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무한도전의 사생결단 특집을 보고 딱 떠오른 것은 배트맨 시리즈인 '다크나이트'였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조커의 그 천재적인 테스트가 정말 인상깊었던 영화인데요. 보는내내 무한도전 멤버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그 모습이, 조커가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준 방식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김태호 PD가 방영 도중 트위터에 '다크나이트'를 각색해서 만들었다고 밝혔더군요.

조커가 되고 싶었던 김태호 PD

김태호 PD는 정준하와 박명수를 미리 불러 "정준하와 박명수가 위험에 처했다고 가정할 때, 멤버들은 누구한테 먼저 갈까요?"라는 의문을 제시하는데요. 역시나 그 둘은 서로 자신을 구할 거라며 유치찬란한 말다툼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존심에 흠이 가기 시작한 두 사람은 급기야 스태프 100명분 밥차 쏘기까지 걸면서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김태호 PD가 멤버들이 구하러 올 때 각자의 방을 바꾸어 기다리고 있자고 제안한 것인데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써먹었던 방법으로 멤버들을 당황시키려고 합니다. '다크나이트'에서는 조커가 하비덴트와 레이첼을 잡아서 폭탄을 설치하고 배트맨에게는 그 둘이 있는 위치를 반대로 알려주는데요. 고심하던 배트맨은 첫사랑이었던 레이첼을 구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조커의 계략에 당한 배트맨은 하비덴트를 구하게 되면서 레이첼은 폭탄이 터져 죽고 말았었지요.

정준하와 박명수는 멤버들이 들어오면 엄청 당황하겠다며, 재밌겠다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실 반대로 당황하게 되는 것은 멤버들뿐만이 아닌데요. 결국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기다리던 그들 앞에 멤버들이 나타났을 때, 당황하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재미보다는 섭섭함이 더 크게 밀려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김태호 PD의 심리전에 걸려든 정준하와 박명수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의 실험을 도와주게 됩니다. 김태호 PD의 실험 대상 속에 자신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죠.

역시나 박명수를 선택한 노홍철과 유재석, 정준하를 선택한 길, 하하, 정형돈은 반대의 상황에 크게 당황하며 민망해하고, 박명수와 정준하도 그들의 선택에 섭섭해 하는데요. 조커가 되어 그 상황을 즐기고 있던 김태호 PD는 구하러 간 멤버들에게서 당황하는 배트맨의 모습을, 정준하와 박명수에게서는 투페이스로 변한 하비덴트의 모습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김태호 PD의 실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요. 이번에는 앞서 구해주려고 했던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아 가두어두고, 화생방 가스를 분출한 뒤 방독면은 인원수보다 작게 지급을 합니다. 그렇게 앞서는 자신에게는 어떠한 위험도 없이 누구를 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자신 역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누구를 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인데요. 멤버들은 이제 자신이 위험에 처해지자, 결국 모두가 자신을 구하려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또 김태호 PD는 마지막으로 멤버들 모두를 따로 격리를 하고, 각각의 방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다른 누군가의 방이 폭파되도록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실험을 하는데요. 화생방 실험이 자신이 사는 것만 생각하면 되는 생존경쟁이었다면, 이번 실험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생존경쟁이었습니다.

이것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병원에 있는 사람들과 고담시의 범죄자들을 모아 배에 가두어두고, 각각 기폭장치를 주며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의 배가 폭파되도록 했던 방식인데요. 12시까지 결정하지 못하면 두 배를 모두 폭파시키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결국 양쪽 다 기폭장치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 선택을 했었습니다.

무한도전에서는 처음에 "우리는 형제요"를 외치며 버튼을 누르지 말 것을 다짐하지만, 이내 예민해지고 서로를 못 믿어 자극하게 되면서 박명수, 유재석, 하하가 버튼을 누르는 선택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사실 그 버튼은 자폭 버튼이었는데요. 결국 마지막까지 다른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자가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준하가 버튼을 누른 이유, 사기꾼 노홍철 때문

그런데 그 마지막 실험에서 정형돈, 노홍철, 길까지 죽고 난 뒤 정준하만 남은 상황에서, 정준하는 카운트다운 1을 남기고 버튼을 눌러 자폭을 하고 마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최후의 1인으로 살게 되는데 어이없게도 1초를 남기고 스스로 버튼을 눌러 죽어버렸습니다.

일단 논리적으로 분석을 해보자면, 분명 정준하는 자신이 마지막에 혼자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룰 자체가 혼자 남은 최후의 1인만 살게 되는 방식이었구요. 정준하는 1초를 남기고 버튼을 누른 뒤 "난 살았다"를 외치는데요. 결국 이것은 정준하가 버튼이 자폭 버튼이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분명 정형돈이 죽을 때까지만 해도 자폭 버튼이라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홍철은 마지막에 라인을 빼고 버튼을 누르고 죽은 것처럼 연기를 하는데요. 그러다 버튼이 눌러져 있는지 모르고 다시 라인을 연결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그 시간차의 어이없는 노홍철의 실수 때문에 정준하는 헷갈리게 된 것인데요.

노홍철이 누르는 액션을 취하고 죽은 척 연기를 한 것은 사이렌 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노홍철은 라인을 꼽다가 자폭하고 마는데요. 그리고 이어 길이 실수로 버튼을 누르면서 자폭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런 어이없는 변수를 정준하는 알 수도 없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노홍철이 자폭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다면 길이 버튼을 눌러 노홍철이 죽었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버튼이 자폭이 아니라 상대편을 죽이는 것이라면, 바로 이어진 길의 죽음은 노홍철은 죽으면서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버튼을 눌러 죽은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정준하는 헷갈리는 상황 속에서 마지막 1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준하는 '자폭 버튼이 아니었나?' 하고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또한 심리적으로도 분명 혼자 남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줄어드는 카운트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게 카운트가 줄어들수록 왠지 살기위해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정준하가 격리된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버튼을 누르는 것 밖에 없었지요.

사실 버튼이 자폭 버튼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준하가 버튼을 누를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죠. 자폭 버튼이라면 당연히 누르면 안되는 것이고, 자폭 버튼이 아니라도 이미 모두 죽은 상태에서 눌러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홍철 때문에 자폭 버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심리적으로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마지막 카운트 1에 버튼을 눌러버리고 만 것이지요.

그렇게 정준하가 마지막에 버튼을 누른 것은 카운트다운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과 더불어 사기꾼 노홍철의 실수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노홍철은 죽으면서까지 정준하를 속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이번 무한도전의 사생결단은 정말 멤버 간의 심리와 무한이기주의, 반전 등 재미와 감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미남이시네요 특집이 방영된다고 하는데요. 온라인, 길거리, 전문가 투표까지 해서 평균이하 7명의 남자들의 기막힌 외모대결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skagns.tistory.com 을 운영하고 있다. 3차원적인 시선으로 문화연예 전반에 담긴 그 의미를 분석하고 숨겨진 진의를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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