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청와대, 조선일보와 정부 여당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까지 인정상 '살수'(殺手)를 쓰고 있진 않고 있지만, '여차하면'의 분위기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 13일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가 최상급의 표현으로 조선일보를 비난하자 14일자 조선일보는 보란듯 1면, 3면, 4면, 6면 그리고 오니피언 면에 이르기까지 작심한 듯 청와대와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MB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는 어제(13일) 4대강 지류 지천 개발 사업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비교하며 힐난한 조선일보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쏟아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침 조선일보 1면 기사를 보고 실망했다. 이것을 신공항은 안 하면서 이건 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국익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로 인해 국정지지율도 떨어지고, 영남 민심도 험해졌습니다)을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조선일보를 공격했다.

그는 이어 "비교 불가능한 것을 비교해 선동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기자가 해야 할 일은 아니지요"라며 사용할 수 있는 최상급의 표현으로 조선일보를 비난했다.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셈이고,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신호를 준 셈이다.

실제로 어제(13일) 조선일보가 1면 헤드라인으로 뽑은 '22조 4대강 공사 이어 20조 지류사업 벌인다'는 문제의 핵심을 응축한 한 문장으로 가장 명쾌하게 정부의 어이없음을 비꼰 편집이었다. 임기 전반부의 팔 할을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설전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명박 정부에게 조선일보의 기사는 내일의 악몽을 오늘로 당겨 보여준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박 사회특보가 '선동'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가며 조선일보를 공격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봐야 할 것인다. 최근 몇 달여간 불편해진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관계를 감안할 때, 의례적인 으름장은 아닐 것이란 것이 언론계 안팎의 분석이다.

하지만 박 사회특보의 경고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오늘자(14일) 조선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금이 임기 초라면, 적어도 종편 사업자로 선정되기 전이었다면, 박 사회특보의 경고에 얼마간이라도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오늘자 조선일보의 편집과 기사 배치는 한 마디로 '여 보란듯'이었다.

조선일보는 지금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청와대와 여당을 애먹이기 좋은 때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자 조선일보는 1면에 '하천 30여 곳 소형 댐 건설', 3면에 '건설업계 줄도산 공포', 4면에 '지류 수질 개선 좋지만…'세금 블랙홀' 될 수도' 그리고 6면에는 '"한나라당 최고위는 막말만이 오가는 동물의 왕국 이었다"'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실어 전 방위적으로 청와대와 여당을 압박하는 모습이었다. 오피니언 면에서는 정당팀장의 기명 칼럼 '"여당 의원이 한 명도 없다"를 통해 한나라당을 '봉숭아 학당'에 비하며, 문제투성이 정당이라고 싸잡았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입장에선 어제 보단 오늘자 조선일보가 훨씬 더 '선동'적이라고 볼 만한 편집이었다. 더군다나 정권의 명운이 걸린 재보선이 불과 보름여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조선일보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부담스런 때이다.

올 해 들어 조선일보는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해 국정원 관련 문제에 대한 잇따른 단독보도, 이귀남 법무부장관 불법 수사 개입 폭로, 구제역 침출수 기획 등으로 사사건건 정부를 불편하게 했다. 조선일보가 도대체 왜, 과연 무엇을 노리고 이러는 것이냐는 최근 언론계 안팎의 뜨거운 화제(!)였다. 박 특보가 노골적으로 조선일보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이어 조선일보가 아랑곳 하지 않음은 물론 더 세게 청와대와 여당을 받은 것은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4.27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결국 정부가 '세무조사' 카드를 쓰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 직후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 상황을 예사로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서 4.27 재보선은 중요하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4.27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이 기원전, 기원후로 나뉠 것이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만약 4.27 재보선의 결과가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 간주된다면, 조선일보는 현 정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일보가 현 정권과의 동지적 관계를 털고, 차기 정권 후보와 접선을 시작한다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지게 되는 이명박 정부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인정 상 쓰지 않았던 '살수'(殺手)가 양 쪽 모두에서 시현될 수 있단 말이다. 이래저래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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