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형제들이 느닷없이 팬 서비스라는 이상한 부제를 붙여 아바타 소개팅을 할 때에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폐지의 기운을 느꼈다. 시청률이 나지 않는 프로그램을 접는 것은 방송사의 재량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뜨거운 형제들과 함께 동반 폐지된 오늘을 즐겨라의 경우 마지막 촬영날까지도 폐지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은 해도 너무한 ‘갑’의 오만이고,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오즐이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없는 일이 될 테니 시청자를 상대로 한 일종의 사기가 된 셈이다.

폐지 결정은 자판가 커피 한 잔 뽑듯이 즉흥적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후속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그만한 준비 또한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에 대해서 출연자들에게는 일언반구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기 문제를 염려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마지막 촬영날 정도에는 통보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연예인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거칠게 항의할 수 없는 분위기지만 이렇게 해서는 누구도 일밤에 마음 놓고 발을 담그지 못할 분위기다.

작년 김영희 체제의 일밤이 발족하면서 쏟아졌던 기대가 워낙 커서 가려지긴 했지만 당시 일밤 마니아들은 폐지병 걸린 일밤이라며 오빠밴드 등의 폐지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김영희 체제의 새로운 일밤은 헌터스의 동물학대 논란부터 해서 깔끔한 출범을 맞지 못했다. 단비, 우리 아버지 그리고 헌터스 중에 뒤에서부터 역순으로 폐지됐다. 불과 몇 회 방영하지 못하고 헌터스는 에코 하우스로 변신했지만 그 역시도 얼마 버티지 못해 일밤은 조기 종영병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뜨거운 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로 일밤의 새로운 진용을 짰다. 애초에 가졌던 공익 버라이어티의 색깔은 헌신짝처럼 버렸고 오로지 재미만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으겠다는 모진 각오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방영 때마다 뜨거운 이슈를 만들었지만 시청률로 반영되지 않는 뜨거운 형제들은 아바타 소개팅을 포기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버라이어티로 표류했고, 오늘을 즐겨라 역시 애초에 빈약한 기획력에 신현준, 정준호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기대감으로 무거운 기와를 올린 형국이라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밤의 표류는 급기야 아나운서를 예능으로 뽑는다는 사운을 건 도박에 나서게 했다. 사실 케이블 방송에서 한다고 해도 고운 시선을 보내기 어려운데 공중파에서 아나운서 채용을 예능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나운서 채용 버라이어티 <신입사원>의 지원 원서를 놓고 사생활침해와 명예훼손 논란까지 더해졌다. 이는 MBC가 갑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지원자들의 원치 않을 수 있는 장면까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인격포기각서와도 같은 기분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보도에 따르면 김영희 CP는 “지원서 항목에 나와 있는 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방송 출연을 하게 될 시에 작성하게 되는 서류와 유사한 형식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여기에 신입사원에 갑과 을의 극명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이 항상 그렇듯이 아나운서라는 최종 목표보다는 그저 티비에 얼굴 한번 나가보자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니운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지원하는 것이다.

지원자는 아나운서로 채용되기 위한 입사원서를 쓰고자 하는데, MBC는 그것보다 방송 제작이 우선인 좁혀지지 않을 거리감이다. 물론 신입사원이 방송사 아나운서 채용으로는 파격적으로 성별, 나이, 학력 하다못해 국적까지 개의치 않겠다는 지원 요강을 밝혔는데, 이것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입사원>만의 예외 조항이 아니라 MBC 전 채용에 적용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채도 특채도 아닌 예능 채용 아나운서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밤은 한때 한국의 대표적인 착한 예능이었다. 그런 일밤의 추락은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라 어떤 인격적 막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방송의 생사는 분명 시청률에 좌우된다. 그렇지만 지금 무한도전에도 4%의 절망기가 존재했다. 일밤의 고난은 저조한 시청률이 아니라 인내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도 그렇듯이 프로그램도 태어나서 성장하기까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 그것은 참지 못하는 조급증이 일밤을 흔드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지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해볼 생각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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