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가 3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게 만들어 한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지난 주말 뉴스 시간의 주요기사는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 협상과 공방에 관한 것이었다. 해양수산부 폐지 여부가 여야 협상의 막판 걸림돌로 떠올라 협상 결렬이 우려된다는 것이 관련 뉴스의 요지였다.

통일부와 여성부 존폐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당초 폐지 방침을 바꿔 협상 과정에서 존속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조금이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통일부와 여성부 폐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과연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핵심 참모들이 도대체 나라 경영에 관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 측근으로 일하는 ‘전문가’들은 좀 많은가? 그 핵심 참모들 중에서 교수 출신은 또 좀 많은가?

해양수산부 폐지 여부가 협상 결렬의 관건이라는 뉴스를 보고,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지정학(geopolitics)에 관한 책과 논물들을 꺼내 다시 읽어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옛날에 읽었던 부분들을 다시 훑어보는 정도다.

미 해군장교의 역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맨 먼저 꺼내 본 책은 미국의 전직 해군 장교(Alfred Thayer Mahan)가 쓴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이다. 이 분야의 ‘고전(古典)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

이 책에서 저자는 1665년 시작된 영국과 네덜란드의 2차 전쟁에서부터 이후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무수한 전쟁들을 다루고 있다. 1660년은 영국의 찰스 2세가 다시 왕위에 북귀한 해이고 1783년은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13개 주의 독립을 쟁취한 해이다. 원래 미국은 1607년 영국이 제임스강 연안에 식민지를 조성한 이후 영국의 식민 상태였다가 1775년 독립혁명 후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을 승인받았다.

1890년 이 책이 나올 당시 저자의 나이는 50살로 해군에서 은퇴를 불과 6년 앞둔 시점이었다. 4년 전인 1886년 해군 대위 시절 저자가 갓 출범한 미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 소재)에 초청받아 몇 명의 해군장교들에게 해군 역사와 전략에 관해 강의한 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이 책의 1957년판(미국 Hill and Wang, Inc. 츨판사 발행)에 따르면,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도 젊은 시절 이 책을 탐독(耽讀)했고(devoured), 미국의 두 루스벨트 대통령(26대 Theodore Roosevelt: 1901-1909; 32대 Franklin D. Roosevelt: 1933-1945년 재임)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세계 전략 지침서나 다름없어

이 책은 한 때 전 세계를 풍미했고 각국 해군 장교들의 필독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도 상당부분 이 책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이 책이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생물학에 끼친 영향에 비유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 시절 지정학에도 관심을 가져, 일본인 구라마에 모리미찌(倉前盛通) 교수가 쓴 ‘새로운 악(惡)의 논리(論理)’(최현 옮김, 범우사 발행)를 읽었다고 해 국내 언론이 보도한 기억이 난다. 마한(Mahan)이 쓴 이 책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한의 책의 내용과 저자가 던지려고 했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각 국가의 해양력(sea power)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들은: 1) 지리적인 위치; 2) 천연자원과 기후 등 물리적 조건; 3) 영토의 크기; 4) 국민성; 5) 국가 기관들을 포함한 정부의 성격 등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이 첫 번째와 다섯 번째 조건이다. 첫 번째 조건에 대해서는 새삼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다만 저자는 이렇게 압축해서 이야기한다.

“땅으로(by land) 자기나라를 방어할 수도 없고, 육지로 영토를 확장할 수도 없는 위치에 처한 나라는, 바다로 향한 목표가 통일되기 때문에, 대륙국가에 비해 유리하다. 이것이 과거 영국이 해양강국으로서의 프랑스와 네덜란드 보다 한층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이유이다.”

다섯 번째 요소인 정부의 성격과 관련, 저자는 “특정한 정부 형태와 통치자들의 성격이 해양력 발전에 대단히 뚜렷한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어 성공적인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한 사례들은 국민들의 일치된 의식을 바탕으로 정부가 올바르게 정책을 펴나갈 때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때로는 독재권력(despotic power)이 위대한 해상무역과 강한 해군 건설에 유리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천천히 추진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해군력(naval power)은 ‘상업적 목적의 해운력’(merchant marine: 선박을 비롯한 해운 능력 등을 총칭: 기자의 註), 무역과 군사기지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의 해외식민지, 평화를 파괴하려는 국가들에 대항해 압도적인 힘으로 즉각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함대(艦隊)의 유지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 바다 장악 여부에 달려

셋째, 해양력(sea power)과 강대국들의 부침 혹은 흥망성쇄는 바다를 상업적,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항상 연결되어 왔다.

