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미국은 우리와 달리 설 연휴가 없습니다. 대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결승전 '슈퍼볼'이 열렸습니다. 슈퍼볼 주간이었던 미국 박스 오피스의 1위 자리는 사이코 스릴러 <룸메이트>가 차지했습니다. 이렇다 할 배우나 감독은 없지만 타겟 관객층이 확실한 이 영화는 개봉과 함께 1,5000만 불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미국 박스 오피스 전체를 보자면 올해의 슈퍼볼 주간은 흥행이 좋지 않아 작년 대비 21%나 하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총 관객수로 치면 지난 15년간 최저라고 합니다. 그런데 <룸메이트>를 배급한 소니는 2001년부터 올해까지 슈퍼볼 주간에 미국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를 여덟 편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2009년 <디어 존>, 2007년 <메신저 - 죽은 자들의 경고>, 2006년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 2005년 <부기맨>, 2004년 <유 갓 서브드>, 2003년 <어둠의 저주>, 2001년 <웨딩 플래너>. 이들 중 절반이 공포, 스릴러 장르네요.

<위험한 독신녀>를 연상시키는 <룸메이트>는 두 여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룸메이트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정신병을 앓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가 주인공에게 과도한 집착 증세를 보여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평이 엉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가 참 좋아요.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이 주인공이고, 무대가 기숙사라면 헐벗은 장면도 있을 테고... 공포영화가 다 그렇지만 눈요깃거리로는 이만한 영화도 드물거든요. 그래서 1위한 듯...

<룸메이트>의 예고편입니다.

슈퍼볼 주간의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 2위에 오른 <생텀>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번 주에 개봉하죠? 사실 이 영화가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 거둔 성적은 다소 부진합니다. 제작자로 참여한 제임스 카메론의 명성에 비하면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제임스 카메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더군다나 3D로 제작됐지만 개봉 첫 주말에 1천만 불 돌파에 실패했습니다. <아바타>에 참여했던 척 코미스키가 촬영에서 3D 파트를 전담하기도 해서 그것만은 꽤 기대가 되는데 좀 의외네요. 저는 웬만하면 3D로는 영화를 안 보지만 <생텀>은 3D로 볼 예정인데 결과가 이러니 걱정되는군요.

<생텀>은 미지의 해저동굴로 탐험을 나선 다이버 일행들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탐험하게 되어 기쁜 것도 잠시, 동굴 내부에서 출구를 잃고 헤매면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참고로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앤드류 와이트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군요.

1위의 <룸메이트>가 <위험한 독신녀>를 연상시키듯 <생텀>도 연관 짓게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05년에 국내에도 개봉했던 <케이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도 동굴로 탐험을 하러 들어갑니다. 그러다 길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괴생명체와 맞닥뜨리면서 멤버들이 하나씩 죽게 되는데... <생텀>에는 이런 괴물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 것 같네요.

<생텀>의 예고편입니다.

<친구와 연인 사이>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비해 한 계단만 하락하는 선에서 그치며 3위에 머물렀네요. 관객평도 그럭저럭 나쁘진 않은 편이고, 흥행에서도 벌써 제작비의 두 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4위인 <킹스 스피치>도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의 흥행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연일 상위권에 머물면서 지난 각종 시상식 결과의 후광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군요. 덩달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선전에도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우주연상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고, 잘하면 작품상까지도 한번 노려볼만하겠습니다.

<그린 호넷>도 초반 반응에 비하면 양호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위로 데뷔하긴 했으나 워낙 평이 나빠 순식간에 몰락할 줄 알았는데 꾸준히 5위권 안에 머무르고 있네요. 그렇다고 흥행 성적이 좋은 건 절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제작비를 모두 건지기가 쉽지 않아 보이며, 전 세계로 넓혀도 현재 약 1억 7천만 불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더 라이트>의 미국 박스 오피스 성적은 처참합니다. 지난주에 1위로 데뷔해서 제가 "엑소시즘이 여전히 먹히네"라고 말한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일주일 만에 다섯 계단이나 수직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엑소시즘이 여전히 관객들에게 먹히긴 먹히는데, 문제는 단 일주일만 먹힌다는 것입니다. 앤소니 홉킨스도 출연했는데...

앤소니 홉킨스나 제이슨 스타뎀이나 안타깝긴 마찬가지입니다. <더 라이트>와 함께 지난주에 개봉하여 3위로 데뷔했던 <미캐닉>도 네 계단이나 하락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이전작 <트랜스포터 3>의 흥행기록을 따라잡는 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아드레날린 24 2>는 벌써 넘어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이라기엔 제작비가 높아서 안쓰럽네요.

<더 브레이브>의 흥행성적은 가히 놀라운 수준입니다. 개봉 7주차까지 탑 10에 머무른데다가 제작비의 약 4배에 달하는 총 수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코엔 형제의 최고 흥행작이 된 것도 이미 알려드렸죠? 이전에 그들의 최고 흥행작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데, 현재 <더 브레이브>가 두 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역대 서부영화 중에서는 <늑대와 춤을>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약 3천만 불 차이인데...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까지만 버틴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아마 앞으로도 코엔 형제가 이만한 흥행성적을 기록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9위의 <딜레마>는 이대로 흥행을 거의 마감할 것 같습니다. 유명배우가 다수 출연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군요.

마지막 10위는 <블랙 스완>의 몫입니다. 비록 <킹스 스피치>만큼 뒷심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느새 1억 불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블랙 스완>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최고, 나탈리 포트만에게는 <스타워즈>를 제외한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수입을 기록한 영화가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국내 개봉 좀 빨리...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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