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서 저절로 부여받은 특혜가 있다면, 그것은 임신과 출산이다. 일반적으로 여자에게 임신 소식은 온 가족들과 지인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다. 본인 또한 행복한 꿈에 젖을 수 있는, 하늘의 선물이다.

설령 그것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사고'라고 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식과 자식의 애인을 번갈아 노려보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돼!"라고 단언하던 부모들도 임신 소식을 알리면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아이를 낳고 나면 부모는 언제 결혼을 반대했었냐는 듯이 손자의 재롱에 넋을 잃고, 그렇게 그 가정은 평화단계에 돌입한다. 임신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고, 출산은 더욱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모든 여자들에게 축복이지는 않다. 극단적으로 암담한 경우가 바로 개발도상국의 여자들이다. 2월 12일 방송한 EBS <다큐10> '다시 아름다워지기 위하여'편을 보면 에티오피아의 여성들은 현대 의학의 혜택이 거의 전무한 가운데 조산과 난산을 흔하게 겪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출산 후 병에 걸려도 치료를 못 받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어릴 때부터의 중노동으로 인한 성장저하와 발육부진. 게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에는 에티오피아 여성들의 몸은, 엄마가 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다. 다큐에서 다뤄지는 병은 질과 방광, 혹은 질과 직장항문 사이에 구멍이 뚫리는 '산과적 누공'이다. 환자들은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가족들에게조차 외면을 당한다.

산과적 누공은 요실금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다른 질병이다. 말그대로 오줌이 몸에서 줄줄 샌다. 그녀들은 생리대도 없어서 천으로 몸을 감고 다녀야 하는 데다, 더운 기후 때문에 악취도 심하다. 사회생활은커녕 대중교통의 이용도 어렵다. 제 몸의 고통 보다 힘든 건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이다. 이러한 여성들은 대부분 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누공병원'이 25년 전 건립됐다. 이 병원은 환자들의 차비까지 제공하며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다큐에서는 이 누공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새 삶을 살게 되는 다섯 여성들의 이야기와 또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흘 동안의 진통 끝에 결국 아이를 사산하고 병에 걸린 아예후는, 소변이 새서 더럽다는 이유로 첫 아이와 함께 남편에게서 쫓겨났다. 다행히 친정 어머니가 집 옆에 움막을 지어줬고 그 움막에서 여자는 6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지난 날을 회상하며 여자는 말했다. "나는 죽을 날만 기다렸어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이도 낳을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고. 그냥 죽으려고 했어요."

그녀가 수술 후 건강한 몸으로 집에 돌아갔을 때, 단호하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제 딸은 저처럼 키우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저처럼 어린 나이에 결혼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학교도 보낼 생각 이구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살던 우베테는 겨우 열 살 때 첫 결혼을 했다. 몇 번이나 도망 쳤었지만 네 번째 결혼을 했을 때는 아이가 생겨서 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5일간의 진통 끝에 아이는 사산되었고 병에 걸린 채 쫓겨났다. 이제 열 일곱 살이 된 그녀는 말했다. "전 완전히 나을 때까지 집에 안가요. 가봤자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요. 치료받다가 안되면 그냥 죽어버리죠."

그녀는 결국 수술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아 요도에 기구를 삽입했다. 플러그처럼 뽑기만 하면 소변이 흘러나오게 하는 장치이다. 그 작은 장치 덕분에, 걷는 중에나 잠을 잘 때 소변이 줄줄 새지 않게 되었다. 퇴원 후 의사의 소개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산과적 누공'은 수술과 입원기간을 통틀어 몇 주의 시간만 견뎌내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는데, 그녀들은 가난했고 무지했기에 필요 이상의 고통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령대의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소외되어야 했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이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겨야 했는가. 그들보다는 훨씬 문명화가 잘 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가끔 이런 다큐를 접하며 슬퍼하거나 동정하거나 기부금을 내거나 하면서 안주하면 되는 걸까.

누공 병원의 수술 성공률은 93%이고, 1년에 1500명 정도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10만 명의 대기환자를 다 치료하려면 아직 멀었다며 병원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권의 기본이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겠지만, 1년에 1500명씩이라도 에티오피아의 여성들이 건강을 되찾고, 자신의 삶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녀들의 희망이 밝은 미래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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