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KBS <다큐멘터리 3일>의 한장면이다.

강남역은 매우 다양한 감정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괜히 거울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나가야 할 것 같고,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에 주눅들기 쉽다. 걷지 말고 뛰어야 할 것 같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까지 들게 만든다. 그 강남역을 한발짝 떨어져 보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KBS <다큐멘터리 3일> '젊음은 왜 강남역에 열광하나'편은 강남역 7번출구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소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삭막한 이미지가 강한 곳이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는 공간이자, 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이었다.

촬영팀이 만난 정수연 씨(24)는 이 날 강남역에 처음 왔다고 했다. 연극배우지망생으로 면접을 보기위해 선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다시 만나니 고시원을 구해 서울에서 첫 생활을 시작했다. 다이어리에는 '독립'이라는 목표를 선명하게 적고 있었다. 수연 씨에게 강남역은 첫출발이다.

추운 겨울밤에 반팔옷을 입고 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이다. 강윤진 씨(22세)는 "여기에 오면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저도 얻게 되고, 제가 또 그런 것을 사람들한테 주고. 이런 것이 일을 하다보니까 너무 좋고 그만둘 수 없는 중독 되는 그런 느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강남역은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다.

재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자원봉사를 하다가 만난 대학생들이 군대가는 친구를 위해 강남역에 모였다. 그들은 케이크에 26개의 양초를 꽂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함께 불러줬다.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가면까페도 있고, 여자손님만 받는 술집도 있고, 값싸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가게도 있었다. 인테리어도 신선한 곳이 많았다. 20대 사장과 직원들이 "젊을 때는 고생을 해도 괜찮다"며 새벽4시에 저녁을 먹는 공간이기도 하다.

청춘을 발산하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어학원에는 많은이들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신 무료로 학원수업을 받으며 생활하는 젊은이도 만났다.

전남 여수에서 올라와 와인가게에서 일하게 된 오혜진 씨(24세)도 만났다. 처음이라 일이 서툴다. 와인이름도 아직 외우지 못하고 손님이 오면 당황스럽다. 3일째 다시 만난날 혜진 씨는 항공사에 근무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며, 서비스업을 익히고 싶어 일하기 시작했다며 자신의 꿈을 들려줬다.

이밖에도 카메라는 강남역에서 만난 많은 젊은이들의 꿈에 주목했다. 하나같이 모두 예쁘고 당차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모처럼 사람을 기운나게 만드는 방송이었다.

물론 이것은 강남역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강남역에 흐르는 그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 버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통 속에서 그곳에 매일 가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다른 곳에 비해 비싼 가격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다큐멘터리 3일>의 시선은 정겹다. 강남역을 이렇게 애정어린 눈으로 관찰하는 것도 일종의 금기를 깨는 작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이런 애정의 눈이 필요할 듯하다.

다만 배경음악이 좀 식상했다. 방송직후 시청자 게시판에서 김지은 씨는 "제가 기억하는 것만해도 3편 이상에서 '거위의 꿈'이 마지막에 흘렀던 것 같아요. 좋은 노래지만, <다큐멘터리 3일>을 즐겨보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음악 때문에 식상함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맞는 말이다. <다큐멘터리 3일>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요즘 방송에서 희망에 관한 소재에 '거위의 꿈'을 너무 흔히 쓴다. 배경음악도 다큐멘터리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끼치니 세심한 선곡이 필요하다.

방송은 홈페이지(http://www.kbs.co.kr/1tv/sisa/3days/index.html)에서 무료로 다시 볼수 있다. 빨리 챙겨보지 않으면 56k 저화질로 봐야하니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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