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성냥갑, 닭장. 흔히들 아파트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익대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1년 365일 아파트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한눈에 다 보이는 공간, 이러한 공간은 아이들의 뇌세포를 자극할 거리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선택한 아파트에서 부모들은 주말이면 아이들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아파트에 18세 이하 미성년자 가구 중 71.6%가 산다. 마당과 마을과 골목을 잃어버린 아이들, 바로 '하우스 딜레마'다.

SBS 스페셜 ‘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 1부 하우스 딜레마’ 편

<SBS 스페셜>이 2주에 걸쳐 유현준 교수와 함께 '공간 여행'을 떠났다. 과연 ‘어떤 공간에서 내 아이를 키워야 할까’ 하는 고민이 그 출발점이다. 성장하는 동안 1층 단독주택에서 2층 양옥, 그리고 아파트에서 살아봤다는 유현준 교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건 주택이란다. 그래서 그는 골목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는 주택가에 대한 예찬론을 펼친다. 불과 500M 이동할 때도 선택 가능한 길이 수십 가지에 이르는 골목은 아이의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고, 이는 곧 아이가 가진 삶의 배터리를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아파트-주택, 도시-자연

아이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서울 주택가에서 수도권의 좀 더 큰 아파트로 큰맘 먹고 이사한 예서네. 하지만 정작 그 집이 ‘짐’이 되는 현실에 봉착했다. 무리해서 이사한 탓에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게 되었고, 퇴근해서도 남은 업무 때문에 예서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늦게라도 예서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어진 아빠는 예서를 만날 시간조차 없다. 좋은 아파트라지만 이사를 와서 한결 외로워진 예서. 좁고 복닥거려도 친구들이 있던 다세대 주택가를 그리워한다.

SBS 스페셜 ‘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 1부 하우스 딜레마’ 편

어린 나이에 동화작가로 등단을 한 이수네. 엄마는 이수의 감성을 더 키워주기 위해 인천의 아파트에서 제주로 이사를 감행했다. 비 오는 날 마당에서 하는 물놀이, 아파트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이수의 감성은 폭발했다. 때로는 놀이동산, 공방, 카페로 변신하는 이수에게 우리 집은 '변신'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하지만 선택이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로망을 실현하고자 남해로 이사한 윤슬이네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골이 재미없다는 아이는 벌레가 없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싶단다. 여유롭고 한적한 것도 잠시, 심심해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셋째 임신 사실을 알고 오은주 씨는 장성에 집을 지었다. 가운데 마당이 있는 집. 굳이 주변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든 나와서 편히 쉴 수 있는 마당에 아이들은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고 뛰어논다.

목동에 사는 엄마들은 쉽사리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수도권에 자가로 아파트가 있지만 전세로 그보다 좁은 목동에 살면서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학군과 교육 여건이 좋은 이곳에서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있게 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다.

맹모삼천지교처럼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의 공간을 찾아 헤매지만 정답은 없다. 유현준 교수 역시 ‘주택이 답이다’가 아니라 직업을 탐방하듯 공간 역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도 창문 밖에 커튼을 달아 공간을 확장하고, 화분을 놓아 마당처럼 꾸며도 좋다. 아파트라도 자주자주 인테리어를 바꿔 변화를 꾀하며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는 등 얼마든지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실에서 공부를!

<SBS 스페셜>은 이런 고민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기 집을 놔두고 좋은 학군에서 전세 사는 우리나라 학부모들. 결국 교육이라는 화두로 집결되는 고민을 위해 '거실 학습'이라는 공간 활용 학습법을 제시한다. 물론 기승전 '공부'로 이어지는 해법은 아쉽다. 하지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이제는 해외에서 살기까지 감행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거실 공부법'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SBS 스페셜 ‘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 2부 공간의 힘’ 편

네 아이 모두를 일본의 명문대인 도쿄대에 보내서 '사토 마마'라 불리는 사토 료코 씨. 그런데 그녀의 비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다름 아닌 ‘거실 공부법’. 아이들을 공부시킬라 하면 우선 방을 주고, 요즘은 방도 부족해서 방안을 다시 독서실처럼 꾸며주는 우리와는 달리, 그녀는 '공부하는 아이들이 외로우면 안 된다'는 소신을 펼친다. 공부는 힘든 것이기에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토 료코 씨. ‘자, 이제부터 공부하자’가 아니라, 어느 틈에 손에 연필을 들고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는 분위기를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도쿄대생들의 74%가 초등학교 때까지 거실에서 공부를 했고, 중고등학교 때까지도 거실에서 공부했다는 통계. 일본 명문 아오야마 학원에 입학한 중학생 리나의 집, 리나가 거실 식탁에서 공부하는 한편에서 엄마는 부엌일을 한다. 그러다 리나가 부탁하면 함께 앉아 문제도 내주는 환경, 바로 이렇게 가족과 소통하며 언제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실에서의 공부가 일본에서 좋은 학습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학습 방식에 대해 전문가는 굳이 조용한 도서관을 놔두고 카페를 찾아가는 요즘 청년들의 학습 방법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 그 환경은 오히려 외떨어진 좋은 방이 아니어도, 학습적 분위기만 갖춘 거실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똑같은 공간인 아파트에 대한 다른 시도도 있다. 마을의 정서를 가진 아파트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이 의기투합했다. 테라스를 가진 저층, 앞마당을 가진 중간층 그리고 다락방을 가진 복층 형태의 고층 아파트가 함께 단지를 이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업비 때문에 이런 '이상적인 시도'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시도한 것이 바로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어느 아파트에나 있는 놀이터를 아이들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굳이 놀이터뿐이랴. 동네 주변을 주도적으로 자신의 공간으로 탐험해 가는 방식도 있다. 소유하지 않더라도 '도시의 보물찾기'를 통해 공간은 확장할 수 있다. 단지 아이들에게 그럴 ‘시간’만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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