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길을 돌아왔다. 진작 이렇게 갔다면 짝패는 훨씬 더 높은 시청률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시청자가 원했던 것은 권선징악 혹은 현실도피형 대리욕구라 해도 좋을 천둥이의 의적행이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천둥이의 아래패 가입 이벤트는 긴장감과 액션 모두 흠잡을 곳이 없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런 굵직한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작은 상징들을 곳곳에 배치시킨 치밀함이다.

24회 왕두령 저격을 성공한 천둥이가 아래패 두령이 되는 것과 강포수가 산 것처럼 위장해서 아래패들을 안심시킨 장면이 24회의 압권이었다. 제갈공명과 이순신 장군의 최후에 대한 오마쥬가 담겼다. 두 눈을 부릅뜬 강포수를 말에 고정시켜 아래패들이 모인 곳을 지나게 해서 강포수의 죽음을 숨긴 것은 당장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필요한 속임수였다. 왕두령의 죽음과 함께 강포수의 건재는 아래패는 물론이고 민심까지도 안심시킬 수 있는 양수겸장의 수였다. 왕두령이 죽자 저자거리의 백성들이 왈짜패들에게 치도곤을 놓듯이 두령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둥이가 아래패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최소 몇 주 전에는 벌어졌어야 할 사건인데 너무 뜸들인 바가 없지 않아 천둥이의 화려한 의적 데뷔가 생각보다 큰 호응을 받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24회는 천둥이의 왕두령 저격만큼이나 중요한 내용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었다. 아래패에 공식적인 입문을 알린 후 돌아오는 길에 천둥과 달이는 물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내용인즉, 천민 동녀라고 해도 좋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할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달이의 고민은 과거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가졌을 만한 고민이다. 과연 대중은 선한가라는 해묵은 질문과 연결돼있다. 그것에 대해서 천둥이의 대답은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의적을 하고자 하는 한 믿어야만 하는 자기 신념일 것이다.

그것이 단지 이상론이 아님을 증명하는 인물이 바로 장꼭지다. 비록 아들 도갑이의 죽음으로 인해서 아래패에 가담하긴 했지만 충동적인 전향자인 장꼭지는 정확히는 의적의 개념이 머릿속에 없다. 장꼭지는 왕두령을 처치하는 거사를 치르고도 크게 변함없지만 그를 직간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인물이 바로 과거 거지패 2인자였던 껄덕이다. 자주 장꼭지는 껄덕이를 통해서 뜨끔하게 교화를 경험하게 된다. 의적 데뷔를 두령으로 하는 엘리트 천둥과 달리 바닥부터 변화되어가는 장꼭지에게 더 큰 시선을 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의 죽음에 눈이 뒤집혀 홧김에 총을 들게 됐지만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 의식까지 갖춘 어엿한 의적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어쩌면 짝패의 진정한 주제가 아닐까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장꼭지도 갖바치 영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무지렁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대사에서도 그런 예가 많듯이 자식의 죽음은 부모를 깨이게 한다. 그런 부모의 눈물은 젊은 투사의 구호보다 정서적으로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아직은 장꼭지가 완전히 아래패다운 의식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왕두령 저격 때에는 끝까지 현장에 남아 죽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근처 백성들을 선동해서 왈짜패들을 혼내기도 하는 등 제법 의적태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껄덕이를 찾아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경망스러움을 갖고 있다. 천둥이 홍길동이나 일지매 같은 전형적인 영웅을 답습한다면 장꼭지는 그런 영웅들 혼자서 절대로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해낸 이름 없는 작은 영웅들의 모습일 것이다. 장꼭지를 굳이 한양까지 데리고 온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편 천둥이가 아래패에 투신했지만 짝패가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 천둥과 귀동의 출생의 비밀이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김대감과 달리 다소 의아하지만 조선달과 사또가 귀동의 비밀을 쫓아가고 있다. 두 사람은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막순과 귀동을 압박해가지만 이것이 귀동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실마리를 남기고 있다. 청국으로 떠나기 전에 들른 천둥에게 귀동은 왕두령 저격범의 몽타주를 보여주었다.

거기서 귀동은 범인이 영락없이 천둥이라고 했다. 물론 어떤 의혹을 가진 말이 아니라 친구끼리의 농담에 불과하다. 천둥이가 자신이 꼭 왕두령을 쏘고 싶었다고 말하자 귀동이도 자기도 그랬다며 마주 보며 웃었다. 귀동은 썩어빠진 포도청에 진력을 느끼는 의협심을 가진 젊은이다. 그래서 귀동의 농담에는 뭔가 진한 복선이 감지된다. 예고를 통해서 귀동은 동녀에게 자신의 출생비밀을 털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귀동에게도 뭔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