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팬, 아니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외국인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히딩크 감독은 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명예 시민증'을 받으며 사실상 '반(半)한국인'이 됐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 때문인지 히딩크 감독은 '시민증'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매년 1-2차례 한국을 찾아 유소년, 장애우들을 위한 축구센터를 건립하는 등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정성을 쏟아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인들은 '상암 히' 씨 시조로 '히동구'라는 한국 이름을 선사했고, 아직도 상당수 축구팬들은 애칭처럼 히딩크 감독을 '히동구'로 부르고 있습니다.

'히동구'처럼 외국인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요즘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할 것 없이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라면 누구에게든 기발한 발상에서 나온 한국인 이름을 붙여 화제를 모은 적이 많았습니다. '스코필드'를 '석호필'로, '주닝요'를 '전인호', '밥데용'을 '박대용'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데요. 마치 우리 동네에 있는 사람처럼 친숙한 분위기를 주는 한국인 이름은 해당 외국인에게는 한국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돼 왔습니다.

최근 개막한 K-리그에서 '박은호'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브라질 출신 대전 시티즌 공격수 케리노 다 실바 바그너입니다. 첫 경기 울산전에서 프리킥으로 2골을 터트리며 2-1 승리를 거두는 데 공을 세운 바그너는 '박은호'라는 이름을 달고 그라운드를 뛰어 눈길을 모았습니다. 생김새는 분명히 남미 브라질 선수인데 이름이 한국인 이름으로 돼 있으니 '혹시 귀화한 선수인가', '혼혈 선수인가' 하는 오해를 가진 팬들도 많았는데요. 알고 보니 대전 구단 프런트가 바그너와 발음이 비슷한 박은호로 선수명을 등록했고, 이를 프로축구연맹이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더욱 친숙해진 이름값을 하려 했는지 박은호는 첫 경기에서 강호 울산과 만나 홀로 골을 터트리며 이변에 가까운 승리를 챙기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 6일 울산 문수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2011 K리그 울산 현대와 대전 시티즌 경기에서 대전의 브라질 출신 용병 박은호가 슛하고 있다.ⓒ연합뉴스
과거에도 K-리그에서 한국인 이름을 사용한 외국인 선수들이 존재했지만 박은호처럼 주목받았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울산 현대에서 뛰었던 수호자, 경남 FC에서 활약했던 뽀뽀가 상당히 인상 깊었던 외국인 선수 이름들이었는데요. 전반적으로 이름이 긴 브라질 선수들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기 위해서 구단에서 만든 이름이기는 했지만 이름보다는 별칭에 가까워 '과연 저 선수의 실제 이름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켰습니다.

하지만 박은호의 경우, 실제 이름인 바그너와 발음이 거의 유사해 기억하기도 쉬운데다 별칭이 아닌 실제 이름을 활용해 지은 이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특히 구단에서 어느 정도 신경을 써서 작명, 등록 과정을 이행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것으로도 예상돼 앞으로 '박은호'라는 이름을 어떻게, 얼마나 대전 시티즌이 잘 활용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박은호의 탄생은 '그너야'라고 부르는 대전 선수들의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구단 키플레이어 박성호와 투톱이라는 점에서 끝에 '호'로 이름을 맞추고, 결국 탄생한 이름이 '박은호'였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본인도 한국 이름을 원했고, 프로축구연맹에서도 별다른 지적 없이 바로 등록시켜 '박은호'라는 이름이 최종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대전 시티즌이 박은호를 키우면서 하나의 '프랜차이즈 스타급'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데요. 큰 스타가 없는 대전 입장에서는 첫 경기를 통해 박은호가 상당한 주목을 받은 만큼 색다른 마케팅을 꾸준하게 시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박은호가 개막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계속 꾸준하게 보여주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전제가 달라붙기는 합니다만, 선수의 실력, 그리고 구단의 마케팅이 잘 어우러지기만 한다면 박은호는 작명 뿐 아니라 다양한 면에서 아주 성공한 케이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박은호를 통해 대전 시티즌은 첫 경기도 이기고, 의외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새 시즌을 활기차게 맞이했습니다. 이렇다 할 스타 플레이어도 없고, 전력 역시 처진다는 예상이 많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대전은 박은호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더 큰 대박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스타 플레이어가 많지 않은 K-리그 타 구단에도 충분한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고 돈을 들이면서까지 하는 마케팅보다 친숙한 이름 하나로 주목을 끄는 '발상의 전환'은 K-리그의 흥행, 관심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박은호, 대전 시티즌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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