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은 주가지수를 경제성적표로 잘못 알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노태우 정권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자 1989년 12월 12일 은행으로 하여금 2조7000억원을 3대 투자신탁회사에 대출케 해서 주식을 매입토록 했다. 이것이 이른바 12·12 조치다. 당시 이 조치는 재무부 장관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경제부총리도 배제된 채 밀실에서 청와대 경제실세가 주도했다.

▲ 머니투데이 1월 24일자 3면
그런데 증시는 강제적인 금융수혈도 마다한 채 폭락을 거듭했다. 3대 투신사는 대출금 상환은 커녕 도산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임기만료는 가까워지는데 내세울 경제치적이 없자 노 정권이 조급했던지 투신사 구출작전을 폈다. 그것이 1992년 나온 5·27 조치다. 한국은행의 특별융자를 통해 투신사 살리기에 나섰던 것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했지만 3대 투신사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의 임기 만료는 임박한 데 잘 나가던 증시가 곤두박질 친다. 이명박 당선자는 금방 주가지수가 3000을 넘어설 듯이 자신했다. 그런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의 후폭풍이 한국증시도 침체의 늪으로 끌고 간다. 그러자 재경부와 인수위가 의좋게 손잡고 증시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같은 연·기금을 동원해서 주가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시장주의를 강조하는데 관치경제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옛적의 향수를 못 잊는 모양이다. 최근의 주가하락은 한국만의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세계시장과의 동조화에 따른 동반하락이다. 그런데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한 연·기금을 증시에 퍼붓겠다고 한다. 이런 반시장적 증시대책에 박수칠 사람은 따로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내다팔 때마다 연·기금이 떠받쳐줄 테니 만세 부를 일이다.

이런 증시대책은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에 나온다. 또 12·12조치를 비롯한 경제정책 실패를 한번도 문책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행정을 실현하지 않으니 이 같은 관권경제의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국회동의 없이 지시·명령 하나로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그러니 걸핏하면 반값 골프장, 한국형 뉴딜사업, 임대주택펀드에 쓰겠다며 저마다 떠드는 것이다.

▲ 김영호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이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의무적으로 불입도록 해서 모은 돈이다. 하지만 국민의 의사에 반해 주식투자를 해서 투자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문책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이러니 저마다 쌈지돈 쓰듯이 쓸려고 덤벼드는 것이다. 연·기금의 부실화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연·기금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해 경제관료의 독단적인 개입을 막아내도록 조속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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