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문화는 티비 예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전히 드라마 여주인공의 패션이 특정 상품의 완판을 거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드라마보다 예능쪽의 무게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10년에 국한해서 본다면 그 2010년 최고의 예능 상품은 슈퍼스타K와 놀러와 세시봉이다. 슈스케는 이후 아류를 형성하게 했으며 세시봉은 한물간 가수 혹은 흘러간 노래를 현재의 노래로 탈태환골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해냈다.
이 둘의 영향력 지수는 물론 슈스케가 더욱 크겠지만 놀러와의 경우 겨우 두 번의 방송으로 세시봉 신드롬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슈스케보다 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놀러와가 1박2일, 무한도전 등보다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것이 현실이지만 소리 없이 문화현상을 만들어가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장수하는 것들이 그렇듯이 놀러와는 일단 건강하고 또한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일찍이 천하의 강호동이 강심장을 만들면서 놀러와를 피해서 화요일로 옮길 정도의 힘을 가졌다.
사실 어른들에게는 뜨악한 것이고, 그래서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핀잔도 넘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발렌타인데이 풍습이 위축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놀러와가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만든 특집이 아주 교묘하게 발렌타인데이를 디스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윤소정, 김수미, 김자옥 세 명이 초콜릿을 들고 나와 놀러와도 역시 시류에 그저 묻어가려나 싶었지만 그것은 오해에 불과했다. 말이야 예능감 살려 줄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성 출연자들이 누구에게도 초콜릿을 건네지 않다는 점에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섭외능력만은 놀러와 작가진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보는 시청자야 단지 볼 뿐이지만 이런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모이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탓이다. 최근의 놀러와가 다른 예능과 특히 차별성을 갖는 것은 이번 특집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돌에 대한 맹목성을 버린 거의 유일한 예능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놀러와에도 간혹 아이돌이 출연하기도 한다. 얼마 전 소녀시대 편을 봐도 그렇다. 그렇지만 놀러와는 아이돌에 묻어가려는 안일한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발렌타인데이에 마련한 황혼의 로맨스는 얼핏 봐서는 발렌타인데이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발렌타인데이를 쫓는 것처럼 하면서 거꾸로 그 현상을 따갑게 꼬집고 있다. 적어도 놀러와 안에서만큼은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이 동지팥죽의 기습에 맥을 못 추고 패배하고 말았다. 그것은 비단 출연자들이 이순재 등 고령이라서가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직접적인 것보다 액운을 물리치라는 동지팥죽에 담긴 다소 소극적이지만 더 깊은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만 본다면 세상에는 우연한 일이 많다. 그렇지만 꼼꼼히 살펴본다면 우연한 성공과 장수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놀러와가 세시봉의 기적을 만든 데는 다 그만한 노력과 의지가 뒷받침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놀러와 황혼의 로맨드는 사실 이런 의미보다 노익장 토크의 묵은 장맛 같은 재미가 더 쏠쏠하다. 혹시 본방을 놓쳤다면 꼭 다시 보기를 권하고픈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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