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동계 스포츠가 거둔 좋은 성적이 지난주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초 금메달 11개를 목표로 했던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13개라는 좋은 성적으로 일본에 이어 종합 3위에 올라 메달 숫자로는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물론 종합 2위는 2003년에 오른 바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특히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뚜렷한 강세를 보였던 빙상 종목(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과 더불어 스키 종목에서 무려 4개의 금메달이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알파인 스키에서 3개, 크로스컨트리에서 1개의 금메달이 터지면서 외형적으로는 '진정한 메달 다변화를 이뤘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는데요. 김선주, 정동현이라는 스타가 탄생했고, 이채원이라는 베테랑 선수가 기어이 국제 대회에서 큰 일을 내면서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기록, 성적이 많이 나왔던 이번 아시안게임 스키 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나갔던 언론사들조차 대회 전만 해도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아 현장 한동안 취재도 하지 않았을 만큼 스키 종목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상당히 멀어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겨울만 되면 스키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기는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스포츠 종목 스키'가 이렇다 할 지원도 못 받고,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것을 보면 뭔가 씁쓸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3수에 나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후보국으로서 빙상 하나만으로 '동계스포츠 강국'을 외쳤던 가운데서 나온 아시안게임 스키 종목 4개의 금메달은 향후 동계스포츠 발전 방안을 꾸준하게 추진하는 체육계나 관련 정부 부처 입장에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제대로 된 발전 방안과 인프라 구축, 그리고 기업이나 체육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고르게 뒷받침돼야 진짜 동계스포츠 강국, 그리고 동계올림픽 유치후보국으로서의 위상을 더 드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 동계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김선주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이 세계 대회와는 다소 수준차가 나는 대회라고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스키는 충분히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아직 선수 생활을 한창 더 할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 한국 스키의 미래를 밝혔습니다. 2관왕에 오른 김선주가 그랬고, 2개의 메달을 따낸 정동현, 그리고 1개의 은메달, 2개의 동메달을 추가한 정소라, 김우성, 정혜미가 그랬습니다. 모두 20대 초중반의 선수로서 개인적인 특장점을 바탕으로 아시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역대 최고 성적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세계와의 기록 차이는 분명히 나지만 아시아 대회에서조차 중앙아시아, 일본 등에 밀려 수준차를 절감했던 걸 생각하면 진일보한 성과를 냈습니다. 몇년 전, 맨땅에서 시작해 올림픽에서 세계 19위, 아시아 1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봅슬레이의 쾌거처럼 스키도 꾸준하게 선수를 키우고 체계적인 육성만 뒷받침되면 10-20위권 내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스키의 저변은 상당히 열악하기만 합니다. 국제스키연맹(FIS)에 등록된 선수 숫자를 보면 200여 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국제 대회에 자동으로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선수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채원이 금메달을 따낸 크로스컨트리는 상황이 더 열악해서 20명 안팎에 불과한 '불모지'나 다름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훈련 여건이나 환경 역시 좋지 못해서 이번 대회를 위해 현지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코스를 타보고, 장비를 처음 접해보는 등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보여 왔습니다. 물론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때문에 하계 스포츠 종목만큼의 환경이 뒷받침되기는 어려운 면이 많지만 골프장 옆에 훈련장이 위치해 골프공을 맞아가면서 훈련을 하는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선수들, 전용 훈련장이 없어 곳곳을 전전하는 스키 선수들의 여건을 들여다보면 참 딱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기본적인 훈련장조차 없이 그저 전국을 오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참고 이겨내며 운동을 해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오직 의지와 투혼만으로 4개의 금메달을 따내고 모두 7개의 메달을 따낸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저 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스키 종목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김선주와 정동현은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있는 선수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번 대회 성적을 예상하면서 메달권조차 분류를 하지 않다보니 이들이 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스키대표팀 입장에서는 언론에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들인데도 메달을 따고나서야 겨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실은 스키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도 상당한 장애 요소가 돼 왔고 앞으로도 그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설상 종목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만원버스 같은 스키장에서 무슨 훈련을 하겠는가"라면서 스키, 설상 종목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 지원, 관심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연초에도 한 언론사 대담을 통해 "설상 종목의 경우 우리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과 다양한 국제대회에 참가해 많은 경험을 쌓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본다. 대한체육회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가는데 설상 종목의 선전을 또 한 번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나 올해 모두 똑같이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뚜렷한 육성 대책이 없고, 진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과연 언제쯤에나 진정한 발전 방안이 나올지 의문입니다. 일단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면 뭔가 뚜렷한 대책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항상 큰 대회를 유치하고 나서야 관심을 갖고 뭔가를 키워나가려 하는 구태의연한 자세는 참 안타깝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들며 미루고 또 미루다가는 어렵게 살려낸 싹마저 잘려나갈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에서 벗어나 이제는 빙상, 스키, 썰매 모두 기본적인 환경 속에서 마음 놓고 운동하고 성과도 낼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할 때입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쾌거를 이루고도 씁쓸한 현실에 안타까워해야 하는 우리 동계 스포츠의 현실이 언제쯤에나 개선될지, 이제는 더 이상 똑같은 모습을 반복해서 보는 건 지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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