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로열패밀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인숙은 공순호 회장에게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김인숙은 인간의 존엄을 논할 자격을 이미 잃은 상태다. 자식을 죽인 어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살인의 이유가 존재하지만 김인숙은 친자관계를 인정하라는 자식의 입을 막기 위한 살인을 저질렀다. 하필 그 순간이 김인숙의 JK클럽 사장에 취임하려는 때라서 벌어진 돌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미를 찾는 자식을 칼로 찌른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김인숙이 공회장에게 건넨 편지는 진실을 가린 계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엄집사가 한지훈에게 변호를 부탁하고, 숨겨왔던 당일의 CCTV 파일을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조니가 자기를 찾아와 엄마임을 인정해달라는 간청을 거절하는 과정까지는 사실일 것이다. 김인숙은 자식이라 인정하지 않은 조니의 죽음을 공회장과의 싸움에 이용하는 것이다. 한지훈이 살인용의자로 멍석말이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선한 의도도 있지만 자식의 죽음에 대한 어미로서의 인간적인 태도로는 볼 수 없다.

로열패밀리를 보면서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던 부분이 있다. 왜 재벌을 손 안에 두고 농단하는 김인숙을 보면서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김인숙이 공회장에게 인간의 존엄을 되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공회장에 대한 김인숙의 모든 발언은 틀린 것이 전혀 없다. 다만 김인숙이 그런 공회장과 싸워가는 과정에서 결국 같아져버린 것이다. 진흙탕에서 둘이 뒹구는데 하나만 멀쩡할 수는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인간의 존엄이란 공순호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김인숙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됐다. 김인숙이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아마도 로열패밀리의 시청률을 답보시킨 주된 원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김인숙이 존엄의 자격을 갖기를 숨죽이고 기다렸지만 결국 막판에 조니의 죽음을 이용하는 자세에서 마지막 희망마저 버려야 했다. 그러면서 로열패밀리의 추악한 싸움 속에서 유일하게 결백한 인물 한지훈이 그런 김인숙을 변호하게 되는 결말이 더욱 안타깝다. 김인숙이 조니를 스스로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적어도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문제이지 인간의 존엄을 논하는 윤리의 측면에서 김인숙은 직접살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원작과는 많이 다르게 진행된 것이 로열패밀리지만 결국 이 드라마의 제목은 인간의 증명이 더 어울린다. 김인숙을 크게 도와줬던 퍼스트레이디 진숙향도 결국 결정적 상황에서는 김인숙에 대해서 손을 놓는 장면이 있었듯이 가진 것이 많은 인간은 진실해질 수 없다. 김인숙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진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지만 막상 JK가의 로열패밀리로서의 달콤함을 맛보고는 애초의 동기가 훼손됐으니 말이다.

아마도 로열패밀리의 외형상 승리는 공순호 회장일 것이다. 김인숙의 싸움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별로 없는 드라마의 허구일 뿐이다. 문제는 한지훈이 어떤 이유를 갖고 김인숙을 변호 혹은 용서하게 되느냐다. 상황이 변해도 유일하게 근본이 흔들리지 않았던 한지훈의 최종선택에서 긍정적 인간의 희망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김인숙은 어쨌든 두 번의 살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죽였건, 죽게 했건 김인숙은 자식의 죽음을 외면했다. 법적으로 무죄일지 몰라도 윤리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한지훈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래서 로열패밀리는 결국 인간의 증명일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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