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계올림픽 특집은 모처럼 무한도전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목욕탕에서 물을 퍼내거나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했듯, 무모하면서도 하찮은 시도를 하는 평균이하 보통사람의 웃기는 도전. 바로 그런 웃음코드를 통해 초반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해줬는데요. 얼음판 위에서 맨살로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침낭으로 봅슬레이를 하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멤버들의 웃기는 활약을 통해 몇 년 전의 무한도전을 만나는 듯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후반후로 가니 그게 또 아니었네요. 무한도전은 웃음뿐 아니라 마지막엔 대반전을 보여줬습니다.

어제 무한도전 동계올핌픽 편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종목은 '깃발뽑기'였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깃발을 뽑아 흔들어야 하는 멤버들은, 90미터 스키점프대 아래에 섰습니다.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스키 점프대 정상까지 올라가야했지만, 가파른 슬로프에서 수없이 미끄러지며 쉽지 않은 도전임을 보여줬습니다. 아이젠을 끼고 도전에 나섰지만, 심한 경사에서 속속 나가떨어졌지요.

역시나 극한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유반장은 동료를 격려하며 기어이 선착에 성공했고 이어 하하가, 그리고 노홍철 역시 정상에 섰습니다. 상단부의 밧줄을 잡기까지가 고비였습니다. 여전히 나머지 멤버를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였지요. 하지만 모두가 성공해야 하는 미션이기에 나머지 멤버들도 힘을 냈지요. 특히 가끔 몸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박명수 역시 쉼 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멤버들을 구경만 할 수 없었던 유재석은 로프를 잡고 내려갔습니다.

이제 로프와의 거리를 얼마 앞두고 지쳐있는 박명수를 이끌어주게 되지요. 사실 유재석이 로프를 잡고 몸을 뻗어 물리적으로 도와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리보다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한다는 동료애, 목표가 가까웠음을 알리는 격려의 메시지는 물리적인 것 이상의 힘이 됐습니다. 기진맥진하던 박명수는 마지막 힘을 내서 유재석을 딛고 밧줄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쳐있는 박명수는 그 순간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요. 뒤이어 정준하도 유재석을 딛고 올라서는데 성공합니다. 왜 유재석이 1인자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겠지요. 희생이라는 것은 일방적일 때는 의미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의사가 상대에게 있을 때 온전히 완성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제 마지막 남은 멤버는 길뿐입니다. 당시 길은 체력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지만 그보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미끄러졌던 길은 기어이 밧줄 가까이까지 올라왔지만, 마지막 고비를 앞두고 헛도는 아이젠에 한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두려움에 얼어 있었습니다. 로프에 매달린 채 기다리고 있는 유재석과의 거리 불과 몇 미터였지만 심리적 거리를 너무도 멀어 보였고, 두려움 속에서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결국 유재석은 남겨두고 기진맥진해 있었지요.

이미 유재석은 길을 위해 아이젠까지 떼서 던져준 상태였는데요, 유재석은 스스로 몸을 던져 밑으로 내려가지요. 아이젠을 다시 장착한 후 재등반에 나선 유재석은 길을 밑에서 받쳐준 후 길의 아이젠을 다시 꽉 고정시켜줍니다. 그리고 일단 먼저 올라가 밧줄을 다시 잡은 유재석은, 바로 발밑까지 접근한 길에게 자신을 잡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이때 길은 유재석의 요구에 망설입니다.

길의 두려움은 가파른 경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료에게 폐가 되는 것 역시 큰 두려움이었지요. 자신 때문에 유재석마저 떨어질까 두려워했습니다. '아니 된다니까, 안 떨어진다니까. 빨리 잡아' 망설이는 길 때문에 유재석의 언성이 점점 높아집니다. '아이 빨리 올라오라니까' 유재석은 급기야 화를 냈지요. 앞서 박명수, 정준하는 유재석의 등을 타고 올라갔었지요. 기꺼이 동료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길은 결국 유재석을 비껴서 올라갔습니다. 동료에게 편안히 의지하지 않고 누가 되지 않고자 한 거지요. 이러한 길의 행동이 유재석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여전히 무한도전에서 겉돌고 있는 길의 현실을 새삼 깨달은 거지요.

'너 왜 이렇게 사람 못 믿어' 유재석의 안타까운 말에, 길이 뭔가 대답을 했으나 유재석은 그 말을 끊고, '빨리 가'를 외쳤습니다. 기어이 길은 앞서의 두 멤버와 달리 유재석을 잡지 않고 스스로 밧줄을 잡았지요. 그리고 정상 등반에 성공합니다. 어쨌든 미션은 성공했습니다. 동료들은 길을 끌어안고 환호를 보냈지요. 하지만 유재석은 홀로 구석에 가서 고개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요. 그때 유재석은 길에 대한 안타까움을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기어이 성공한 미션을 생각했을까요. 이런 유재석에게 길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유재석은 평소답지 않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길의 머리를 두드리며 그를 격려했습니다. 길이 그 격려의 의미를 깨달았기를 바랍니다.

길이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자막에는 '느려도 같이 가자'란 메시지가 보이더군요. 이날 그들은 진정 같이 갔던 걸까요. 혹은 앞으로는 진정 함께 하자는 의지였을까요. 친구가 힘들 때 내미는 손길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손을 기꺼운 마음으로 잡을 수 있을 때 그는 진정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이날 길은 마음을 열지 못했고 유재석을 비껴갔습니다. 마음을 열어보였던 유재석은, 이런 길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예블로그 (http://willism.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속에서 살지만, 더불어 소통하고 있는지 늘 의심스러웠다. 당장 배우자와도 그러했는지 반성한다. 그래서 시작한 블로그다. 모두 쉽게 접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을 시작으로 더 넓은 소통을 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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