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같다. 오래 알고 지낸 이들도 혹은 취재 때문에 새로 알게 된 이들도 마찬가지다. MBC 구성원들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SBS 구성원들이 종종 스스로를 '3등 방송'이라고 자조한다거나, KBS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도 현재의 KBS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MBC 구성원들이 보이는 한결같음은 굉장한 차이다.

대체로 인정해왔다. 그럴 만도 하다. 2000년대 이후 MBC의 진화는 눈부심 그 자체였다. 예컨대,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은 '저널리즘의 꽃'이라고 불리며 황우석 사태, 촛불 정국 그리고 최근의 스폰서 검사 파문까지 한국 사회 전체의 방향키로 작동해왔다. MBC 뉴스룸 역시 화려했다. 유난히 스타 앵커들이 많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불세출의 유행어를 낳은 엄기영 앵커를 비롯해 최근의 신경민, 최일구 앵커까지 MBC는 한국 방송 뉴스의 중심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진용을 구축해왔다.

▲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유행하고 있다고 전한 지난 17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이러한 아이템이 방송사 메인 뉴스에 적합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곳은 MBC 보도국 뿐인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MBC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손석희 교수의 경우 모든 언론 지망생이 닮고 싶은 롤 모델로 각종 영향력 조사에서 수년 간 1위를 지켰었다. 90년대가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손석희 아나운서가 지배한 시대였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한 <100분 토론>은 대중의 카타르시스가 만끽되는 장이었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최문순 의원이 사장을 지낼 때 조직 문화도 신선함 그 자체였다. KBS 노조가 구태와 퇴행을 거듭할수록, MBC는 유별나졌다. 가장 공적인 조직이 동시에 가장 진보적일 수도 있다는 유토피아적 현실이었다. MBC는 공적 영역에도 공정함과 원칙 그리고 때론 비판의식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이 생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이러한 MBC의 이미지는 MB 정부 이후 자행된 일련의 '언론장악' 국면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MBC는 언론운동의 핵심이자 구심 그 자체였다.

동시대를 치열하게 앞서 살아냈다는 조직적 체험은 그대로 MBC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아비투스'(habitus)로 굳어졌다. 아비투스는 '습관'(habit)에서 유래된 말이다.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성향의 체계이다. 2008년 광장에서, MBC는 거의 유일한 환대를 받았던 방송이었다. MBC 구성원들의 '자부심'은 짧게는 그 광장의 기억에 그리고 원형적으로는 '노영방송'이라는 외부의 극단적 조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건강한 조직문화를 일궈 온 구성체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당당함이었다.

하지만 언론계 내부엔 이러한 MBC의 모습이 불편하다는 심경을 말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MBC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과잉된 상징화'이고, 상징 자본화된 정체성으로 군림하려드는 일부 MBC 구성원들의 모습이 불쾌하다는 볼멘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적들은 언론의 공공성을 우선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MBC에 대한 비판은 적절치 않다는 대세 속에서 계속 유예되어 왔다.

MBC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지적들이 단적으로 집약되던 것이 바로 MBC 보도국의 행태였다. MBC 보도가 질적으로 KBS와 SBS 그리고 보수 언론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냐는 질문이었다. 몇몇 PD들이 MBC 저널리즘의 거의 전부를 책임진 불균형적인 상황에서 MBC의 보도는 모든 방송 저널리즘이 그렇듯 노골화된 연성화 경향을 보였고, 변별력을 찾기 힘든 무난함으로 점철됐다.

▲ 최근 MBC 뉴스의 수준을 가늠하는 한 잣대로 활용되고 있는 지난 13일 MBC <뉴스데스크> 9번째 꼭지 '잔인함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캡처
실제로 MBC 뉴스의 경쟁력은 MBC의 경영진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주말 <뉴스데스크>를 8시로 옮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만큼 경쟁력이 취약하다. 시청률과 영향력 면에서 KBS <뉴스9>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고, 후발주자 SBS <8시뉴스>마저 약진하며, 시청률에서 뒤쳐진 지도 꽤 되었다. 묘한 '자부심'에 어울리지 않게 '3등 뉴스'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시청률만으로 뉴스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와 공명하는 힘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볼 때, MBC 뉴스의 심각성은 시청률을 기준으로 할 때보다 더하다. MBC 뉴스가 끝나면, 트위터 등 SNS 사이트들에 속속 감상평이 올라온다. 2~3년 전이었다면 뜨거운 호응, 굳건한 지지를 표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주말뉴스가 끝나고 타임라인에 폭발적으로 RT(리트윗)된 한 멘션은 이런 것이었다.

MBC 뉴스데스크의 경쟁 프로그램은 '6시 내고향'과 '아침마당', 'VJ특공대', 그리고 홈쇼핑 방송인 것으로 보입니다.

MBC 구성원들이 위의 멘션에 무엇을 느낄지, 자사 뉴스에 대한 반응을 얼마나 모니터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차가워진 반응과 넘쳐나는 냉소에 위기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도 그저 MBC 아비투스를 즐기는 직장인들도 있을 것이다. 행여 개중에 자신들을 향한 비판 그 자체에 적개심을 표출하며 세상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이들이 있고, 그 수가 상당하다면 어쩜 MBC의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MBC 리포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일으켰던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의 경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MBC 뉴스의 수준을 말하는 한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한 외신은 그 리포트를 '가장 멍청한 기사'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고, 자사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실험을 패러디는 엄청난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MBC 보도국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연예데스크' 어떨 땐 '박태환 데스크'였다는 비판이 의미하는 바를 스스로 성찰해내지 못한다면 MBC 아비투스, '묘한 자부심은 초라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뉴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MBC 보도국의 대동단결은 눈물겨운 수준이다. 어떤 결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대중이 MBC 뉴스에 기대하는 것은, MBC 뉴스를 외면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MBC의 노력에 반비례하고 있다. 선정적인 아이템을 배치해 눈요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MBC의 전략은 이미 실패했다.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는 경영진과 데스크의 판단은 이미 틀렸고, 못 이기는 척 이를 따르는 기자들의 비겁함은 본질을 가리는 겸연쩍은 기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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