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새삼스럽게 스타크래프트를 보고 있다. 언제 적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인데 그들이 다시, 여전히 게이머로서 활약을 한단다. 아이들과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게임 시간을 조율하느라 실랑이를 벌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덧 그 아이들이 즐겨 보던 게이머들의 건재만으로 이웃집 청년들의 소식을 들은 마냥 반갑다. 그렇게 스타라는 게임은 오랜 벗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최근 다시 활성화된 스타 덕분일까, KBS에서 특집 다큐로 스타와 그 게이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2019년 12월 22일 방영된 <더 게이머>이다.

게이머의 등장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게임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용사들이 등장했다는, 강호의 전설 같은 문구로 시작된 다큐. 뜻밖에도 스타의 포문을 연 건 바로 우리 사회를 강타한 IMF였다.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 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중략)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에 /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 (
한스밴드, 오락실 중)

실직한 아버지,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생들의 아우성으로 대변되는 IMF.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택한 호구지책 중에는 PC방이 있었다. 덕분에 사멸 위기에 놓인 용산시장을 각종 게임 기구들이 구원했다. 호주머니가 가벼워진 사람들은 1시간에 1000원이라는 값싼 PC방으로 몰렸다. 그리고 그 배경에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라는 IT산업의 획기적인 확산이다.

물론 스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메이플 스토리, 군주 온라인, 바람의 나라 등 2000년대를 풍미했던 많은 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스타만이 스타가 된 게이머와 함께 당대 최고의 대전으로 많은 유저(시스템을 직접 조작하거나 대화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와 팬들을 이끌었다.

스타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스타에서는 유저 각자가 저그, 테란, 프로토스 등 한 종족의 전사가 되어 다른 전사와 싸움을 벌이는 대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 대 개인만이 아니라 팀플레이도 가능하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특성에 따라 같은 공간은 물론 멀리 있는 상대방과 한 판 대결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러한 온라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게임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게임 한 편에서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동시성이 스타의 현장성을 한껏 살려내며 청소년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기를 끌던 게임을 하는 유저 중에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이 해도 말리는 게임을 직업으로 한다니, 당연히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다. '오락실 폐인'이라는 대명사로 불린 사람들, '잠은 자냐?' '백수냐?' '자네들은 뭐하는 사람인가?'라며 기성세대는 그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초기엔 처우도 좋지 않았다. 겨우 상금이나 받아야 돈이 생기던 시절, PC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좁은 모텔방에서 6~7명이 모여 생활을 했다. 당대 최고의 게이머였던 이윤열이 PC방에서 연습을 하면 아이들이 둘러서서 '야, 이윤열이다~'라며 구경을 하던 시대였다.

당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코드가 되다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그런 열악한 환경을 돌파한 건 '방송'이었다. 하던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황형준 피디의 기획으로 99년 프로게이머 대결이 방송에 등장했다. 왜 스타를 방송했을까? 스튜디오에 그럴 듯한 의자 두 개에 컴퓨터 두 대만 있고, 그걸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만 있으면 됐으니 현대판 바둑 중계 수준이랄까? 역설적으로 IMF가 제작비 덜 드는, 스타의 중계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중계만으론 부족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스타' 게이머의 탄생이 필요했고, 그런 요구에 응답한 건 다름 아닌 이제는 전설이 된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었다. e스포츠의 아이콘, 사람들은 스타는 몰라도 임요환을 알았던 시절. 유닛 몇 개만 살아남아도 이른바 '컨트롤(인공지능으로 각자 움직이는 유닛들을 마우스와 키보드 커맨드로 사람이 직접 조작하는 것)'을 귀신같이 써서 그걸로 역전을 해냈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데 능하며, 심리전에도 탁월했던 임요환은 말 그대로 스타였다. 또한 스타를 가능케 했던 건 2004년 준결승에서 이른바 임진록(임요환 대 홍진호의 대결)을 단 몇분 만에 3연승의 전설을 만든 후 제자 같은 최연성에게 결승전에서 지고 자신의 플레이를 용납할 수 없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던 절박한 승부사 기질이었다.

