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터키와의 평가전을 본 축구팬들은 아시안컵 때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의 경기력을 보고 아쉬워하고 실망하는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선수들간의 호흡, 유기적인 플레이가 많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지친 모습을 보이며 날카로운 경기력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박지성, 이영표 두 선수의 대표팀 은퇴로 인한 공백으로 구심점 역할을 해줄 만한 선수가 없어 아시안컵 때보다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박주영이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지만 베테랑으로 경기를 이끌 만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아 상대 선수와 일촉즉발의 상황도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에 이를 잘 컨트롤했던 박지성, 이영표가 그립다는 말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뉴(New) 조광래호'는 파상공세로 밀어붙인 터키에 한 골도 내주지 않는 경기로 0-0 무승부를 거두며 비교적 무난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군데군데 엉성한 점도 많았고 한창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단 지지 않았습니다. 히딩크 감독 역시 "스타 선수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라면서 "스타 선수가 2-3명 정도 키워지면 멋진 팀이 될 것 같다"라며 오히려 한국 축구의 성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많았어도 그런 만큼 희망적인 부분도 적지 않게 발견돼 3년 남은 월드컵 본선을 향해 새 판을 짜는 조광래호에 좋은 경험이 됐던 한 판으로 기억될 듯싶습니다.

▲ 조광래 감독 ⓒ연합뉴스
우려한 만큼 아쉬웠던 경기력, 하지만 희망도 봤다

사실 이번 경기는 일정상 다소 문제가 있던 경기이기는 했습니다. A매치데이를 활용해 대표팀의 경기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아시안컵을 치른 지 열흘 만에 새 판을 짜서 더 강한 팀과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도 원정 경기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 은퇴 이후 어차피 새로운 판을 짜야하는 상황에서 가급적 빨리 그 판을 짤 만한 실전 점검을 하기 바랐던 것 같습니다. 결국 터키와의 평가전은 아시안컵 멤버에 신예들을 일부 테스트하는 형식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래서 남태희, 홍철이 첫 데뷔전을 치렀고, 중앙 수비,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인 홍정호는 측면에 배치되는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이 형성됐습니다. 이청용, 차두리 등 해외파 일부의 컨디션 난조로 인한 결장이 있어 전체적으로 A매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고, 이 때문에 손발이 안 맞는 현상도 자주 나타나는 등 여러 문제와 위험성을 안고 경기를 펼친 조광래호였습니다.

역시 우려했던 것만큼이나 조광래호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아시안컵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기민하게 움직이고 패스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마무리가 너무 부족했고, 킥 또한 날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남태희가 오른쪽 측면에서 과감한 돌파와 슈팅으로 인상적인 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박주영, 지동원, 구자철 등 공격 자원들은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가 살아나지 못하고 따로따로 제각각 플레이를 펼치며 각자의 강점조차도 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였습니다.

수비 역시 무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볼처리 미숙, 상대 선수를 자주 놓치는 허점을 노출해 실점 위기를 수차례 허용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아공월드컵 때 강점을 보이다 아시안컵에서 아래로 가라앉은 세트 피스 기회 역시 확실히 무뎌진 모습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감독의 경기 운영 역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경기 막판에 가서야 경기 분위를 바꿀 만한 선수 교체 카드를 쓰는 등의 '보이지 않는 허점'도 노출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후반, 전술적인 변화를 주면서 오히려 상대를 밀어붙이는 플레이를 펼쳤고 이는 상대 주장 엠레 벨로조글루를 퇴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를 펼치며 전체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보다 패기 넘치고 과감한 플레이를 보여준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남태희는 선발 라인업으로 출전한 선수 가운데 지동원과 더불어 가장 어렸고 A매치 첫 경기였음에도 잠재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손흥민, 지동원과 더불어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자원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이는 이번 터키전에서 얻은 최대 수확이자 향후 세대교체 작업에도 더욱 탄력을 받는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게 했습니다. 또 골키퍼 정성룡 역시 회복된 모습으로 좋은 선방을 펼치며 '포스트 이운재 No.1 골키퍼'의 면모를 모처럼 보여주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꾸준한 발전 꿈꾸는 조광래호, 인내하고 지켜보자

이번 경기가 끝난 뒤 다양한 평가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경기 하나로 모든 것을 단정짓고 평가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특히 이번 터키전은 박지성, 이영표라는 두 거물이 자리를 떠난 뒤 치른 첫 경기였습니다. 10년 넘게 대표팀에서 희생한 두 선수가 나간 만큼 당연히 이에 대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가장 큰 과제를 안고 뛴, 그것도 첫 경기였던 만큼 경기가 이전보다 다소 허무해 보이고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를 갖고 왈가왈부하고 조광래호가 정체된 팀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고 평가입니다. 오히려 조광래호는 기존 한국 축구가 갖고 있던 틀을 서서히 깨 나가고 있는 발전적인 팀이라는 평가를 더 많이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미 한국 축구는 황선홍, 홍명보라는 두 거물을 보낸 뒤 약 2-3년간 정체기를 겪으며 엄청난 시행착오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 체제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치다 오만, 베트남에 패하고 몰디브와 비기는 결과로 여론몰이 때문에 감독이 사퇴하고 그에 따른 후폭풍이 상당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축구는 박지성, 이영표라는 또 하나의 에이스를 얻었고 이들은 2000년대를 지배하며 한국 축구의 잇단 쾌거의 중심에 섰습니다. 베테랑, 에이스로 평가받던 선수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이렇다 할 경험이 없었던 만큼 어떻게 보면 당시의 사례가 좋은 교훈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해법은 나오게 돼 있습니다. 특히 확고한 축구 지도 철학을 갖고 있고, 어린 선수를 조련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광래 감독이라면 여러모로 기대감이 큰 게 사실입니다. 누군가 떠맡아야 하는 과업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맡지 않겠다는 자리를 조 감독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기꺼이 그 과업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사람입니다.

그런 기대감, 그리고 본인이 갖고 있던 초심에 걸맞게 흔들림없이 자신이 짠 판을 갖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다 완벽한 팀, 그리고 완전한 선수를 키워야 하는 과제를 반드시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무작정 '까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조광래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행히 브라질월드컵까지는 3년,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까지는 약 2년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2-3명의 스타가 있으면 한국은 더 좋은 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더 나은 한국 축구 대표팀의 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의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분명히 있는 가운데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조광래 감독, 그리고 선수들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더욱 불태울 수 있는 주변 환경도 받쳐줘야 합니다.

조광래호의 중단 없는 개혁 드라이브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의지를 다지고 과감해지고 자신감을 갖는 대표팀의 면모를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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