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주년 세계 노동절을 맞아 언론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이명박 정부 이후 노동절은 계속 겉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 교묘해진 노동 탄압 속에 정부는 노동절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노동절 집회가 '일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해왔다.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보수화 속에 노동절은 계속 고립되어 왔다.

올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노동절을 맞아 양대 노총 위원장이 공동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박재완 노동부 장관은 "철지난 이벤트이고 정치 투쟁에 불과하다"고 그 의미를 폄훼했다. 양대 노총이 모두 노동절 집회를 예고하자, 박 장관은 "5월 1일 집회에 나올 사람들은 대기업과 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자들"이라며 "절대 다수의 온건 조합원을 위해서라도 노동 권력의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양대 노총의 노동절 기념 자체를 근거 없이 맹비난했다.

▲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21주년 노동절 기념, 한국노총의 노조법 재개정 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는 6년 만에 수만명의 노조원들이 참여한 집회로 개최됐다.ⓒ연합뉴스
하지만 121주년 노동절을 맞아 양대 노총은 모두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매년 의미를 찾기 어렵던 '마라톤 대회'로 노동절을 보냈던 한국 노총은 한나라당과의 정책 공조 파기 선언 이후 맞이한 첫 번째 노동절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한국노총이 노동절에 집회를 개최한 것 자체가 6년 만의 일이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불허 방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집회를 강행했다. 단순히 집회만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집회 이후에는 경찰과 몸싸움을 불사하며 도심 행진을 벌였다. 한국 노총 집회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모였고, 민주노총 집회 역시 2만 여 조합원들이 운집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권 역시 지도부가 대거 집회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양대 노총이 오랜 만에 노동절다운 노동절을 보낸 것은 '최저 임금 현실화', '청년 실업 대란' 등 노동 현안이면서 동시에 민생 문제이기도 한 굵직한 이슈들이 사회적 쟁점으로 전면화된 상황이 컸다. 또한 4.27 재보선에서 정부 여당이 참패하면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라는 점이 확인된 점도 노동 운동의 자신감을 높였다.

그렇다면, 미묘하지만 분명한 흐름의 전환을 보인 노동절을 방송 뉴스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안타깝게도 지상파 3사 가운데 노동절 집회를 유의미하게 바라본 곳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단 한 곳도 노동절의 의미와 노동 현안에 대한 심층적 기획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KBS만이 비교적 앞 선에 노동절 관련 풍경을 리포트로 전했고, MBC와 SBS는 노동절 관련 소식을 단신으로 편성했다. MBC는 노동절 관련 소식을 15번째 단신으로 처리했다. MBC가 노동절 소식에 앞선 리포트로 편성한 뉴스들은 김연아 선수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 3개의 리포트로 나눠져 자세히 분석됐고, 성형 한류열풍, 프랑스의 한 자전거 길, 초등생 비만율 0% 도전, 어르신 전용 청춘극장 등이었다. 1년에 딱 하루 노동자들의 날이 무색한 편성이었다.

SBS 역시 다르지 않았다. SBS는 날씨를 전하기 바로 앞서 노동절 소식을 단신 처리했다. 뉴스의 거의 마지막, 별다른 내용 없던 단신은 '면피용'으로 보기 충분했고 그나마 그 내용 역시 노동절 풍경보다는 "경찰과 큰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는 것이었다.

수년 째 노동 환경이 악화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 현장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은 이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로 치환하는 선전을 강도높게 진행하고 있고, 정부는 노동 환경이 악화되거나 말거나 일회성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으로 '생색'만 내고 있다.

노동의 문제는 일부 노동자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해가는 대다수 시민의 문제이다. 하지만 언론은 노동의 문제를 다루며 노동의 문제가 보편 다수 시민의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발휘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노동의 문제들은 일부 노동조합의 문제로 축소되고, 노동자들이 겪는 보편적 어려움은 각각의 개별적 문제로 산개되었다.

노동절에 방송 뉴스들의 단 한 개의 기획 뉴스도, 어떤 심층적 아이템도 준비하지 않은 모습은 언론이 노동자 문제를 바라보는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언론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에 갖는 연대 의식이 얼마나 희박하고 얕은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으로 언론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언론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꺼이 지지했고 또 많은 시민들은 언론 노동자들의 싸움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언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노동자성'을 강조할 뿐, 실제 노동자들이 기자를 원할 때는 철저히 기득권화된 시선으로 노동자를 멀뚱히 분리해낼 뿐이다.

121주년 노동절. 그 어떤 때보다 노동자의 환경과 처우가 위기가 처한 때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은 나라들 혹은 한국보다 훨씬 작은 수준의 경제 규모의 나라더라도 노동절에 이처럼 언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라가 또 있을지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