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용에 관한 합동 워크숍’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국어 실력과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판단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판단하기 무척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주말 TV 뉴스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제공했다.

1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이동관 대변인에 따르면, 1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개최된 인수위 워크샵에는 "이명박 당선인, 이경숙 인수위원장, 한승수 총리 후보,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내정자, 인수위원 전원이 참석했고 당초 예정대로 정부조직개편안이 처리되었다면, 국무위원 내정자들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여야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여 인수위와 대통령실의 워크샵으로 진행되었다"고 전했다.

워크샵은 인수위 각 분과 간사위원들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내정자들 사이의 분임토의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 2월17일 MBC <뉴스데스크>
워크샵 회의장 정면에는 ‘이명박 정부 국정운용에 관한 합동 워크숍’이라고 적혀 있었다. 깜짝 놀랐다. 국정운용?

인수위원회가 정제되지도 않고 설익은 영어 몰입 교육 방침을 발표해 국민들, 특히 자녀들의 과외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많은 서민들의 공분(公憤)을 자아낸 뒤라 국정 ‘운용’이라는 단어가 얼른 눈에 띄었다. 틀린 단어는 아니지만 앞의 단어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즉 적확(的確)한 표현은 아닌 것으로 생각됐다.

기자도 우리 말과 글 실력이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운영’과 ‘운용’은 구분할 줄 안다. 그러나 확인 차원에서 우리말 사전을 몇 개 뒤져본다.

‘운영(運營)’‘일을 경영하여 나아감’ 뜻한다고 되어있고, 영어로는 'management'라고 참고로 표시하고 있다. 사용례로는 ‘학교의 운영, 독서회 운영’ 등을 들고 있다. 반면, ‘운용(運用)’‘움직여 이용함’으로 되어 있고 비슷한 뜻의 단어로 ‘활용(活用)’을 들었다. 또 영어로는 'employment'에 비유하고 있다. (민중서관 최신국어대사전, 1993년판)

자칭 국보로 불렀던 양주동 박사가 감수한 것으로 되어있는 다른 출판사 국어대사전에도 비슷하게 나와 있다.

세 번째 사전을 찾아본다. ‘운영’은 ‘(어떤 일이나 조직 따위를) 운용하여 경영함’이라고 되어있고, ‘운용’은 ‘(돈이나 물건이나 제도 따위의) 기능을 부리어 씀’이라고 설명하고, 사용례로 ‘자금을 잘 운용하다,’ ‘운용의 묘(妙)를 살리다’ 등을 들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국정은 운영의 대상이지 운용의 대상은 아닌 것 같은데...”

실수라도 문제, 알고 그냥 넘어갔다면 더 큰 문제일 수도

첫째, 단순한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수십명의 참석자 중에서 아무도 그런 적확하지 않은 단어 사용을 사전 혹은 사후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째, 운용이란 단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는데 아무도 지적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셋째, 가능성은 작지만, 운영이란 단어 대신 의도적으로 ‘운용’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용주의(實用主義)적 관점에서 국정 ‘운용’을 통해 국정 ‘운영’의 최종 목표인 ‘국리민복 증진’을 위한다는 뜻에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까?”

넷째, 워크샵에 참석한 이명박 당선자는 그 글귀에 대해 그냥 지나치고 넘어갔을까? “대통령에 당선된 국정 최고책임자가 큰 그림을 보아야지 그런 ‘사소한’ 단어 사용에 신경을 쓰면 되겠는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다.

대통령은 나라와 시스템의 마지막 문지기

이명박 당선자는 인수위의 마지막 문지기(gate-keeper)였고, 이제 1주일 뒤 대통령에 취임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문지기'가 된다. 축구와 핸드볼 경기 등에서 ‘수문장(goal-keeper)'이 최종 수비수이자 문지기이듯이 말이다.

불과 1주일 전, 정부 당국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문지키기(gate-keeping)'를 소홀히 해, 국보 1호인 ‘남대문(gate)'이 불타는 것을 몇 시간 동안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지 않았던가!

작은 실수가 큰 실수를 낳는 법이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아니 몇백 몇천배 더 중대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남대문이 불탄 것도 따지고 보면 관리 시스템의 부재에다 관계 당국이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국내외 음운·언어학자들은 우리 말과 글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우수한 언어와 문자’라고 입을 모은다. 컴퓨터와 전자정보통신 시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환 등 어떤 경우에도 호환(互換)이 가능한 대단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와 문자라는 것이다. 당장 일본어와 중국어와 비교해 보면 된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연설을 들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말하는 사람의 뜻에 맞는 단어를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중에서 찾는 과정이 한글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공부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확한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하물며 대통령과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기자가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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