물론 한 사람의 스타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었다. '임진록'이라는 전설의 대전을 남긴, 임요환과 폭풍 저그 홍진호의 대결은 '이렇게 임요환을 밀어붙인 이가 있었을까',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이라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뿐인가. '뛰는 스톱 위에 나는 드랍쉽'이라는 프로토스의 영웅 박정석 등 각 종족을 대표하는 게이머군이 형성되었다. 스타만의 드라마틱한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고, 게이머간의 대결이 부각되고 그에 걸맞은 테란의 황제, 폭풍 저그 등의 네이밍을 갖춰가며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게임 중독, 심지어 PC방에서 오래 게임을 하다 보면 남성 호르몬이 감소한다는 우려 등을 전했다. 다큐는 이제 와 고해성사를 한다. KBS <아침마당>이라는 프로에서 당대 최고의 프로게이머라는 임요환을 데려다 놓고 게임 중독이라던가, 그렇게 게임 중 싸움을 하다 보면 누군가 날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던가, 조직 폭력배와의 연루 등 '무례한' 질문을 퍼부었음을.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게임, 게이머를 보는 동시대 인식의 틀이었다. ‘저렇게 게임만 하다 나중에 뭐할 거야’ 하며 '백수건달'처럼 여겼다. 게이머들 역시 자신 있게 자신의 직업을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스타의 한계를 돌파해준 건 뜻밖에도 대기업이었다. 젊은 층에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는 게임 스타에 대해 팬텍, SK텔레콤 등이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게임단을 창단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바닥에서부터 기반을 닦아오며 성장해 오던 스타는 이런 대기업의 지원으로 압축적 성장을 할 수 있었고, 대기업의 후광은 이제 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변화시켜 냈다.

1999년 대회수 72회, 총 상금 15억 규모의 대회는 불과 몇 년 만에 2004년 대회수 148회에 총 상금 규모 50억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그 정점은 바로 2004년 야구의 고장 부산에서 야구 결승전이 있던 날 열린 광안리 결승이었다. 10만 관중으로 가득 찬 광안리 백사장, 그곳에 선수들은 보트를 타고 등장했고 관중들은 이들을 바다 저 멀리 울려 퍼지는 함성으로 반겼다.

국악한마당에서 스타 게임을 판소리로 실연을 했고, 개그콘서트 개그맨이 스타 종족 성대모사를 하는데 그게 뭔지를 알고 다 웃을 수 있던 시절, 심지어 평양 조선 컴퓨터 센터에서도 스타 배우기에 분주했다. <아침마당>에 나가 수모를 겪던 임요환은 청와대에 초청받아 게임 산업 지원을 당당하게 대통령께 건의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받아 공군 e스포츠 팀이 창단되고 게이머들이 군특기병으로 국가적 인정을 받았다. 이제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된 프로게이머, 그렇게 대중문화 전반의 대표적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하였다.

역사가 된 게임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하지만 절정의 시간이 무너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스타 게이머가 가담한 승부조작 사건은 스타를 사랑했던 팬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스타는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하였다. 결국 공군에서도 e스포츠 팀을 접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스타의 저변은 확장되었다. 어느덧 20대에서 40대까지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고, 드디어 2018년 아시안 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그만두게 할 수 있을까요?”라요 문의하던 부모는 이제 “우리 아이가 재능이 있는 거 같은데 게이머를 하면 어떨까요?”라고 궁금해 한단다.

다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어느덧 우리나라 청장년층의 문화 중 대표적인 코드가 된 게임, 그중에서도 스타를 '문화적 현상'으로 밝혀보고자 한 시도는 신선하다. 더욱이 그저 '게임'이었던 스타의 탄생을 우리 사회를 강타한 IMF와 맞물려 설명한 건 문화 현상의 역사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 예리한 분석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임요환, 홍진호 등으로 대표되는 1세대 스타 게이머들의 '스타성'과 스타의 발전, 그 상관관계를 밝힌 점은 마치 가요 산업과 아이돌 탄생의 관계처럼 명쾌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게이머들에 대한 이야기나, 한편에서 활성화되면서 동시에 벽에 부딪힌 스타라는 게임이 본질적으로 노정하고 있는 난제에 대해서는 짚지 않은 채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한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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