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거포' 문성민이 논란이 됐던 신인왕 수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문성민은 지난 7일 소속 팀을 통해 "한국 배구 발전을 기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상은 몰라도 신인상만큼은 후배들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신인상 후보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어 "어렵게 한국배구에 복귀한 만큼 많은 분들의 성원에 누가 되지 않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팀이 챔피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을 통해 V-리그에 데뷔한 문성민은 공격 3위(성공률 54.21%), 서브에이스 5위(0.31개)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어 신인왕이 유력했지만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2010-2011 시즌 V-리그 남자부 신인왕 경쟁은 곽승석(대한항공), 박준범(KEPCO45), 김정환(우리캐피탈) 등 3파전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2년간의 유럽 리그 생활을 거친 뒤 고국 무대에 뒤늦게 데뷔, '지각 신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 프로배구 무대의 신인으로서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수상기회를 후배를 위해 양보하겠다는 문성민의 태도는 얼핏 보기에 참으로 쿨하고 멋스러워 보이지만 필자의 눈에는 결코 이 장면이 멋스럽다거나 좋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 문성민 선수ⓒ연합뉴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문성민이 한국 프로배구 v-리그의 신인왕 수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성민은 경기대 재학시절이던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KEPCO45에 1순위로 지명됐으나 이를 거부하고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에 입단, 그해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성공적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문성민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세계 최고의 배구리그로 꼽는 이탈리아라고 밝히는가 하면 '배구계의 박지성'이 되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 터키의 할크방크로 이적한 문성민은 이후에도 계속 유럽에서의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2010년 6월 돌연 국내 복귀를 결정, 자신에 대한 보유권이 있는 KEPCO45와 현 소속팀인 현대캐피탈의 트레이드 형식을 빌어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캐피탈은 문성민과의 계약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 동안 문성민이 KEPCO45와 협상을 벌이면서 4-5년간 최대 20억원을 요구했던 점에 비추어 이 조건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당시 언론들의 추측이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 '배구계의 박지성'이 되겠다던 문성민은 자신의 말이 무색하게 고국의 품에 안겼다.

물론 국내 복귀 과정에서 신인드래프트를 고의로 거부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KOVO로부터 올 시즌 1라운드(6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1000만원이라는 징계를 받았지만 앞서 언급됐던 몸값을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영광의 쬐그만 상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문성민이 이런 과정을 거쳐 국내에 복귀했으니 문성민을 바라보는 배구계의 시각이 고울리 없었다.

'배구계의 박지성'이 되겠다며 유럽 무대 진출을 선언했을 때 그가 세계적인 거포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하며 문성민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나 프로배구계의 '게임의 법칙'을 교묘히 빠져나가 자신의 실리를 챙긴 문성민의 행보를 얄밉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문성민이 코트 안팎에서 이런저런 불이익을 당한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고 실제로 받기로 되어 있던 트리플크라운상 수상도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은 '정설'이 되고 말았다. 논란이 됐던 신인왕 자격에 관한 이야기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KOVO는 지난 4일 상벌위원회를 통해 문성민이 신인선수상 및 정규리그 MVP, 기타 개인기록 시상의 대상이 된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KOVO는 '출장정지 3경기 이상시 표창 대상에서 제외 한다'는 상벌 규정 9조를 근거로 문성민이 모든 개인상 수상에서 제외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고 두 차례의 트리플크라운에 대한 상금 200만원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상벌위원회에서는 "상벌 규정 9조는 '경기 중 폭력행위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출전정지 징계'에 따른 후속 조치라는 규정입법 취지로 이를 문성민에게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됨에 따라 결국 김명환 위원장 및 4명의 상벌위원(장재옥 중앙대법대교수, 송대근 스포츠동아 대표이사, 박상설 KOVO사무총장, 이선구 KOVO 경기운영위원장)은 문성민에게 '표창의 제한'은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일각에서는 문성민의 신인왕 자격 논란과 관련, 그동안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왔던 KOVO를 비판하기도 하고, 선수가 자신이 원하는 팀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현 드래프트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드래프트 제도가 현재 한국 프로배구판의 룰이라면 일단 그 룰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문성민의 국내복귀를 둘러싼 모든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문성민 자신에게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문성민 자신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외국 리그에서 뛰는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밝히며 유럽 리거로서의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냈지만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되어 있는 문성민의 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어줄 지는 의문이다. 또한 그가 다시 유럽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 현 소속팀에서 이를 받아들여 줄 가능성도 결코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문성민의 이번 신인왕 포기가 결코 멋스러워 보이거나 쿨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를 키워준 한국 배구계를 상대로, 그리고 '배구계의 박지성'으로 유럽을 누벼줄 것으로 기대했던 팬들을 상대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배구의 전설로서 그 이름을 길이 빛낼 수 있는 재목인 문성민이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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