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일밤은 시청자에게 실망을 자주 안겨주고 있다. 일밤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 상위에 노출되는 폐지란 단어가 참 익숙해진 일밤은 이번에도 출연자들에게 사전 통보 없는 갑작스런 폐지를 단행했다. 그리고 일밤의 오랜 이미지인 공익을 버리고 시청률을 잡겠다고 시도했던 뜨거운 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가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결국 폐지되고 만다. 그것도 심각한 논란을 안고 시작하는 신입사원과 이번에는 가수들을 오디션장에 올리는 나는 가수다가 신설 코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랜 침체와 잦은 폐지로 인해 소수정예의 마니아들마저 등을 돌리게 해온 일밤의 새로운 출발이 잘 될 거라 전망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새로 신설되는 코너들에 신선함보다는 어떤 강박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단비와 같은 유니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설되는 두 코너 모두 오디션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를 뽑는 노골적인 오디션이고, 나는 가수다는 기성 가수들을 상대로 가창력을 심판하는 한편으로는 매우 가혹한 오디션이다. 신입사원과 달리 다소 늦게 발표된 탓에 아직 나는 가수다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이도 충분히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물론 아이돌 독점의 가요 프로로 인해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소외를 해소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슈스케의 열풍을 근원적으로 재해석한 기획의 단면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오디션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슈스케나 위대한 탄생처럼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심사위원을 따로 두는 것이 아니라 500명 방청객에 의한 선택으로 탈락자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지만 이 역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결국 팬이 많은 가수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내용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과거에 했던 쇼바이벌의 리바이벌의 색채가 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쇼바이벌은 가수 지망생이거나 신인이 출연했지만 나는 가수다에는 기성 가수 즉 팬을 보유한 스타급이 출연한다는 정도다.

그렇지만 그 차이가 쇼바이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신인과 달리 기성 가수들에게는 아이돌 팬덤만은 못하다 할지라도 팬이 존재하며 그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하게 된다면 과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맹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매주 한 명씩 탈락하게 되는 시스템인데 그 탈락의 굴욕을 견딜 기성 가수들이 얼마나 될지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승자를 뽑아 엄청난 상금과 부상을 안기는 포지티브한 오디션이었다면 나는 가수다는 그 반대인 네거티브한 오디션인 셈이다. 그런 차이점이 시청자에게 유혹의 요소가 될 소지를 부인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불러올 가수들의 출연 거부나 관객 판정에 대한 의혹과 시비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현재는 그런 걱정보다는 당장에 평가단 500명을 채우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일밤의 처절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일밤이 나는 가수다를 기획한 데는 두 가지 커다란 현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첫째는 당연히 슈스케와 남자의 자격 하모니이고, 두 번째는 놀러와 세시봉 신드롬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노래를 좋아하고 또한 진짜 노래에 갈증을 겪고 있는 현상을 보기는 제대로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해법을 찾기에는 일밤이 오랜 침체로 인한 강박을 벗지 못한 것 같다. 세시봉에는 어떤 경쟁도 없었다. 또한 박칼린 신드롬을 낳은 남자의 자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기고 싶은 마음은 의욕과 스스로의 동기 부여에 그쳐야 하는데 그런 욕망이 프로그램 기획에 그것도 두 코너 모두 경쟁이란 구성으로 표출되고 있다. 미리부터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같은 콘셉트의 코너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안정적인 투자는 아닐 것이다. 물론 둘 다 잘된다면야 시너지를 불러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이러스처럼 전염될 수도 있다. 그래도 신입사원보다는 나는 가수다가 다소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은 이 코너가 우리민족 궁극의 기호인 노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렇다. 바람 역시 그렇다. 나는 가수다가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을 말끔히 해결하고 대중에게 노래를 감상하는 즐거움과 감동만으로 다가섰으면 한다. 오디션, 경쟁, 탈락 등의 단어와 노래는 같은 자리에 앉힐 가치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노래와 가창력 뛰어난 가수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우리 가요계는 대형기획사들의 폭력에 가까운 상업성에 찌들어 있다. 나는 가수다가 그런 가요계의 전횡에 맞서 놀러와의 세시봉처럼 진한 감동을 주는 코너로 탈태환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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