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양식’(the way of life)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른 개별적 형태를 보일 것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대체로 집단적으로 유사하게 발현된다. 생활양식은 집단적 취향으로 드러나는데 ‘문화 소비’를 통해 구별하면 비교적 손쉽게 드러난다. ‘문화 소비’를 통해 집단의 ‘구별 짓기’가 가능하고 계급적 정체성이 드러난단 얘기다.

가장 간단하게 회식 문화를 보자. 십중팔구 깡통집 같은 곳에서 목살과 돼지 껍데기를 즐기는 집단과 도우미 있는 룸에서 스시를 먹는 집단의 생활양식은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집단 간에 일정 정도 접점이 발생하는 넘나듦의 순간도 있겠지만 깡통집과 룸 스시를 주로 즐기는 두 집단 간의 정체성 차이는 엄청나게 다르게 발현될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정체성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명명했다. 아비투스는 습관(habit)에서 유래됐는데,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따른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성향의 체계’를 일컫는다.

▲ 1999년 당시 금호미술관 큐레이터이던 신정아씨를 크게 다룬 조선일보 기사 캡쳐. 왼쪽은 당시 지면 캡쳐이고 오른쪽 이미지는 인터넷판 화면 캡쳐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대한민국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아비투스는 과연 무엇일까? 조선일보 구성원들은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느냐 하는 말이다. 간단치 않은 문제다. 뇌 속 깊은 신념까지 조선일보스러운 구성원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언론사 시험을 치르다보니 어쩌다가 조선일보 직원이 됐을 뿐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간단치 않은 문제에 간결하게 접근해가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문화 소비’를 적용해 구별지어보자.

신정아 씨가 자서전을 통해 조선일보의 전 기자였던 C씨에게 택시 안에서 성추행 당했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까지는’ 신정아 씨의 일방적 주장이다. 현직 국회의원인 C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과 함께 "신정아 씨와 해당 출판사에 대해서 곧바로 법적 대응에 착수할 것"이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언론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는 ‘아직까지는’ 당당하다.

하지만 신정아 씨의 주장은 정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황 묘사 역시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치밀하다. 그녀의 주장을 전하는 언론들이 출판사의 ‘스캔들 마케팅’에 동조하며, 관음의 시선을 확산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녀가 작심하고 그것을 세상에 던진 까닭 역시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조선일보의 전 기자였던 C씨는 신 씨의 주장이 “악의적인 상상력”이라고 역주장하고 있지만 굳이 왜 신 씨가 자신을 대상으로 “악의적인 상상”을 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성추행이 있었던 99년 봄 C기자는 신 씨에 대한 기사를 두 차례나 대문짝만하게 썼다.

오히려 C 전 기자의 ‘상상력’이란 언급을 듣고 보니 자신의 취재원이던 여성 큐레이터를 성희롱한 조선일보 전 기자 C씨의 모습 위로 고 장자연 씨와 술자리 동석이 있었다는 스포츠조선 전 사장 그리고 ‘OO일보의 ㅇ사장’이 겹쳐져 연상된다. 그들은 대체로 ‘문화 소비’를 그렇게 하고 있는가 보다는 ‘상상’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떤 언론사의 집단적 정체성이 룸에서 여성과 폭탄주를 마시는 것을 부와 권력의 과시로 여겨진다면 사회적 차원에서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조선일보 기자에겐 전도유망한 여성 큐레이터도 그저 성희롱의 대상일 뿐이고, ㅇ사장에게 여배우란 한낱 접대 노리개로 치워버려도 아무런 죄의식도 들지 않는 존재일 뿐이라면 그 집단들의 아비투스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다. ㅇㅇ언론사는 신문을 넘어 방송까지 넘보고 있는 한국 사회의 가장 유력한 언론사이다. 어쩌다 연달아 드러난 이들 언론인의 생활양식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너무 흉학하다.

부디, 조선일보 기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생활양식이 C 전 기자의 그것과 엄연히 다름을 입증해주길 바란다. 분에 넘치게 기사 써준 대가로 취재원과 술자리 갖고, 이 자리에서 성희롱까지 한 것이라면 C전 기자의 행위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어떻게 입증하느냐고? 입증의 방법이야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내면화된 성향의 체계를 깨부술 용기만 있다면, 조선일보 구성원 누구라도 C 전 기자의 범죄적 행각을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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