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꿈같은 일이 벌어진 지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남아있는데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를 떠올리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합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적 같은 쾌거를 일궈낸 그때 그 순간을,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 그 모습들을 떠올리며 축구팬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많은 이들은 2002년의 기적을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감독은 바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비쇼베츠, 크라머 등 외국인 감독이 대표팀을 거친 바 있었지만 한국적인 정서 탓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외국인 감독 영입은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 체코에 잇달아 0-5로 대패하고 본선 4-5개월 전에는 저조한 경기력으로 경질설에 시달리며 상당한 고생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는 고정관념과 편견, 틀을 깨고 팀을 만들어나갔고 한국 축구 체질 개선에 엄청난 공을 들여 나갔습니다. 그리고 히딩크와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이라는 쾌거를 만들어냈습니다. 월드컵을 마치고 과감히 감독직을 박차고 모국 클럽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후에도 히딩크 감독은 매년 한국을 찾는 등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꾸준하게 과시해 왔습니다.

그런 히딩크 감독이 한 팀을 이끌고 마침내 한국과 맞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맡은 팀은 공교롭게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겼던 터키입니다.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로 잘 알려져 더욱 친숙한 터키를 '지한파' 히딩크 감독이 맡아 한국과 대결을 펼치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고, 말 그대로 '친선 경기' 느낌이 물씬 풍겨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합이 더 기대되고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 2002년 3월, 거스 히딩크 감독과 차두리가 훈련 중 활짝 웃고 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2011년 2월, 차두리는 '히딩크호' 23명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팀에 살아남아 거스 히딩크 터키 감독과 대결을 펼치게 됐다
사실 히딩크 감독은 이전부터 한국 축구와의 대결을 꾸준하게 추진해 왔습니다. PSV 에인트호벤 감독 시절, 국내에서 열린 국제 클럽 대항전 피스컵 대회에 두 차례나 나선 바 있었는데 2005년 대회에서는 성남 일화와 맞대결, 한국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한국 축구와 대결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경기는 2-1로 에인트호벤이 이겼지요)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로는 호주, 러시아 대표팀을 맡으면서 수차례 추진을 해오고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이제서야 대결을 갖게 됐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의 대결이 기쁘지만 터키 감독으로서 이기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이번 한국팀과의 만남에 대한 감회를 밝혔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주 한국을 찾아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꾸준하게 한국 축구에 대한 소회를 밝힌 바 있었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에는 호주대표팀을 맡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 방송사 명예 해설위원으로 나서 한국이 상대할 팀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팁을 조목조목 짚어줘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한동안 말을 아끼기도 했지만 틈날 때마다 의미심장한 말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바라는 단소리,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간접적으로 조언해 왔습니다. 히딩크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일로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고 선진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는데요. 아직 정착된 것은 없지만 그만큼 한국 축구 발전에 대한 애정, 신뢰가 있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을 해왔던 히딩크 감독이었습니다.

그런 히딩크 감독과의 대결이기에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뜻 깊은 게 사실입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경기를 관전한 적이 있지만 경기를 통해 제대로 장단점을 파악하고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대표팀이 아시안컵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박지성, 이영표라는 두 거물 스타가 은퇴한 이후 치르는 첫 경기여서 어느 정도 공백감을 느끼고 경기를 치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선수들이 물러나고 아예 새 판을 제대로 짜는 첫 경기를 히딩크 감독과 치름으로써 세대교체, 팀 리빌딩 작업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히딩크가 물러난 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를 거듭한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광래호는 이번 경기를 성의 있게 치를 필요가 있습니다. 체력적으로 어려움 감이 있고 아시안컵이 끝나고 이렇다 할 큰 대회가 없어 목표 의식이 조금은 사라진 게 느껴지지만 저력 있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딩크 감독은 경기를 직접 지켜보면서 한국 축구의 변화한 모습에 대해 속으로는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꼭 히딩크 감독 때문이 아니어도 광적인 축구 열기로 유명한 터키라는 낯선 무대를 통해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이후에도 계속 해서 적절하게 유지하고 살려나가야만 팀은 더 거듭날 수 있고, 젊은 팀도 더 패기 있고 성숙한 팀으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과의 대결이 친선 경기이기는 해도 어쨌든 마침내 성사됐습니다. 한국과 터키 양국에게, 또 조광래 감독이나 히딩크 감독에게 모두 유익한 매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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