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수가 큰 존재감을 남기고 자리를 비운다면 이에 대한 빈자리가 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후임자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며 이를 잘 커버해야 하겠지요.

현재 축구대표팀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박지성, 이영표라는 두 거대한 탑이 한꺼번에 해체되면서 이를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에 따른 부담감이 적지 않게 느껴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2008년 10월부터 2년 넘게 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캡틴박'이라는 별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박지성의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전술적인 부분에서야 능력 있는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으며 서서히 실력을 키워나간다면 되겠지만 팀 분위기 자체를 좌우할 수 있는 주장 역할을 제대로 할 만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느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단 팀내에서 연장자인 차두리, 이정수 등에게 주장직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여러 가지 기준을 따져 부동의 대표 스트라이커 박주영에게 주장직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표팀에 합류해서 본인의 의사를 물어본 뒤에 최종적으로 결정이 나겠지만 주변 분위기도 그렇고 박주영이 대표팀 주장을 이번 터키전부터 맡고, 또 당분간 꽤 오랜 기간 완장을 찰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캡틴박' 박지성에 이어 이른바 '캡틴박 시즌2'가 개봉박두를 앞둔 셈입니다.

▲ 박주영이 터키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8일 새벽(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광래 감독의 박주영 주장 임명은 현 대표팀 상황이나 장기적인 관점을 두고 봤을 때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결정을 계기로 박주영이 한 단계 더 대표팀에서 거듭날 수 있는 날개를 달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대표팀의 꾸준한 성장에도 적지 않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박주영 개인의 능력이나 주변 여건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은 그야말로 한국 축구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탄력적인 몸놀림, 감각적인 볼 컨트롤과 패싱 능력, 그리고 탄탄한 개인 기량과 킬러 본능, 정확한 세트 피스 능력까지, 여기에 프랑스 진출 이후 부쩍 좋아진 수비 능력과 몸싸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축구 천재' 명성에 걸맞은 모습으로 꾸준하게 좋아지고 있는 공격수입니다.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박주영의 공백이 어느 정도 느껴졌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박주영의 존재감은 이미 축구대표팀 그리고 한국 축구 내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박주영이 주장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나이가 20대 중반(26살)이지만 정말 많은 국제 경험을 쌓았다는 점입니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시작해 월드컵 본선 2회,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대표 경력을 두루 갖고 있는 선수는 현 대표팀 선수 가운데서는 박주영이 거의 유일합니다. (현 대표팀 최고령인 차두리도 월드컵 본선 2회가 전부입니다. 기성용과 이청용은 월드컵, 올림픽에 각 1회씩 출전했지요) 경기 중 돌발 상황을 잘 컨트롤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해도 대표팀에서나 프로팀에서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박주영이 경험을 살려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조련된다면 책임감을 갖고 충분히 자신의 기량도 더 성숙해지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능력을 갖춘 박주영이지만 사실 외부적으로는 '개인주의적이다', '무뚝뚝하다', '성의가 없다'는 등의 부정적인 시선, 다시 말하면 꽤 심한 '편견'을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 인터뷰를 피하고, 공항을 출국하면서도 딱딱하고 굳은 표정으로 잽싸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습니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은 박주영에 대한 외형적인 면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스스로 피하고 싶어 했던 것이었고, 오히려 축구협회나 소속사가 마련한 공식인터뷰에서는 비교적 성의 있는 답변과 유쾌한 발언을 자주 해 왔습니다. 청소년대표 시절 '축구 천재'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다 잠시 주춤했던 때를 떠올리며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어느 정도 자기 관리를 해 온 셈입니다.

오히려 박주영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인 관계가 '아주'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솔선수범하고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귀감이 되기도 했는데요. 구자철, 윤빛가람, 윤석영, 김주영 등 팀 후배들은 박주영 미니홈피를 통해 '고기를 사 달라'면서 이른바 '고기 댓글 릴레이'로 박주영의 대표팀 내 위치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때도 선배와 후배의 중간에 서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잘 수행해낸 바 있고, 선수들과 두루 친한 모습을 보여주며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박주영이 대표팀 주장을 맡는 것은 상당히 젊어지고 또 패기가 넘치는 조광래호의 스타일에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다수의 선수가 박주영과 친분을 과시하고 교감을 갖고 있는 만큼 팀을 아우르는 데도 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박주영 스스로가 의지를 보인다면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박지성이 보여준 리더십과는 또 다른, 개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캡틴박2'가 기대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프로 소속팀에서도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주장을 주는 것이 좀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시안컵이라는 큰 대회를 끝내고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향해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점이 딱 적절한 시기라는 점에서 '캡틴박 시즌2'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시간이 충분하고, 그만큼 박주영이 자신의 리더십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도 많다는 얘깁니다.

이번 박주영 주장 임명을 계기로 대표팀은 조광래식 공격 축구, 나아가 선진 축구 스타일 정착의 날개를 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그 스타일에 딱 부합하는 선수인 박주영에게도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박주영을 중심으로 공격의 축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보다 많은 득점 기회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한쪽 팔에 주장 완장을 차는 것 자체만으로도 책임 의식, 그리고 더욱 굳건한 대표 의식을 갖고 투쟁심을 발휘하며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좋아지고 있는 박주영이 앞으로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경기로, 또 단기간에 모든 걸 바랄 수는 없습니다. '캡틴박2'가 자리를 잡는 것도 어쩌면 1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개성 넘치고 자신감 충만한 조광래호가 이번 박주영 주장 임명을 통해 더 색깔 있는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살려나가며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새로운 캡틴박' 박주영, 그리고 더 큰 팀으로 거듭나는 조광래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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