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TV는 사랑을 싣고' 특집, 정형돈편에는 추억을 되새기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대신 추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추억 속 소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정형돈이 있었지요. 정형돈이 애타게 찾던, 자칭 업어키웠다는 문보라양이 '아저씨~'를 외치며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면 아마도 훈훈한 장면이 되었을 겁니다. 추억 속 그 꼬마가 1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풋풋했던 추억의 증거로 서 있었다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광경이 연출되었겠지요. 하지만, 대신 어제와 같이 깨알 같은 웃음을 줄 수는 없었을 테지요.


추억마저 돌발예능이...

지난 한 해 동안 정형돈을 일컬었던 닉네임은 미존개오였습니다. 무한도전 원년멤버임에도 어정쩡하게 맴도는 듯한 어색함의 종결자였던 정형돈이 그야말로 미친존재감을 드러내며 화려하게 빛을 발한 한 해였지요. 보기와 달리 잰 몸동작, 생각과 달리 우수한 두뇌로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나가던 정형돈이 그 자리매김을 확실히 한 셈입니다. 족발당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레슬링으로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주었던 정형돈은 지난 해 MBC연예대상을 앞두고 '최우수상 받으면 어떡하지'라고 스스로 걱정할 정도로 뛰어난 예능감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연예대상에서는 무관에 그치고 말았지만, 네티즌투표에서는 무한도전의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올해의 멤버로 뽑히는 등 애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뭘 해도 빵빵 터지는 그야말로 예능감이 하늘을 찔렀던 지난 해였는데요, 올해에도 이런 기세가 이어질 것 같은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훈훈할 것만 같은 무도판 'TV는 사랑을 싣고'에서조차 그의 추억은 애틋한 드라마가 아닌 돌발예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돕는 걸까요?


풋풋한 드라마로 재연된 14년 전 추억

14년 전 7살 꼬마와의 풋풋한 기억을 보여줬던 재연드라마는 지난 해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저씨'를 패러디했습니다. 무뚝뚝한 스물한 살 청년에게 다가온 꼬마숙녀는, 이 청년이 밥을 먹을 때면 바짝 붙어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반찬도 챙겨줬고, 청년을 낮잠을 자고 있으며 슬쩍 그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꼬마숙녀가 이 청년에게 줄 간식을 싸들고 학원에 왔다가 음식반입 금지라는 철칙을 갖고 있는 학원장의 추상같은 불호령을 받게 됐는데요, 형돈은 차마 혼나고 있는 꼬마숙녀를 외면하고 말았지요.

꼬마숙녀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왔지만, 고개숙인 형돈은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나랑 있는 게 창피해? 꼬마숙녀가 투정을 부렸지요. 이에 형돈은 반성을 했는지 나중에 꼬마숙녀를 괴롭히는 악당을 당당히 무찌르는 영화 속 아저씨를 완성시키게 됩니다. 이렇듯 순수했던 이들의 인연은 정형돈의 군입대로 마감하고 말았는데요. 절로 미소 짓게 하는 풋풋한 추억이 정형돈과 잘 매치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의외였지요.


추억을 대하는 방식

정형돈의 기억에 의지해 찾아 나선 리포터 하하는 분명치 않은 위치와 달라진 거리 모습, 동네유지의 불분명한 기억 탓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결국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있는 문보라 양을 만날 수 있었지요. 드디어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낸 보라양. 그런데 보라양의 기억 속에는, 오늘을 살고 있는 미존개오 정형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저씨 대신에 잘생기고 멋진 오빠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지요.

가슴 속 잔잔했던 추억을 풀어놓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정형돈은, 어엿한 숙녀가 되어 14년 만에 나타난 보라양과 감동의 해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낯설어 하는 보라양은, 감격의 포웅을 준비했던 정형돈을 좌절시키고 말았지요. 당황한 정형돈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보라양에게 구구절절 추억을 설명해야 했지요. 그 구차한 모습이 깨알 같은 웃음을 줬습니다. 정형돈은 최선을 대해 14년의 세월을 넘어 보려했지만, 보라양은 추억 속 갸름한 턱선을 지닌 그 멋진 오빠를 지금의 정형돈과 매치시켜야 한다는 현실에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지요. 유재석이 물었습니다. TV에서 정형돈씨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보라양이 무심히 답했지요.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어요'

결국 감동의 재연드라마 속 풋풋했던 추억은 정형돈만의 일방적인 추억으로 남고 말았는데요, 그야말로 평범하지 않은 'TV는 사랑을 싣고'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한도전만의 비범한 돌발예능은 이렇게 마무리 되고 말았지요.

추억을 대하는 방식과 추억을 남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형돈의 추억을 추적했던 하하가 정형돈이 다녔던 음악학원을 찾았었는데요, 그 곳 원장실에는 무한도전 달력이 걸려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밝게 웃으며 자신이 무도팬이라고 했는데요, 성공한 사람이 성공하기 전에 알던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남겨질 수 있다면 그것은 추억을 남기는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예블로그 (http://willism.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속에서 살지만, 더불어 소통하고 있는지 늘 의심스러웠다. 당장 배우자와도 그러했는지 반성한다. 그래서 시작한 블로그다. 모두 쉽게 접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을 시작으로 더 넓은 소통을 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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