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결코 범상치 않은 문제가 되어버렸다. 지난 일주일 여 동안 '나가수'와 관련해 쏟아진 기사의 총량은 하나의 방송국을 세우고 다시 허물어 버릴 만큼 엄청난 분량이었다.

하나의 개별 프로그램이 이처럼 단기간에 많은 기사를 동반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가수'를 향한 여론은 공세적이었고, 예민한 날이 서 있었다. 그 날선 여론에 베어진 MBC의 모습은 너무 아마추어같아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일주일 사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여론이 완벽한 반전의 모양새를 띄고 있단 점이다. 오늘(29일) 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나가수'를 계속 보고 싶다는 의견이 67.1%에 달하고, '나가수'의 노래들은 음원차트 1~7위를 휩쓸고 있다고 한다. 휘성과 양파 등의 가수들이 출연 의사를 밝혔다는 기사도 있다.

'나가수'의 소용돌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겠지만 많은 가닥과 가정을 끌어들이진 말고 가장 간결하고 딱 필수불가결한 논란만 남겨 '나가수'의 문제를 되짚어 보자. 한국 방송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분노와 용서가 단 일주일 사이에 교차해 간 이 문제적 프로그램을 말이다.

▲ MBC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첫번째 탈락자로 호명되는 순간 무대의 분위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대중의 분노가 무엇에 근원한 문제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분노를 촉발한 행위를 우선 규명할 필요가 있다. 모든 행위의 구성 요소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이다. '나가수'를 둘러싼 숱한 논란 역시 행위를 구성하는 이 한 문장 안에 압축이 가능하다. '연출자가 탈락자에게 재도전을 허했다'가 대중이 분노한 시작점이었다.

좀처럼 정리될 것 같지 않은 '나가수'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이 한 문장에서 비롯된 상황이므로, 이 한 문장을 규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가수'를 베었던 모든 비난은 결국, 저 문장을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가장 단순한 원칙을 저버렸단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원칙이 옳은가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왜냐면, 이미 대중은 연출자로부터 이 쇼의 룰이 그러하다는 사전 정보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멋대로 바꾸었다는 것과 게임 룰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원칙을 저버렸단 비판이 거세지자 연출자인 김영희 PD는 '나가수'의 목적이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것이 아닌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어리석은 대답이었다. 애당초 호응하지 않는 인과관계, 성립될 수 없는 변명은 결과적으로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효과로 작용했다. 확실히 김영희 PD는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건모를 비롯한 가수들이 TV를 점령하고 있는 일련의 아이돌 그룹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모르는 시청자는 없다. 비교 자체가 난망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난망한 일은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던 방송사의 뻔뻔함이었다. 방송사 그 중에서도 특히 지상파 방송이라면 더욱 마땅히 TV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문화 다양성'을 고려해야했지만, 지상파 방송은 그간 그러한 요구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정도로 치부해왔다. 이유는 간명했다. '그럼, 시청률은 어쩔까?' 이 한 마디의 깐족거림이 오래도록 '문화 다양성'의 요구를 압살해왔다.

'나가수'가 정말 노래를 잘 부른다는 가수들을 불러 모은 것은 분명하지만 '노래' 그 자체보다는 '이들 중 누가 탈락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췄던 까닭 역시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연출자는 이미 제 아무리 최고의 가수들이라고 해도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론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일요예술무대'가 아닌 '나는 가수다'였고, 프로그램의 편집과 구성은 '노래'만큼이나 탈락하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거는 가수들의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췄다. 말하자면, '나가수'에서 노래는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 김건모의 재도전 여부는 긴급하게 논의하고 있는 제작진의 모습 사이로 연출자인 김영희PD의 경직된 표정이 보인다.
연출자의 이러한 상황 인식은 나머지 가수 6명이 판 앨범보다 홀로 판 앨범이 많을 국민가수 김건모가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인지부조화를 낳았다. 오디션프로그램을 표방했으므로 언젠가 김건모도 떨어져야겠지만, 연출자는 물론 무대 위의 모든 출연자들조차 그것이 맨 첫 판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던 것처럼 보였다.(다시, 한 번 그 날의 방송을 보시라.)

이 프로그램의 비극, 연출자와 시청자 간의 궁극적 오해는 바로 이 대목에서 확인된다. 연출자는 내심 '이러한 무대를 일요일 밤에 볼 수 있는 것이 어딘가'하는 속내를 가졌던 셈이고, 시청자는 '이러한 무대를 일요일 밤에 볼 수 있음을 만족하면서도 이러한 무대가 편성된 이유'에도 동등한 관심을 두었던 셈이다. 그리고 재도전 결정 이후 시청자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자 김영희PD는 곧장 속내를 드러내며, '목적론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목적은 사건의 순서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간 과정을 합리화하기 편하다. 하지만 목적에 비추어 문제를 설명할 경우 상황은 정리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것은 '나가수'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원한 것은 단순히 최고의 무대가 아니라 실재하는 최고의 무대(파이널 라운드)에 누가 어떤 방법을 통해 도달할 것이냐의 과정이었다.

연출자와 시청자 간에 발생한 소통 오류를 MBC는 연출자를 바꾸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지나치게 생략적인 것이었고, 극단적으로 단순 무모한 해법이었던지라 또 다른 부작용과 뒷말을 낳았다. '나가수'의 탄생 기원을 고려한 좀 더 진득한 해결책이 필요했는데, 방송사의 해법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야만적인 선택이었다.

논란의 소용돌이 끝에 겨우 '나가수'의 두 번째 라운드가 방송되었다. 이미 연출자는 교체되었고, 김건모는 자진하차를 선언했으며, 이소라는 잠적한 뒤였다. MBC는 2시간 40분 특집 편성으로 '나가수' 시즌1을 마감하고, 한 달여 뒤에 시즌2를 시작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그 두 번째 라운드는 비교적 담담히 '노래'만 쫓았다.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 끝에 '나가수'는 김영희 PD의 항변처럼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과정으로서의 무대가 아닌 가수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구성과 편집을 선보였다. '논란'과 '마지막'이라는 겹부담이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정엽이 탈락한 '나가수' 2번째 라운드의 방송 이후 급반전된 여론을 보며, 누군가들은 대중의 조변석개를 지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단언하건데, '나가수'가 '일요예술무대'의 콘셉을 지향했다면 이러한 대중적 호응은 없었을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무대를 일요일 밤에 볼 수 있음에도 기꺼이 만족하면서 동시에 게임의 룰에 쿨하게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애초부터 있는 척 없는 척 쿨한 척은 홀로 다 해놓고 정작 프로그램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자심감도 없었을 뿐더러,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전혀 무계획했던 것은 제작진뿐이었다. 그리고 그 제작진은 결정적 상황에 불필요한 개입을 함으로써 쇼의 여흥을 총체적으로 반감시켰다.

아시다시피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오디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문화적 이해력을 갖고 있는 대중은 그래서 한 번의 오디션만으로 누군가의 전부를 판단할 수 있음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대중은 국민가수 김건모가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것을 잔인하게 즐기려했던 것이 아니라 최선의 무대를 펼치고도 최악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누가 그 대중을 욕할 수 있을까? 스스로 제 아무리 최선의 무대라도 누군가에겐 반드시 최악의 결과가 온다는 설계를 해 놓고도 막상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누구였냐 말이다.

'나가수'의 논란은 대중의 맘이 변덕스러웠던 문제가 아닌 무능한 연출자가 출연자와 대중 모두의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였다.'나가수' 논란을 통해 방송사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은 대중이 더는 '무당'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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