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가정이란 소용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어제 오늘 벌어진 일을 딱 몇 년 전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때는 참여정부 임기 2년차, 조중동이 '수도이전사업'이라고 부르던 세종시 사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조중동의 비아냥처럼 수도이전사업이었더라도, 명분은 합리적이었다. 지역균형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였고, 세종시가 추진 과정상에 다소 거친 면이 있었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쳤고 설득의 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중동이 해당 문제를 사활적 이해관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더 정확히는 서울 땅값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들의 규합을 위해 조중동은 기꺼이 제 지면을 불살랐다.

그러던 어느 날 시민단체 출신의 청와대 A행정관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곤, 참여정부에 우호적인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세종시 사업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일간지 광고를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방송이 '중립성'에 갇혀 제대로 된 보도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내심, 세종시 사업에 찬성하던 그 시민단체 관계자는 나쁠 것 없겠단 생각을 한다. 청와대 A행정관은 적당한 방법을 통해 광고비를 '외부'에서 지원해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광고 게재에 함께 이름을 올렸던 단체의 관계자가 '양심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내용인즉슨, “그동안 정권 핵심부는 각종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시민단체를 활용해 여론 조작을 해 왔고, 저 개인도 한때 그 중심에 있었다. 세종시 사업 추진에 대해서도 유령단체를 동원해 여론 공작을 하는 것을 보고 지역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렇게 됐다면, 조중동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잠시 상상에 맡겨두고 또 한 가지 장면을 생각해보자. 일본 원전 사고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발생했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7일자 동아일보는 정부가 재난 대응과 관련해 뭔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치적 좌우 입장과 상관없이 에너지 정책의 비전을 '원자력'에 의존하긴 매한가지인 참여정부 역시 일본 원전 사고 이후 국내의 원자력 불안감 확산 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국책연구소는 연일 국내 원전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에 대한 찬반으로 나뉜다.

뒤늦게 방사능 물질의 국내 유입이 확인되지만 이조차 '극미량이어서 문제없다'는 공식 입장으로 무마하려 든다. 때마침 봄비가 예보돼 국민적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와중에 일본은 어처구니없게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이웃나라의 심란함이 영 신경 쓰이는 인정 많은 정부는 이번에도 '조용한 외교'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코앞엔 재보선이 있었다.

만약, 이랬다면 조중동은 어땠을까? 누가 보더라도 악재는 외부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에 찬성하는 조중동 입장에선 정부가 왜 이처럼 수세적으로 대응해 화를 좌초하는지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사정을 봐줬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오해이다. 만약, 5년 전 일본 원전 사고가 발생했고 당시에도 정부의 대응이 지금과 대동소이했다면 아마도 이 정부는 '멜트다운'의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조중동의 사설 제목은 아마도 '일본 원전만큼 믿을 수 없는 참여정부', '참여정부 차라리 수도를 후쿠시마로 이전하자 해라', '청와대 386은 방사능이 뭔지 모르나' 정도가 됐을 것이다.

어제(6일),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 의장은 동남권 신공항 찬성 광고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그동안 정권 핵심부는 각종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시민단체를 활용해 여론 조작을 해 왔고, 저 개인도 한때 그 중심에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도 유령단체를 동원해 여론 공작을 하는 것을 보고 지역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조중동은 이에 대해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았다.

▲ 7일자 중앙일보는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의 이중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의미한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국내에 방사능 비가 내리는 오늘, 비판의 우선 순위는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방사능 비가 내리고 있다. 경기도만이 '재량 휴학'에 들어간 가운데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와 일본 기상청의 발표가 다르고, 유럽 지역의 예보와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이 충돌해 도무지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어떤 것인지 알 수조차 없는 혼돈의 상황이다.

신공항 백지화 파문에 대해 대통령이 '언론의 자제'를 당부한 이후 조중동은 해당 문제에 대한 보도를 거의 거둬들였다. 금방이라도 권력이 박근혜에게로 넘어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버렸다. 그 자세의 풀어짐과 함께 신공항 문제는 이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이 과정에는 이해 당사자들인 지역의 여론이 배제되고, 실제 어떤 방향의 추진이 옳은 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또한 생략됐다. 조중동이 그저 그 문제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쓰고 버렸을 뿐이다. 쓰고 버림이 확실한 조중동은 그래서 여론 조작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했다는 '엄청난' 주장이 나왔지만, 그러려니로 넘겼다.

방사능 비에 대해 조중동은 다양한 기사를 썼다. 기사의 양과 질에 있어서는 흠잡을데가 없다. 방사능에 관한, 현재 상황에 대한 전문적 기사들이다. 단, 조중동의 기사는 정치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다. 정부를 정면에서 비판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편향이 깔려 있어 정작 이번 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제 오늘 벌어진 일을 보고 있노라면, 종편 사업자 선정 이후 '조중동이 달라졌다'고 했지만 이 정권과 운명 공동을 이루는 근본적 기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역사에 상상이란 소용없는 짓이겠지만, 행여 5년 뒤 정권이 교체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조중동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아시다시피,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