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동서고금, 어떤 사회체제와 지배구조를 갖고 있느냐를 막론한 정치적 과제다. 왕정시대에도 물가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심지어 독재정권도 물가를 통치의 안정을 위한 최우선적 과제로 꼽는다.

하지만 MB는 다르다. MB는 거듭 "물가는 불가항력이다"이라는 고백을 해대고 있다. 무능력함을 '쿨'함으로 위장하는 것이 신종 정치 기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은 차라리 고상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10일 오전 열린 81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MB는 다시 한 번 "물가에 총력 의지를 갖고 있지만, 중동 사태로 유가가 100불을 넘어서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농수산물이 기후 영향을 받고 있다"며, 최근의 물가 상황이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비욘드 컨트롤(beyond control, 통제불능)' 상황"이라고 항변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는 불가항력'이지만 다만, '봄이 오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희한한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비욘드 컨트롤'이란 용어를 MB가 원래 알고 있던 것인지 이번에 누가 일러 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인데 100주 넘게 유가가 오르고, 생산자 물가는 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덕스럽게 '통제 불능'이라는 얘기를 하는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통제 불능'의 심정이다.

MB는 덧붙여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안으로 에너지 절약을 강조했다. 자신이 최근에 익힌 '비욘드 컨트롤'이란 개념을 국민이 몰라서 문제라는 것인지, 아니면 에너지 낭비 때문에 물가가 '통제 불능'이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인은 어쩔 수 없으니 니들이 알아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라'는 말인지 이 역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쿨'해서 얼어 죽을 지경이다.

MB는 그리곤 뜬금없이 "기후가 따뜻해지고 4월이 되면 물가가 안정 될 것"이라는 대책 없는 낙관론을 폈다. 앞서, 물가 문제의 주무 장관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봄이 되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얘기를 했던 바 있다. 지금 없는 통제력이 봄이 오면 어떻게 생긴다는 것인지, 봄이 오면 통제할 수 있는 걸 여태는 왜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차라리 그냥 '닥치고 가만 좀 있어 보라'는 것인지, 벌써 3월 중순인 것이 야속할 따름이다.

총체적 난국, 국정 파탄이 맞다. 엎친 데 덮쳤다는 표현만으론 한참 부족하고, MB가 YS의 전철을 밟고 있단 분석도 모자라 보인다. 최소한 YS는 환란이 왔을 때도 '통제 불능'이란 무식, 무능, 무책임한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환란 당시 부랴부랴 투입된 경제부처 장관들은 수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어제(9일),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MB를 "그 사람"이라고 낮춰 부르며, 짜증을 드러냈다. MB가 거듭 '물가 불가항력'론을 펴는 데 대해 정 최고위원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과연 서민들이 삶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힐난했다. 덧붙여 "그 사람은 아마 전혀 서민 경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가보지도 않고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MB와의 관계에 종을 치는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고, 이상득 의원과 갈등을 빚은 이력은 차치하더라도 한 때, 핵심 참모였던 정두언 최고위원마저 이런 강도의 조롱을 던지고 있는 것에 대해 MB와 청와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갑갑할 따름이다. 어쩌면, '정두언은 불가항력이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지 아찔하다.

예단하건데, 지금의 물가 상황이 3개월만 더 지속되면 정말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지난 9일 MBC <불만제로>는 10개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비교, 고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동일한 품목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실험에서, 물가가 높다는 악명이 전 지구로 뻗쳐 있는 동경과 런던보다도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가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의 기름 값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었고, 국민 소득이 한국의 2배는 될 국가들과 커피 값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불만제로>에 출연한 한 독일의 정육업자의 증언이었다. 그는 독일도 구제역 파동이 있었지만 초기 대응에 성공해 육류의 가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증언하며, 구제역으로 육류 가격이 오를 수 있단 얘기 자체를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구제역 이후 육류 가격은 치솟았다란 표현이 약소해 보일 정도로 올랐다. MB정부 들어 세계 1위에 등극한 경제 지표가 한 가지는 있음이 확실히 입증되고 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물가 문제도 부지기수다. 전셋값 폭등에 대해서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고, 한 학기 1000만 원 고지가 머잖아 보이는 대학생 등록금 문제 역시 시간만 보내고 있다. 가계빚이 급증해, 대출이 사상 최고 수준이다. 와중에 UAE 원전에는 수십조를 빌려주고, FTA 협정문은 번역 오류가 있지만 개의치 않고 밀어 붙이고 있다. 와중에 상하이에선 보은 인사를 구조적 원인으로 하는 외교 기밀 유출 사태가 발생했고, 연평도 이후 강조되던 국방 개혁안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다가 장성 10명 더 줄이는 것으로 봉합됐다.

사회 각 분야 어느 곳 하나 국정이 제대로 기능하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아랑곳 않고 대통령은 여기저기 축사나 하러 다니며 'G20세대'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지금의 상황을 '퍼펙트 스톰' 직전에 비유했다. IMF를 '쓰나미'라고 불렀는데,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가는 불가항력이라는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이라도 '퍼펙트 스톰' 이후의 상황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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