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이 벌써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당초 11개 금메달로 종합 3위에 오르겠다고 목표했던 한국선수단, 팀코리아(Team Korea, 한국선수단 공식명칭)는 금메달에서는 벌써 목표를 이루며 내친 김에 종합 2위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을 비롯해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등에서 메달 소식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목표 초과 달성 가능성을 높인 원동력이 됐습니다.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동계스포츠의 질적 향상 가능성을 살린 바 있던 한국 스포츠가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높은 성장 가능성을 또 한 번 보여준 것은 큰 성과로 꼽을 만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떠나서 이번 대회에서 팀코리아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있고 감동이 있어 어떻게 보면 동계올림픽 때보다도 더 진한 여운이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부상을 당한 선수가 힘겹게 경기에 나서 메달을 따내는가 하면 불모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것도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는 기적도 있었습니다. 주최국, 그리고 경쟁국의 온갖 텃세 속에서 따낸 값진 메달도 있었고, 그 때문에 메달 없이 안타깝게 눈물을 흘린 선수도 있었습니다.

동계올림픽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대회라고 해서 그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로 모든 선수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으로 후회 없는 한 판,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밝히며 한국 동계스포츠의 위상을 알렸습니다.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 덕분에 이번 동계 아시안게임은 동계올림픽과는 색다른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 알파인 스키 2관왕에 오른 김선주 ⓒ연합뉴스
이번 아시안게임의 최대 성과를 꼽는다면 바로 스키 종목의 선전일 것입니다. 알파인 스키에서 김선주가 여자 활강과 슈퍼대회전에서 2관왕에 오르고, '기대주'로 거론됐던 정동현이 남자 슈퍼복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지난 2007년 대회 때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의 성적을 낸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몇 단계 진일보한 결과를 낸 셈입니다. 또 크로스컨트리의 지존 이채원이 여자 10km 프리스타일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던 이채원이 마침내 국제 대회에서 큰일을 저지르며 그간의 성과를 재조명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두 종목 모두 공통점은 바로 기대하지 않았던 종목이었다는 것, 그리고 정말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따낸 메달이었다는 겁니다. 등록 선수가 몇십-몇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적은 인원, 변변한 전용 훈련장과 장비도 없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뤄낸 기적과도 같은 메달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봅슬레이, 스키점프 등에 가려서 그렇지, 이번에 나온 메달 자체가 이 두 종목만큼이나 기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빙상 등 전략 종목을 채택해 집중 육성하는 한국 동계스포츠 환경 속에서, 훈련도 아닌 본 대회에서 시합 장비도 처음 착용하는 악조건 속에서 나온 메달, 그리고 값진 결과들은 아직 갈 길은 멀어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략 종목인 빙상에서는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들의 투혼이 빛났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상화는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따낸 스타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모태범은 주종목인 500m에서 5위에 만족해야 했고 1500m에서 역주를 펼친 끝에 은메달을 따내며 은메달 1개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이상화는 500m에서 중국 선수들에 밀려 3위에 오르는데 만족했습니다. 얼핏 보면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자만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들은 얼마 전까지 각각 아킬레스건, 발목을 다치는 어려움을 겪었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어렵게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에 출전한 대회에서 메달권에 들어 또 한번 존재감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또 20년 가까이 대표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맏형' 이규혁의 눈부신 투혼도 정말로 빛났습니다.

▲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이 계속된 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실내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은메달을 딴 모태범이 역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쇼트트랙에서는 중국의 텃세를 이겨내고 최강 자리를 되찾은 것이 눈부셨습니다. 중국 선수들의 잇단 변칙 작전, 심지어 눈에 보이는 반칙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이겨내며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중국에 내줬던 '쇼트트랙 최강' 지위를 다시 얻었습니다. '짬짜미 파문' 등으로 명예가 실추될 대로 실추된 상황에서 실력으로 모든 걸 보여주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쇼트트랙의 '새로운 감동'은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밖에도 주최국 카자흐스탄의 변칙 대회 운영 속에서도 값진 메달을 따낸 스키점프, 부상, 코치 결별 등 악재를 털고 쇼트 프로그램에서 환상의 연기를 보여준 피겨 스케이팅 곽민정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의 지형적, 기후적인 특성상 겨울 스포츠가 크게 발달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참고 이겨내며 새로운 감동을 만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며 동계 아시안게임 내내 새로운 기적을 써나가고 있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과는 다소 수준 차가 있다고 해도 아시안게임이라는 대회 역시 쉽지 않은 대회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대회에서 동계스포츠의 새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팀코리아 선수들은 충분히 박수 받고 환영받을 만합니다. 남은 종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상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