사건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강단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장형 캐릭터이다.

위험한 공장에서 그 누군가 그곳을 들어가야 할 때 들어가겠다고 나선 수영에게 말없이 기회를 주는 황하영.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그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이 두 여성 캐릭터와 그녀들 뒤에서 '두뇌'를 빌어주는 오현재의 '딱한 어벤져스', 이 신선한 조합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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