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특한 장르 드라마 <싸인>이 20회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단순한 범죄 수사물을 넘어 사회 정의와 진실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며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았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회 주인공 윤지훈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초강수를 두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윤지훈의 죽음과 마지막 싸인은 무슨 의미로 다가오나?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윤지훈이 싸이코패스 살인마 강서연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은 경악스러웠습니다. 완벽한 진실을 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을 택한 그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모든 사건을 종결하는 힘으로 다가왔지만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요?


윤지훈의 죽음, 자신의 몸에 라스트 싸인을 남겼다

차가운 살인마 강서연은 윤지훈을 찾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지막 결정적인 증거를 윤지훈이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녀가 주저 없이 살인을 실행하게 합니다. 자신이 살인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증거 CCTV 카피본에 대한 두려움은 윤지훈을 죽여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 살인이자 <싸인>의 핵심이었던 서윤형 사건과 동일한 방식으로 죽게 된 윤지훈은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완벽한 살인의 과정을 증거로 남기게 됩니다. 윤지훈의 죽음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조금씩 커가는 사랑에 들떠 찾아간 고다경은 집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그를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고 혹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윤지훈의 죽음에 망연자실하고 있는 고다경, 정우진과 최이한.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뭘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상황에서 고다경은 떨쳐 일어나며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며 국과수로 향합니다. 고다경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정우진은 검찰청으로 최이한은 범행 현장인 윤지훈의 집으로 향하며 마지막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 다합니다.

국과수 부검대에 윤지훈이 올라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직원들이 부검 목록에서 그를 발견하고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윤지훈의 죽음을 보고 받고 이명한 원장을 찾은 강중혁 후보의 하수인 장민석은 마지막으로 그의 부검을 조작해 달라 합니다.

윤지훈은 죽기 전 유언처럼 이명한 원장에게 자신이 남긴 마지막 싸인을 꼭 알아봐 달라는 말을 남겼고 그 말은 이명한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강중혁의 표리부동함이 드러났고 강서연의 폭주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윤지훈의 죽음은 그에게도 충격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윤지훈의 사체를 마중 나와 특별 부검실로 옮기는 고다경은 마치 윤지훈이 진실을 찾기 위해 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부검대에 올려진 윤지훈은 자신의 몸에 중요한 단서를 남겨 놓았습니다. 강서연이 끼고 있던 반지의 자국과 서윤형 사건과 동일한 사인 '기도폐쇄성질식사'는 그녀가 범인일 수밖에 없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윤지훈의 집을 찾은 최이한에 의해 발견됩니다. 윤지훈이 강서연에 의해 죽어가는 모든 과정을 그대로 녹화한 카메라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강서연이 차에 독약을 타는 장면을 봤으면서도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윤지훈이 담아낸 이 모든 과정은 거대 권력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추려던 조직의 힘마저 무너트립니다. 강력한 대통령 후보 강중혁이 스스로 후보자에서 물러나며 그들의 범죄 행각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권력의 단맛에 물든 싸이코패스 살인마 강서연의 모습은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윤지훈의 죽음은 무슨 의미일까?

주인공인 윤지훈이 죽는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충격이었습니다. 마지막회 시작과 함께 주인공이 죽고 남은 이들이 그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그의 의지는 우리 현대사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모습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독재자들에 의해 지배당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이런 억압의 시대 모든 것을 깨우치고 일어선 이는 다름 아닌 민중이었습니다. 3.1 운동은 선각자에 의해 제창되었지만 민중이 아니었다면 그들만의 외침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이런 민중의 자각은 독립에 대한 강한 욕구로 다가왔습니다.

독재자의 만행에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나선 민중은 4.19 혁명을 만들어냈고, 5. 18 광주의 봄을 목도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꽃을 피웠습니다. 군부독재에 맞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열사들에 의해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작성했습니다.

자신의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고 희생했기에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듯 <싸인>의 윤지훈 역시 자기 희생을 통해 거대 권력이 저지른 범죄를 해결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희생을 통해 암울한 현실을 이겨내자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독재의 등장으로 언론은 통제되고 사회는 재벌들과 가진 소수를 위해 재편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에 취해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된 현 정권은 새만금과 다름없는 4대강 사업을 통해 배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기 인사, 보은 인사로 대변되는 인사 정책은 대한민국 외교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외교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커다란 구멍을 내더니 이제는 국책 은행 회장에 강만수를 들어앉히며 4대 주요 은행 회장을 MB맨들로 채워 넣어 철저한 보은 인사를 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탐욕에 찌든 강중혁은 진실과 사회 정의를 애타게 추구하던 법의학자의 희생으로 권력에서 낙마하지만, 현실에서 탐욕은 권력을 만들고 그런 힘은 다시 한번 독재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소수 권력자를 위한 정책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노예에 불가할 따름입니다.

현실은 드라마가 될 수 없습니다. <싸인>에서는 윤지훈의 희생으로 절대 권력으로 나아가던 탐욕스런 범죄자를 끌어내릴 수 있었지만 현실의 범죄자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고 그 권력은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죽는 <싸인>의 충격적인 결말은 무척이나 강한 자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주인공의 죽음 없이 진실을 찾을 수 없다는 상황 이해는 많은 이들을 침울하게 합니다. 과연 그런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일 수밖에 없느냐는 반문은 우리를 더욱 힘겹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 탐욕스러운 힘은 뒤돌아서거나 반성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촛불이 꺼지고 광장을 차단해 대중을 궁지에 몰아넣기에 바쁘던 권력도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무엇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의 비전도 미래도 담보할 수 없었던 상황은 <싸인>에서 강중혁과 강서연이 절대 권력을 가지려는 과정과 다름없이 섬뜩하기만 합니다.

<싸인>은 윤지훈을 희생시켜 주제를 확인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집권당 뿐 아니라 이에 대항해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 거대 야당마저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 뿐입니다. 과연 현실 속의 윤지훈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만약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을 희생해 진실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을까요?

드라마는 장르의 실험을 통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의 성찬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사회 정의와 진실을 찾아 떠난 수행자들은 마침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세상에서 흐뭇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싸인>이 보여준 통쾌함에 대리만족만 할 것인지 이를 통해 자각하는 대중이 늘어나 다시 한번 촛불을 켤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 되겠지요. 단순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외치든, 현실 속 불합리함을 바꿀 수 있는 의지를 내세울지는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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