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기자'로 유명한 MBC 이상호 기자가 논문 '미국의 공공외교와 한미관계, 1953-1990'을 내고 '정치학 박사'가 됐다.

이 기자의 박사논문 '미국의 공공외교와 한미관계, 1953-1990'은 미국이 외교정책을 수월하게 이행하고 자국의 국익과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에 주목했다.

이 기자는 논문에서 "미국은 공공외교를 통해 그들의 입장과 외교정책을 우리가 잘 받아들이게끔 우리의 인식을 바꿔갔다"고 주장했다. 현재 감사원을 출입하고 있는 그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MBC 이상호 기자.
- X파일 폭로 이후의 근황이 궁금하다.

"'X파일' 이후 라디오 편집부, 국제부, 의정부 지국 등에서 근무했었다. 현재는 통일부·감사원·국무총리실·국가청렴위 등을 담당하고 있다."

- 박사논문은 언제부터 준비한 건가?

"2001년부터 시작해서 2003년에 코스웍을 끝냈다. 원래 논문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지...시간이 남아 미뤄뒀던 일들을 시작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2004년부터 논문을 시작했다.

4년 정도 걸렸다. 방향설정·자료조사·집필·리뷰에 각각 1년씩 걸린 셈이다. 그동안 논문을 잡고 있으면서 술 마실 때도 '아 논문 써야 하는데' '오늘은 1페이지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많았다.

이제 끝나고 나니 약간의 허전함이 든다. 정말 쓰기 힘들었다. 밀림을 개척하는 글쓰기를 하다가 넓은 논에서 좌우 줄을 맞춰가면서 한줄한줄 모를 심어야 하는 조직적 글쓰기가 정말 고통스러웠다. 다시는 논문 쓸 생각 없었는데 이번에 낸 논문을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또 써야할 것 같다. 사실 몇 개 생각해 둔 연구과제가 있고 자료도 모으고 있다.(웃음)"

"우리도 미국의 정교한 공공외교 배워야 한다"

- 논문 내용이 충격적이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저력'을 어떻게 느꼈나?

"미국은 무려 60년 전부터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정교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 사람들의 인식구조를 부단히 파악하고 자신들의 이미지 약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매년 자국의 목표 실현을 위해 치밀한 이행 계획을 세웠으며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처음엔 그들의 이런 철저함에 대해 무척 놀랐으며, 그 다음엔 반미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욕하기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우리도 미국처럼 정교하게 공공외교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 공공외교의 관점에서 한미관계를 전망하자면...

"현재 미국 공공외교의 진행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한미동맹은 심화될 것이다. 우리와 미국이 함께 했을 때 공동의 이익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공공외교적 노력을 통해서다.

미국은 '대북 위협'을 강조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시장 프레임을 설득하고 있다. FTA를 통해 기존의 군사동맹을 다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은 끊임없이 FTA 체결이 '시장동질성 강화와 동맹 강화에 필수적'이라며 한국과 미국의 미디어·연구기관·재계·정치인들을 앞세워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불과 1~2년 전에 70%에 달하던 FTA 반대여론이 급격히 약화돼 지금은 오히려 절반 이상이 한미FTA 체결을 통한 동맹 강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현재의 미국이 이번 대선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변수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할 경우, 한미관계는 이전에 비해 오히려 악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향후 한미관계는 시장 프레임이 양국의 동맹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로 돌입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친미 드라이브는 시장은 물론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영어교육'이라고 하는, 시장프레임의 또 다른 핵심 기제를 통해 더욱 견고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식해서 고발한다는 얘기 안 들으려 공부했다"

- 논문의 핵심 내용이나 결론은 뭔가?

"미국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게 인식정렬을 해왔음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이제껏 알아왔던 것처럼 과연 동일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런 주체적 자각 위에서 우리 국익에 걸맞는 대외인식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 무척 바빴을 텐데 틈을 내서 공부한 이유는? 혹시 '학자'로의 변신을 꿈꾸는 것은 아닌가?

"'쟤는 무식해서 고발만 한다'는 얘기는 안 들으려고 공부했다. 일정 강좌를 통해 학생들과 호흡하고 싶은 맘은 있지만 나는 기자가 좋다. 언론계나 지식사회에서 '시장'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 중 (이를테면) 경쟁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경쟁력이 없으면 안 된다. 경쟁의 패배자이기 때문에 경쟁 자체를 부인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는 무능하다"고 했던 덫을 기억하지 않는가.

'안보 프레임'이 주도했던 시대엔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지만 '시장프레임'이 주도하는 지식사회에 접어들어 기자는 모르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없을뿐더러, 심지어 나쁜 기사를 쓰게될 위험성 마저 있다."

"넓게 대화하고 함께 나아가겠다"

- 그동안의 '고발기자' 생활 때문에 인간관계가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기자의 본령은 '고발'이라고 믿어왔다. 예전엔 대단한 사명감 때문에 '나는 지금 형극의 길을 걷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때가 많았는데, 이제 나이 40이 넘어 되돌아보니 '사명감' '형극의 길'은 '오버'였다. 다만 그저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일 뿐이다. 좋아서 했던 일들로 오히려 과분한 평가까지 받은 것이다.

지난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 속 팀플레이 부분에 상당히 약했고 스스로 인간관계를 제한해온 측면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단견이었다. 몇 년 동안 성찰한 게 바로 그것이다. 보다 넓게 대화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가 되려 한다."

- 쉴 때는 주로 뭘 했나?

"지난 8년 동안 너무 빈 공간 없이 지내왔다. 틈나면 사람 만나 술 마시는게 전부였는데, 앞으로는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글들을 쓰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포맷의 뉴스도 개발하고 싶다. 아참, 하모니카를 배워보려고 한다. 악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동안 시간이 없었으니까. 집에서 연습중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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