이 책은 국제정치와 전쟁의 전략에 관한 연구업적이자 지침서이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재산과 무역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이것을 요즈음의 상황에 비교하면, 교역량으로 세계 11대 국가인 우리나라의 해외 무역 기지나 무역상사와 지사 등에 해당할 수 있고, 우리 해군이 이른바 ‘대양해군(大洋海軍 )’을 지향하고 있는 것 등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등 우리 이웃나라들은 이미 우리보다 몇 발자국 앞서 대양해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이미 2차 세계대전 때 현대식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나라이고 지금은 ‘이지스(Aegis) 시스템’을 장착한 세계 최첨단 전투구축함을 갖춘 세계 2위의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다.

물과 바다는 육지에 비해 유리한 소통과 교통 수단

넷째, 해전(海戰)과 해양력은 육지에서의 그것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영구불변의 것은 아니다.

소통과 교통의 관점에서 보면, 원래 물과 바다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열려있는 통로’이고 육지는 기본적으로 ‘닫혀 있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고 교통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옛날 이야기다. 상대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도 이런 기본적인 속성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동서양 각국의 주요 문명의 이동경로와 교류의 역사를 보면 저절로 이해된다.

▲ 국민일보 2월18일자 4면.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비판과 반발에 직면해 갈수록 말이 약간씩 바뀌기는 하지만, 한반도 운하 계획 공약을 발표할 당시는 주된 목적이 물류비 절감을 포함한 경제적인 것이었다.

문제는 한반도 운하 건설로 한나라당이 17대 대선 공약집(일류국가 희망공동체 대한민국, 한나라당 지음, 북마크 발행)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 살리기, 지역개발, 물류비 절감, 일자리 창출 및 연관산업 개발 등의 효과가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효과는커녕 상상할 수 없는 환경파괴와 기름과 독극물 유출 사고 등으로 인한 재앙이 우려된다. 비용과 재원 조달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다만 한가지 이명박 당선자의 한반도운하 건설 계획은 상대적으로 험준한 산악지역과 비교할 때 강과 물(바다)이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고전적 사실만을 상기시킬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2007년 말 기준으로 한 해 무역규모가 7천억 달러 이상으로 세계 11위인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해양진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옳다.

무역규모 7천억불,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양수산부를 폐지하다니?

결론을 말하자면, 해양수산부 폐지는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당장 일본과 중국 사람들이나 그 나라 언론들이 이명박 당선자의 해양수산부 폐지 방침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알아보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거나, 바보 같다고 비웃거나 아니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한반도 운하 건설 계획과 해양수산부 폐지는 상호모순된 정책방향임에 틀림없다.

마한이 제시한 해양력에 영향을 미치는 5가지 주요 요소들 중 ‘국가 기관들을 포함한 정부의 성격’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행보와 정책 방향을 예측하거나 권고한다면, 그가 건설회사 사장과 서울시장 재직 때 보여준 돌파력과 추진력으로 강한 해군과 해양강국 건설 청사진이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 마한도 “...때로는 독재권력(despotic power)이 위대한 해상무역과 강한 해군 건설에 유리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 운하 건설 대신, ‘해상왕 장보고’를 비롯한 우리 뛰어난 선조들이 1천2백년 전에 했던 것처럼, 나라의 몇 십년 몇 백년 앞을 내다보고 해양강국 건설 계획을 수립해 밀어부친다면 국민적인 호응이 있을 것 아닌가?

마한의 책은 단순히 3백년이 훨씬 더 된 옛날 역사, 그것도 얼핏 보면 우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서양의 전쟁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와 핵심 참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옛날에 읽었다면 다시 한번 읽기를 권한다. 마침 기사를 쓰고 난 뒤 책방에 들러 혹시 번역본이 나온 것이 있나 확인해 보니, 번역본(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김주식 옮김, 책세상 1999년 발행)이 나와 있다.

읽는 김에,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역사학 교수가 지은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Economic Change and Military Conflict from 1500 to 2000; 강대국의 흥망)과 미국 디킨슨대학(펜실베니아주 칼리슬 소재) 정치학 교수 조지 프리드만 등이 쓴, ‘미국과 일본의 전쟁’을 다룬 ‘The Coming War with Japan' 같은 책들도 함께 읽었으면 하고 감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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