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근본 원인은 정권의 천박한 언론관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언론환경을 5공 시대로 돌리려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크게 퇴행시키는 초민주적 발상"
"국민의 알권리, 권력 견제감시, 합리적 의혹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보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법무부"

‘오보 쓴 기자의 검찰청 출입금지’ 조항으로 논란을 불러온 법무부 훈령 초안 공개 당시 한국당이 내놓은 비판이 부메랑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한국당이 ‘일부 언론사가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는다’며 삼진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히자, 언론계와 정당은 한국당의 언론관을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는 19일 “불공정 보도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당은 편파·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사에 2차례에 걸쳐 사전 경고를 하고, 3번 경고를 받은 기자와 언론사에 다각도의 불이익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3번 경고받은 언론사에 대해 출입금지 조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MBC·JTBC의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박성중 미디어특위 공동위원장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정 보도에 대한 '삼진아웃제' 실시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삼진아웃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앞서 법무부는 ‘오보 쓴 기자의 검찰청 출입금지’ 조항을 담은 훈령을 선보였다. 당시 ‘오보’의 명확한 기준이 없고, 오보를 검찰이 판단해 언론의 비판과 감시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반발이 나왔다. 결국 법무부는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한국당은 법무부 훈령 논란 당시 강한 비판을 내놨다.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법무부가 언론 탄압 훈령·언론 검열 훈령을 자체적으로 마련했겠나”라면서 "법무부가 국민의 알권리, 권력 견제감시, 합리적 의혹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보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근본 원인은 정권의 천박한 언론관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밖으로 못 새어 나가게 막으려고 조선총독부 수준의 일을 벌이는 것”이라면서 "언론을 막고 통제할 생각하지 말고 언론 앞에서 떳떳한 정권을 만들 생각을 해라”고 밝혔다.

언론 취재의 자유를 강조하던 한국당이 ‘삼진아웃제’를 들고나왔다. 한국당의 삼진아웃제 대상은 '편파적이고 왜곡이 담긴 보도'다. 편파·왜곡 보도의 기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 사항이다. ‘한국당이 자의적으로 편파·왜곡 보도를 결정한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삼진아웃의 결과가 ‘언론사 취재 제한’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방통심의위, 언론중재위 결정은 언론사에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출입정지’라는 조치를 추가로 내리면 이중 조치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공당이 언론사 출입정지 조치를 내리는 건 '취재의 자유' 침해와 직결된다.

실제 기자들은 ‘삼진아웃제’ 발표 이후 백브리핑에서 “법무부 훈령 초안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기자들은 압박이라고 느끼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성중 한국당 미디어특위 공동위원장은 “(법무부 훈령과 삼진아웃제가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 공정하게 (보도)해 달라는 절규”라고 밝혔다. 한국당 관계자는 “법무부는 출입을 금지하는 거고, 우리는 불공정 보도가 있으면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0일 성명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를 저해하겠다는 으름장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문화방송본부는 “언론을 ‘통제와 지배와 대상’으로 보는 저열한 언론관”이라면서 “언론장악의 암울한 시절을 직접 경험한 우리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MBC본부는 “무엇보다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은 시대착오적인 ‘언론 길들이기’ 방안을 공표한 자유한국당 언론미디어특위의 면면”이라면서 “세월호 보도 통제 논란으로 대법원에서도 해임의 정당성이 확인된 길환영 전 KBS 사장,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5.18역사학회’ 소속의 이순임 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해 해고된 최대현 전 MBC 아나운서 등 과거 언론탄압에 가담했던 이들이 바로 자유한국당 언론미디어특위의 주요 위원들”이라고 비판했다.

박성제 MBC 보도국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불공정, 편파라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삼진아웃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왜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재까지는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생각인데, 한국당이 또다시 MBC 보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반박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각 정당도 한국당의 ‘삼진아웃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의당은 19일 브리핑에서 “한국당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나팔수를 양산하려 했던 못된 습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자유한국당은 세상사가 마음대로 안 돌아가는 게 언론 때문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라면서 “언론이 다소곳하게 자신들이 떠드는 걸 경청하고 받아쓰는 속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저히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언론관”이라고 규탄했다.

정의당은 “자유한국당은 답이 없다. 제1야당의 무게감과 책임감은 애저녁에 사라지고 기득권 사수에만 목을 매는 반사회집단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라면서 “국민이 이미 자유한국당에 삼진아웃을 선언했음을 깨닫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20일 논평에서 “총선을 앞두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발상 자체가 오만하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와 시선을 따라가는 기능이 있다. 자유한국당 자신들이 빨간 안경을 쓰고 세상이 빨갛다 하니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브리핑에서 “거대 언론과 유착하여 수십 년간 언론자유의 기본을 훼손하고 국민의 생각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에 대해 ‘삼진아웃제’를 적용하겠다고 한다”면서 “전 국민의 노력과 수많은 언론인의 고통 속에 이만큼 진전시켜온 우리 언론 수준을 1970년대 이전으로 후퇴시키려는 독재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이 언론사 출입제한 조치를 들고나온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한국당은 매경닷컴의 ‘홍준표 전 대표의 성희롱 논란’ 보도를 이유로 MBN 출입정지 조치를 내렸다. MBN이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보도문을 냈지만, 한국당은 출입제한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다. 언론계는 “한국당이 언론통제를 시도한다”며 강한 반발을 내놨고 한국당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취재거부 조치를 해제했다.

윤범기 전국언론노동조합 MBN지부 사무국장은 “우리로서는 황당했다. 기사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MBN에 있다. 하지만 사과도 하고 정정 보도도 냈는데 MBN 출입정지 조치를 내린 건 과도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언론 길들이기 차원이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범기 사무국장은 “출입정지 조치를 당하면 기자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다”면서 “한국당은 보도에 불만이 있으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소송을 하면 된다. 하지만 언론사 출입정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적 조직이면 그에 맞는 감시를 받아야 한다. 기자 출입정지는 국민 알 권리를 차단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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